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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준현 Oct 18. 2020

카프레제

짭짤함과 담백함이 조화를 이룬, 태양의 맛

이탈리아의 감성을 꽤 좋아한다. 내게 이탈리아는 태양, 열정, 뜨거움, 예술이다. 이태리의 음식에도 이런 이미지가 고스란히 배어있다. 토마토와 각종 향신료가 들어간 짭조름한 이탈리아 요리를 먹을 때면 한여름 뙤약볕의 강렬함이 느껴진다. 천혜의 자연환경 아래 햇살을 넉넉히 받고 자란 식물과 동물, 인접한 바다에서 잡아 올린 싱싱한 해산물을 원재료로 한 요리에 올리브 오일만 살짝 뿌려줘도 금방 하나의 예술 작품이 탄생된다. 여기에 잘 숙성된 와인까지 곁들여주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오죽하면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의 작가도 먹기 위해 이탈리아로 갔을까. 


처음으로 유럽 여행을 갈 기회가 생겼을 때 망설임 없이 이탈리아로 떠났다. 맛깔난 음식을 와인과 곁들여 원 없이 먹고,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가들의 수작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었다. 

약 2주간 밀라노부터 나폴리까지 이탈리아 여행을 하며 먹고, 마시고, 감동(eat, drink and feel)하는 나날들을 보냈다. 여행 중 먹었던 모든 음식들에 감탄했다. 음식이 전반적으로 짜다는 사람도 있지만, 그 맛조차 이탈리아의 '뜨거운' 분위기와 꽤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음식이 슴슴했다면 오히려 고유의 분위기를 온전히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이탈리아에서 가장 많이 접한 식재료는 토마토, 치즈, 그리고 바질이었다. 각각의 재료가 이탈리아 국기의 적색, 백색, 그리고 녹색을 띠고 있어 상징적인 의미가 있어서인지, 마르게리타 피자를 비롯해 여러 요리에 빠지지 않고 들어간다. 이 재료들로 만들 수 있는 가장 간단한 음식이 카프레제다. 

집에서 간단히 해먹을 수 있는 카프레제. 왼쪽은 소금과 후추를 곁들였고, 오른쪽은 바질페스토와 프로슈토를 곁들였다.

카프레제는 얇게 썬 토마토, 모짜렐라 치즈, 바질 잎을 교대로 얹은 후 위에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을 뿌린 샐러드다. 정식 명칭은 인살라타 카프레제(번역: 카프리식 샐러드)로 이탈리아 남부 휴양지 섬인 카프리에서 그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몇 안 되는 재료로 간단히 만들 수 있는데 동시에 맛까지 있어, 내게는 효율이 참 좋은 메뉴다. 


나는 산뜻하면서 가벼운 식사를 하고 싶을 때, 또는 식전 입맛을 살리고 싶을 때 카프레제를 해 먹는다. 정갈하게 저민 토마토와 모짜렐라 치즈를 교대로 얹은 후 후추만 뿌려주어도 그럴듯한 카프레제가 완성된다. 물기를 머금은 토마토의 짭짤함과 모짜렐라의 담백함, 고소함이 조화를 이뤄 단조롭지 않은 맛을 연출한다. 제대로 세 가지 재료를 사용해 먹고 싶을 때는 바질 페스토를 얹어 맛에 풍성함을 더한다. 바질 잎을 얹는 것이 정석이겠지만 보관이 용이하지 않아, 오래 먹을 수 있는 페스토를 사용하고 있다. 여기에 부드러우면서 짭조름한 프로슈토를 이불처럼 덮어주면 식감과 맛이 더욱 풍부해진다. 조화롭게 재료가 올라간 토마토 슬라이스를 집어 들고 한 입에 쏙 넣고 음미해보면 이탈리아의 강렬한 태양을 잠시나마 느낄 수 있다. 나는 이를 '태양의 맛'이라 부른다. 


날이 춥다. 선뜻 어디로든 여행을 떠나고 싶은 가을이다. 

비행기는 탈 수 없지만, 카프레제를 한 입 음미하며 잠시 이탈리아로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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