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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형 Jun 27. 2023

출판사 대표가 되어 첫 책을 내어 보니... 16

고즉도(苦卽道)


얼마 전 ‘서울국제도서전’에서 구입한 『탄허 스님의 선학 강설』을 읽다가 고통과 즐거움이 끊어진 고즉도(苦卽道)의 화엄세계에 대해 생각했다. 고통과 즐거움의 경계가 없는 세계가 화엄의 세계라면 다른 무엇에 경계를 긋고 살아갈 것인가? 심지어 책을 만들어 판매하는 방식과 유통시스템조차도 이것이 옳다는 내 생각의 수준과 경계를 허물고 어떤 방법으로든 다양하게 판매해 보는 것 또한 고즉도의 화엄에 이르는 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5월 19일 발행된 책을 예스 24나 교보문고와 알라딘 등 책 유통 플랫폼에 올리지 않은 것은, 새로운 출판 유통과 마케팅을 실험해 보자는 취지에서 나는 출판사 직영 서점에서 독자에게 직판하는 시스템의 유통과 마케팅을 제안하고 실험하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내가 상상하던 서점 겸 북카페 공간을 마련한 것도 아닌 상황에서 책을 쥐고 있는 것은 그 자체로 손실이었다. 


신간이라는 따끈함도 마케팅이 될 수 있는 것인데, 그 기회자체를 스스로 삭제하고 놓치는 상황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버드대의 학비가 일 년에 일억 정도 한다고 하더니, 어쩌면 나의 비즈니스 수업이야말로 하버드 수준의 학비를 지출하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아니, 더 정직하게 이야기하자면 나는 겁이 나서 뒷걸음질을 치며 현실도피를 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책에 대한 평판과 평가는 물론이고 물류창고 유지 비용과 집에 들여온 책을 다시 파주 출판단지의 물류창고까지 옮겨가는 문제 등등 어리석은 선택의 결과로 인한 복잡한 문제들이 줄을 잇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즉도다. 고통이 곧 도에 이르는 길이라면, 어리석은 선택에 의한 고통 또한 내 삶의 여정이며 그를 통한 배움으로 다음 사업은 좀 더 지혜로운 선택을 하게 되리라.


 그냥 고통의 화엄세계로 몸을 던져 고통의 파도 자체를 삶의 색다른 경험으로 즐기는 경지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새벽 6시에 돈키호테 독서클럽을 마치자마자 바로 <수라 King’s Dinner> 13 상자를 나의 녹슨 롤스로이스에 싣고 파주 ‘한강물류’ 회사를 향해 달렸다. 출근 시간에 강남 한복판을 가로질러 달려가는 길을 안내하는 네비의 엉뚱함조차도 귀엽게 느껴질 정도로 나의 도전과 행동력이 기분 좋았다. 



친절한 한강물류 대표님들과 커피도 한잔 마시고 책을 입고한 뒤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처음 만난 ‘피치플럼’ 출판사의 김대표님을 만나러 피치플럼 출판사 사무실을 찾았다. 감사하게도 내게 부족한 세계 명화 저작권과 고퀄의 인쇄와 디자인 정보에 정통한 분이신지라 배울 것도 도움받을 것도 너무너무 많았다. 물류센터 정보와 개별 유통 플랫폼에 대한 정보와 절차 또한 친절히 안내해 주니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다. 목소리 큰 것이 이런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은 미처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었다. 


다시 종로에 있는 영품문고 본사를 찾아가 2시 30분에 신규거래처 상담과 책 입고 상담을 받아 입고 결정을 받고 <수라 King’s Dinner> 북패키지를 여름휴가 특강으로 오프라인 중심의 영풍문고에서 독점 판매하는 안에 대한 제안을 드렸다. 담당 차장님과 기분 좋게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강남으로 이동하여 서래마을에 있는 카페 서래수에 갔다.


교육과 휴식의 두 번째 책으로 기획해 오던 <나는 카페 서래수 커피를 마신다> 발간에 대해 김대표님과 구체적인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였다. 나의 커피 시음기로 시작하였으나 커피에 대한 보다 더 구체적인 전문 지식을 나누고 접근이 쉽지 않은 고급 커피를 소분하여 저렴하게 직접 비교 시음해 볼 수 있도록 한다는 콘셉트로 의견을 조율하고 일단 첫 번째 협의를 마쳤다.



공동저작은 필연적인 흐름으로 독자들에게 더 많은 정보와 전문성으로 커피에 대해 더 친절하게 안내하며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다. 커피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타깃으로 커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쓰는 책이란 콘셉트 자체만으로도 사랑과 공감과 연대감이 넘쳐난다. ㅎㅎ


다음날 이메일을 열으니 신규거래를 신청했던 예스 24와 알라딘에서 계약서가 당도해 있었다. 60%의 수용율을 그대로 수용했지만 적은 이익으로 부자가 되라는 부처님 말씀이 어쩌면 진리의 말씀일 것이다. ‘한강물류’ 대표님이 내게 커피를 주시면서 하셨던 세이노 이야기가 생각났다.      


“ 세이노 아시죠? 책이 두꺼운데도 7000원이잖아요? 오늘도 일 만부 나갔어요. 그런 쪽도 생각해 보세요. 책도 삶도 사람도 다 도박이에요. 어찌 될지 모르니 그냥 막 해보는 거죠. ”      


교보문고에 신규거래 신청서를 제출하면서 다시 생각했다. 그냥 막 해보는 거지 뭐~~~ 고통과 즐거움의 경계도 없다는데, 성공과 실패의 경계 또한 없는 것은 당연하잖아? 고즉도(苦卽道)의 화엄세계가 내 마음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라면,     

 

“괴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하하하      


돌이켜 생각해 보니 만화 주인공 캔디 주제곡은 아마도 도통한 도인이 썼던 것 같다. 바로 그때 전화가 울렸다. 제주도 한라서적에서 첫 주문이 들어온 것이다. ( 2023. 6. 22. 목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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