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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십리터 Dec 09. 2020

유럽이 사랑한 유럽, 미국

미국이 그리워한 미국, 유럽

한반도를 기준으로 지구본을 이쪽으로 돌리면 북미, 저쪽으로 돌리면 유럽이 나온다.

지구 반대편, 양쪽에 있는 하나의 서양권. 이쪽으로 가면 미국, 저쪽으로 가면 유럽. 이쪽에 있던 사람들이 저쪽으로 가서 만든 나라. 한국에서 보는 두 땅은 똑같이 낯설어서 같은 곳처럼 인식됐다.

두 대륙을 모두 가보고 난 이후에서야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를 깨달았다. 두 대륙이 그리 친밀한 관계가 아니라는 사실도 성인이 되고서야 인지했다.

너무 늦은 깨달음이다. 유럽 연합 안에서 이 나라가 나가겠다고, 저 나라가 탈퇴하겠다고 난리를 치고, 미국에도 남북전쟁이 있었다. 각각의 대륙 안에서도 싸움이 일어나는데 두 대륙 사이가 좋을 리 없다. 이 당연한 이치를 너무 늦게 알았다.

영국 그리니치 천문대의 지구본과 무역에 사용되던 범선 커티삭호. 행운의 편지는 어디에서 시작했는지 모르지만 세계표준 시간은 영국에서 시작한다.

나에게 유럽은 교과서였다. 모든 교과서에 나오는데 본 적은 없는 세계.

성인이 된 이후에야 유럽에 가봤다. 주입식 교육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20대 초반 여대생에게 꿈과 모험의 세계는 놀이공원이 아니라 유럽 대륙이었다.

무슨 말이냐면 내가 보는 유럽은 객관성이 떨어진다. 단언컨대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던 순간보다 내가 구라파를 방문하던 순간에 씐 콩깍지가 더 두껍다.

몇 번 더 유럽 국가들을 방문하면서 콩깍지를 씹어먹게 됐다. 전보다 현실적인 필터로 백인들의 나라를 보게 됐다.

베르사유 궁전의 방들. 옛날엔 이런게 그렇게 좋더니 지금은 이렇게 좋다.

유럽이 환상이었다면 미국은 꿈이었다. 흐린 기억 속의 그대랄까.

미국 땅을 밟은 첫 경험은 중학교 때였고 뭘 보긴 보았으나 기억이 없다. 그래서 미국은 잃어버린 추억이었고 결국 안 가본 셈 치기로 했다. 따라서 첫 방문이 아닌 그로부터 십수 년이 지난 두 번째 방문을 첫 미국여행으로 카운팅한다.

서른이 되기 직전에서야 기억할 수 있는 미국여행을 했다.

드디어 두 대륙에 모두 이야깃거리가 생기고서야 알았다.

한국인은 미국과 유럽 중 한 놈만 팬다.

뉴욕의 EU.  미국과 전 세계, 무엇보다 유럽은 무슨 관계일까.

그렇다. 꽤 많은 사람이 여행을 편식한다.

이게 당연한 소리이기는 한데 미국 여행 중에는 유럽에 못 가본 사람을, 유럽 여행 중에는 미국에 못 가본 사람을 많이 봤다.

두 나라 모두 가볍게 마음먹고 여행할 수 있는 곳은 아니다. 내가 신기했던 건 둘 다 가 볼 기회가 얼마든지 있어도 취향이 한쪽에만 소나무인 여행자가 많다는 점이었다.

유럽으로 장거리 여행을 시작한 사람들은 영국 다음에 프랑스, 프랑스 다음에 스페인, 북유럽 동유럽으로 떠난다. 미국여행을 시작한 사람은 엘에이 다음에 뉴욕, 다음에 시애틀, 플로리다로 떠난다.

이쪽에 간 다음엔 저쪽에 가보고 싶은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 나에게는 좀 뜻밖이었다.

유럽은 여러 국가가 모여 있어서 그렇다 치지만 미국은 하나의 나라인데도 그렇다(물론 미국 땅 하나가 유럽 대륙 이상의 크기임을 몰라서 하는 말이 아니다.).

신기했다. 뭐가 그렇게 달라서 취향이 한쪽으로만 치우치는 사람들이 있을까.

대체 유럽과 미국은 뭐가 다르지?

그래서 관광객의 관점에서 다른 점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이건 철저한 나라는 관광객으로서 바라본 시점이다.

미국 탄생 시절에 넘어오던 사람들의 여권.

왕의 흔적이 남은 중세 궁전을 유럽답다고 느끼고, 할리우드 스타들이 스포츠카를 타고 들어가는 저택을 미국답다고 느낀다. 관광객이 보고 싶은 모습이 정 반대다. 관광 동선이 여기에 맞춰진다.

유럽 관광은 성당으로 시작한다. 유럽의 구도심 자체가 성당을 가운데 두고 형성되어 있다. 당연히 도시의 근간이 되는 성당을 보고, 도시의 주인이었던 왕이나 영주의 성을 본다. 그 뒤에 주변의 건물을 이용해서 만든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간다.

미국 관광의 순서는 다르다. 미국에도 성당이 있지만 그보다는 록펠러센터 앞 크리스마스트리가 더 유명하다. 종교를 보더라도 성당이 아닌 크리스마스 트리를 보며 성스러움보다 흥겨움을 느낀다.

록펠러센터 트리와 스페인 말라가의 성당 풍경.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미국 관광은 보통 공원으로 시작한다. 무슨 무슨 파크들이 관광의 중심이다. 뉴욕의 센트럴파크, 샌프란시스코의 골든게이트파크, 샌디에고의 발보아파크 등등. 미국 대도시는 파크를 중심으로 관광 동선이 나온다.

미국 대도시의 공원이 우리가 생각하는 동네 놀이터와 다른 탓이다. 지도에서 이 지역은 왜 전부 초록색이야 싶은 곳이 있다면 거기가 공원이다. 미국의 파크는 크다.

이 파크 안에 나무와 잔디밭, 호수, 야생동물은 기본이고 미술관, 박물관, 동물원 등등 온갖 시설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뉴욕 맨해튼의 경우 지도를 보면 센트럴파크를 이따위로 크게 지어놨으니 주변에 고층 건물이 들어선다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 서울대학교에 가기 위해 서울대입구역에 내리면 큰일 나듯이 센트럴파크의 어느 지점에 가느냐에 따라 내려야 하는 지하철역이 전혀 달라진다.

여기부터 저기까지 전부 샌디에고의 발보아파크 한 공간

미국의 도시를 다니면 유럽의 신도시에 온 기분이 든다. 네모반듯한 블록 속에 블록 같은 건물들이 꽉꽉 차 있다. 미국의 길 찾기는 오래된 건물 사이사이 좁은 골목길을 헤매야 하는 유럽과 길을 걷는 방법이 다르다.

환상 속의 유럽이 과거에 있고, 상상 속의 미국이 현대에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도 구도심은 있고 유럽에도 신도시는 있지만 관광객이 주로 다니는 곳은 아니다.

유럽감성과 미국느낌, 그 경계는 어디일까

사람들의 분위기는 반대다. 유럽 사람들은 조금 더 정형화되어 있고 미국 사람들은 제멋대로다. 이 부분은 당연히 편견이겠지만 그런 선입견이 불쑥 올라오는 순간들이 문득 찾아온다.

유럽의 구도심은 관광객을 위한 거대한 세트장이다. 생활 터전의 기능을 잃고 관광객을 위한 역사 테마파크 느낌의 도시가 많다.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은 관광객을 위한 NPC 같은 존재다. 명동이 한국인이 찾지 않는 한국다운 관광지가 된 것과 비슷하다.

반면 미국에서는 출퇴근하는 사람들과 직접 닿는 일이 많다. 뉴욕은 관광지이지만 동시에 삶에 찌든 뉴요커들이 일하는 터전이다.

어딜 가도 관광지에서 관광객을 상대하는 상인의 행동은 비슷하다. 적당히 친절하고 매뉴얼대로 행동한다. 내일이면 떠날 사람에게 대단한 호의를 주지도 않는다. 반면 출퇴근 길에 마주치는 사람들의 표정은 다르다.

미국인이 자유롭다는 편견은 진짜 개인의 성격이 전부 밝고 맑기 때문은 아니다. 미국 인구가 1,2억 도 아닌데 그들 모두가 캘리포니아 걸일 순 없다.

미국에는 지나치게 다양한 인종이 섞여 산다. 누군가를 볼 때 보이는 게 한 사람의 성격이 아닌 인종의 배경일 수 있다. 여러 인종과 종교, 민족, 문화의 성향이 한 프레임에 들어온다. 뭐가 많이 보이니 어지럽고 그 혼란을 자유로움으로 착각하기 쉽다.

당연히 캘리포니아에도 우울증 환자가 있고, 유럽에도 자유로운 영혼이 있다.

미국 느낌나는 유니버셜 칭긔들

제일 신기한 건 노숙자를 볼 때였다. 사회에서 밀리고 밀려 가장 밑으로 떨어진 사람들의 모습이 차이가 났다.

한국에서 소위 말하는 거지란 지하철에 출몰해서 승객 사이사이를 누비는 사람들이다. 이게 이상하는 건 처음 유럽에 갔을 때 느꼈다.

종점의 기적이라 불리는 한국 지하철의 구걸인들은 너무 능동적이고 주체적이다. 왜 한국인들은 구걸조차 열심히 하는 걸까.

유럽에서 구걸하는 사람들은 가만히 있는다. 걷지 못하는 척, 보지 못하는 척, 불쌍한 척하면서 주체적으로 돈을 달라 말하지 않는다.

그저 바닥에 눕고 벽에 기대 남들이 알아서 돈을 주길 기다린다. 신기하게도 나는 그들이 주눅 들어 보이지 않았고, 나에게 위협적일 것 같지도 않았다. 가끔이지만 노숙자에게서 젠틀함이 보이기도 한다.

미국에서 본 노숙인들은 가장 충격적이었다. 일단 그 숫자가 상당하다. 미국의 홈리스는 사회 시스템이 무너지면서 한꺼번에 쓸려 나왔다. 사회에 울분이 많아서인지 정신병 증세를 보이기도 하고 그들끼리 큰 싸움도 벌어진다.

쓰레기통을 뒤지는 홈리스와 눈이 마주쳐서 인사를 나눈 적도 있는데 표정만큼은 밝았다. 푸트코트에서 밥을 먹으면 옆에 앉아서 흥겹게 말을 걸다 남은 음식은 내가 치워주겠다며 가져가 맛있게 먹거나 편의점 문을 열어주고 팁을 달라고도 한다. 미쳐 있을지언정 우울하지 않다.

유럽대륙의 끝, 포르투갈의 낡은 건물들

두 대륙은 관광객에게 보여주려는 바가 다르다. 유럽이 과거의 왕과 역사와 문화를 전시한다면, 미국은 부자와 자본과 자유를 자랑한다.

박물관과 미술관만 가봐도 티가 난다. 유럽에서 보는 르네상스 미술품들은 그 속에 다양한 계층의 삶과 성격 책 속 교훈을 읽어낸다. 미국 대도시에서 가장 유명한 미술관은 주로 현대미술관이다. 모마에서는 예술성은 둘째 문제고 이 물건의 어떤 포인트를 미술로 봐야 하는지부터 고민하게 된다.

미술관 건물 자체도 유럽은 옛날 궁전이고 미국은 외관부터 화려하다. 미술관뿐 아니라 모든 건물이 그렇다. 유럽에는 고성을 개조한 역사를 즐기는 호텔이 있다. 미국에는 규모로 승부하는 호텔이 많다. 라스베이거스의 휘황찬란한 호텔은 유럽의 풍경에 넣기에는 이질적이다.

두 대륙을 일궈낸 바탕이 다르기 때문이다. 유럽은 백인들이 오랜 세월 동안 축적한 역사가 있고 미국에는 단기간에 얻은 막대한 부가 있다. 서로가 부러워할만한 두 가지다.

유럽 사람들이 미국을 천박한 자본주의라고 부를지라도 유럽의 젊은 층은 미국의 자유도를 부러워한다. 미국이 자본으로 전 세계를 조종하고 있지만 그들은 유럽에서 온 이민자로 시작했다.

과거에는 역사로, 현재는 자본으로 연결된 두 세계다.

아메리카와 유럽은 긴밀한 관계

어쩌면 미국은 유럽인들이 생각한 유토피아의 구현이 아닐까?

유럽에서 미국으로 옮겨 온 사람들은 당시 유럽 사회에서 조금씩 밀려난 사람들이었다. 새로운 권력과 땅이 필요한 사람들이 신대륙을 원했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자신을 밀어낸 땅 대신에 낙원이 되어주길 바랬겠지. 아메리카 드림은 한국에만 있는 게 아니다.

이렇게 하면 이상향이 만들어질 줄 알았으나 결국 역사는 반복되고, 진짜 유토피아 건설은 실패했다. 새로운 문제가 발생했으니까. 두 대륙이 비슷해 보였다면 서로가 서로에게 갖고 싶었던 부분을 만들고, 빼앗고, 도려내고 싶은 부분을 잘라내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했기 때문이 아닐까?

유럽이 사랑한 유럽이 미국이 되고, 미국이 돌아가고 싶은 미국이 유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스의 파르테논신전과 뉴욕 공립도서관의 외관이 미묘하게 닮아보이는 건 착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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