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겨운 모임의 맛
막걸리를 제대로 접한 것은 스물한 살, 남들보다 한 해 늦게 대학에 들어갔을 때 즈음이다. 그전까지는 제사나 가족 모임에서 먹었을지도 모르겠다. 막걸리 찬가가 응원가로 있을 정도로 막걸리를 사랑하는 학교에 다니다 보니 자연스레 이모집, 고모집, 나그네 파전을 들락날락 거리며 탁주를 마셔댔었다. 면역이 생겨서인지 남들은 숙취가 심하다는데, 막걸리를 진탕 마신 다음 날에도 멀쩡한 나 자신이 대견스러울 정도였다.
학교 주변의 푸근한 식당들에는 대학 시절 추억이 묻어있다. 동아리나 학회가 끝난 밤이면 정감 가는 이름들의 식당에 곧잘 들르곤 했다. 테이블 당 대여섯 명이 모여 앉아서 안주와 술을 곁들이며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다 보면 시간이 참 빨리 갔다. 그래서인지 세월과 함께 음주 문화가 바뀌고, 추억의 장소들이 문을 닫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마음 한 편이 아릿했다.
대학 시절 생긴 막걸리 사랑은 이후로도 쭉 이어졌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선 셰막, 백곰막걸리 등 맛있는 막걸리를 마실 수 있는 곳에 방문하기 시작했다. 지평막걸리, 장수막걸리 외에 참 다양한 막걸리들이 있다는 것을 이때 알았다. 덕분에 깔끔함이 일품인 백련막걸리, 청량감에 행복해지는 복순도가 등 좋아하는 탁주가 많이 생겼다.
탁주에 곁들여먹는 김치전, 파전, 두부김치, 도토리묵 등은 술의 감칠맛과 풍미를 더해준다. 안주 없이 먹는 술은 팥소 없는 찐빵 같달까. 그래서인지, 이런 음식들을 먹으면 나도 모르게 대학시절 추억이 떠오르며 정겨운 분위기에 젖는다. 얼마 전 한식이 먹고 싶어 김치전과 도토리묵을 해 먹었는데 집에서 혼자였지만 문득 명절 분위기를 느꼈던 것도 이 때문인지 모르겠다.
김치, 부침가루, 그리고 기름만 있다면 몇 분 안에 김치전을 뚝딱 만들 수 있다. 김치와 부침가루, 물을 적정 비율로 섞어 만들어진 되직한 반죽을 기름을 두른 프라이팬에 부치기만 하면 끝이다. 김치 2, 부침가루 1 정도의 비율이 적당하다. 다양한 응용이 가능한데 여기 캔참치를 넣어도 좋고, 가끔 모짜렐라 치즈를 위에 솔솔 뿌린 후 녹여 먹기도 한다. 두부김치나 다른 전들도 조리법이랄 게 따로 없다. 잘 섞은 반죽을 팬에 부치거나, 노릇하게 구운 두부 위에 볶음김치를 얹어 먹기만 하면 끝. 이들은 간단히 조리할 수 있으면서 마음의 따뜻함까지 채워주는 최고의 코리안 소울푸드임에 틀림없다.
김치전을 먹을 때는 도토리묵과 해초 샐러드를 곁들여 먹는 것을 추천한다. 이들 재료의 담백함, 새콤함이 김치전의 기름기를 잡아주어 메뉴에 균형감을 더하기 때문이다. 간장에 참기름을 소량 섞어 묵과 샐러드에 뿌려주면 고소함이 더해지면서 각각의 재료들의 매력이 배로 올라간다. 김치전 한 입, 도토리묵 한 입을 번갈아 먹고 있자니 좋아하는 사람들과 도란도란 얘기하던 추억이 떠오르며 마음이 뜨듯해졌다. 반주를 부르는 맛이랄까.
문득 대학 시절 친구들이 그리울 때, 따뜻한 전을 부쳐 먹으며 마음의 온기를 채워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