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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준현 Oct 03. 2020

오코노미야끼, 타코야끼, 야끼소바

여름 축제의 맛, 야끼 삼총사

여름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는가? 어떤 이에게는 한 손에 맥주병을 들고 뜨거운 해변을 거니는 여유로운 서퍼들이, 다른 이에게는 시원한 계곡 물에 담갔던 수박을 쪼개어 정자 밑에서 먹는 가족이 떠오를 수 있겠다. 내게도 다양한 모습의 여름이 존재하는데 일본에서 도합 2년을 보내며 불꽃놀이, 야외 바비큐, 그리고 맥주라는 이미지가 추가되었다. 


일본의 여름을 논할 때 빼먹을 수 없는 메뉴가 야끼 삼총사(오코노미야끼, 타코야끼, 야끼소바)다. '야끼(焼き)'는 일본어로 '구이, 볶음'이라는 뜻이다. 오코노미야끼는 취향대로() 구운 것, 타코야끼는 문어(たこ)를 구운 것, 야끼소바는 메밀국수(そば)를 볶은 것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이들은 오사카를 필두로 한 간사이(関西) 지방 음식으로 알려져 있는데, 정직한 이름과 간단한 조리법에 시원시원한 간사이 사람들의 성격이 배어있는 느낌이다. 이런 호쾌함 때문인지 간사이 음식을 꽤나 좋아한다. 이열치열이라고, 지글지글 불판에 야끼 삼총사를 구워 먹어야 여름을 제대로 난 느낌이 든다. 

교토의 기온마츠리(좌, 중간), 그리고 오사카의 텐진마츠리(우) 거리 풍경. 맥주 한 캔을 들고 거리를 누비며 여름 날을 즐겼었다.

스물둘 여름, 처음으로 일본 땅을 밟았다. 10여 년 동안 일본어를 배우며 한 번쯤 현지에서 언어를 연습해보고 싶다고 부모님을 조른 끝에, 교토에 계신 먼 친척에게 3개월 동안 신세를 지게 되었다. 최고기온이 40도에 육박하는 교토에서 여름을 나며 일본의 여름이란 무엇인지 제대로 체험할 수 있었다. 


여름내 여러 축제(마츠리)가 이어졌는데, 일본의 3대 축제 중 두 군데를 경험할 기회가 있었다. 약 1000여 년 전부터 이어져온 교토의 기온마츠리는 7월 내내 교토에 활기를 더한다. 저녁이 되면 교토 중심부의 야사카 신사 앞으로 가게들이 하나 둘 들어서고 거리가 축제 분위기로 변한다. 유카타를 입고 북적이는 거리를 걷다가 마음에 드는 포장마차에 들러, 아이스박스에서 막 꺼낸 맥주를 한 캔 집어 들고 타코야끼와 야끼소바를 안주 삼아 먹으면 여름밤의 들뜬 기분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7월 말, 옆동네 오사카에서 열린 텐진마츠리에도 들렀었는데 시끌벅적한 분위기와 끝없이 이어지는 포장마차, 밤하늘을 수놓은 불꽃놀이가 한 데 어우러져 여름의 정수를 맛볼 수 있었다. 


축제가 없는 날에도 야외에서 바비큐를 해 먹거나 종종 열리는 불꽃놀이를 구경하곤 했다. 이때 야끼 삼총사가 빠지지 않았는데, 이들의 짭조름하고 달짝지근한 맛이 태양의 강렬함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땀으로 빠져나간 염분을 보충해주는, 여름의 맛 그 자체였다. 

외식 버전과 집밥 버전의 오코노미야끼

야끼 삼총사 중 가장 좋아하는 건 오코노미야끼인데, 오사카 출신 친구에게 레시피를 배운 후 한동안 매일같이 만들어먹곤 했다. 오코노미()는 취향이라는 뜻으로, 좋아하는 메뉴를 양배추 반죽에 넣고 부치기만 하면 되는 요리다. ‘취향대로'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여러 변주가 가능한데 가장 기본적인 메뉴는 돼지고기와 계란을 넣은 부타타마(豚卵)다. 이 외에 새우 및 오징어가 들어간 해물 메뉴나 명란, 떡, 그리고 치즈가 들어간 멘타이모찌치즈 메뉴가 인기가 많다. 히로시마풍 오코노미야끼는 밑에 굵은 면이 깔려있는데 두툼하고 묵직한 것이 그만의 매력이 있다. 도쿄에서는 비슷한 메뉴로 몬자야끼가 있는데 좀 더 흐물거리면서 쫀득한 질감으로 철판에서 조금씩 긁어먹는 재미가 있다. 이처럼 다양한 재료와 형태를 수용하는 포용성이 이 메뉴의 가장 큰 매력이다. 


오코노미야끼는 우리나라의 부침개와 비슷하다. 조리법이 간단한데 계란과 양배추가 들어가서 건강한 느낌까지 드는 고마운 요리다. 계란, 부침가루, 양배추 채 썬 것을 정성스레 섞은 후 먹고 싶은 재료를 반죽에 투하하고, 이를 기름을 두른 프라이팬에 노릇노릇하게 지지면 끝이다. 여기에 돈가스 소스 또는 굴소스, 마요네즈를 차례로 뿌리고 위에 가쓰오부시를 올려주면 그럴듯한 오코노미야끼가 완성된다. 현지에선 파래 김가루를 같이 뿌려먹는데, 나는 여기에 볶은 건새우를 올려서 풍미를 살려 먹는 편이다. 


한 여름 축제의 기분을 느끼고 싶을 때, 오코노미야끼를 한 장 구워 맥주를 곁들여 먹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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