세상의 슬픔에 공감하는 당신에게서 희망을 본다.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몰라 아무것도 손댈 수가 없을 때면,
나는 책꽂이 앞으로 가서 주저앉았다.
나는 기계적으로 일하는 노예가 아니라
사유하는 인간임을 느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고통스러운 감정은 정확하게 묘사하는 순간 멈춘다고 했던가.
문학에 눈뜨는 일은 회의에 눈뜨는 일이고,
회의에 눈뜨는 일은 존재에 눈뜨는 일이었다.
나는 무엇에 분노하고 무엇에 취약하고 무엇을 욕망하나.
...
사랑이 아니라면 기나긴 인생은 어떻게 살아지는 걸까,
한평생 한 사람의 곁이 되는 일은 사랑 없이 가능할까,
말과 살을 섞다가 살만 섞어도 혹은 말만 섞어도 사랑일까,
철학자와 식당 노동자가 동등한 직업인으로 존중받는 세상은 요원한 일일까.
한 줌의 권력자를 위해 다수가 노예처럼 일하는 슬픔 사태는 왜 지구를 뒤덮는가.
싸울 때마다 질문은 탄생했다.
집안일부터 세상일까지 나의 울컥은 생의 질문이 되었다.
내가 구상하는 좋은 세상은 고통이 없는 세상이 아니라
고통이 고통을 알아보는 세상이다.
고통이 고통을 알아보고 존재가 존재를 닦달하지 않는 세상은 어떻게 가능할까.
- <싸울수록 투명해진다>, 은유
삶은 상호의존적이라는 점은 무시되고,
개개인은 고립된 채 자기 이익을 챙기는 것에 최상의 가치를 두도록
세상이 우리를 길들이고 있기에,
무가치하고 무의미해 보이는 일에 무모하게 시간을 보낸 것들만 곁에 남아있다. 무던한 사람, 철 지난 노래, 변치 않는 신념, 짠 눈물 같은 것들.
- 은유, <다가오는 말들>
게으름뱅이로서 나는 맹세한다.
터무니없이 오랜 시간을,
특히 몇몇 기업 양아치들을 위해서 일하지 않으려 투쟁하기로.
가능한 한 스트레스가 나를 침범하지 못하게 막아내기로.
천천히 먹기로. 리얼 에일을 자주 마시기로.
더 많이 노래하기로. 더 많이 웃기로.
토하기 전에 정시 근무라는 회전목마에서 내려오기로.
혼자 있을 때나 남들 앞에서나 스스로 즐기기로.
일이란 단지 고지서에 찍힌 비용을 지불하기 위한 것임을 인식하기로.
친구들이 힘의 원천임을 항상 기억하기로.
단순한 것을 즐기기로. 자연 속에서 소중한 시간을 보내기로.
대기업과 회사에 소모하는 시간을 줄이기로.
그 대신 좋은 것을 많이 만들기로.
순리를 벗어나기로.
아무리 사소한 수준이라도, 세계와 주위 사람을 변화시키기로.
- 데이비드 프레인, <일하지 않을 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