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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십리터 Sep 12. 2023

니모를 찾다, 나를 찾았다

코타키나발루와 스노클링 첫 경험

코로나 때문에 여행을 못 다닌 지 2년 정도.

사람이 2년 정도 해외여행을 못 가는 게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런데 안 가는 게 아니라 못 간다고 생각하니 참 가고 싶더라.

그래서 역병의 눈치를 보지 않게않게 된 올해는 보복하듯 여기저기 많이 다니는 중이다.

네가 아무리 돌아다녀 봐라. 내가 더 여기저기 돌아다닐 테다.

코로나씨 입장에서는 이런 내가 우습겠지만 그런 마음가짐이다.

그런 마음으로 여행을 알아보다 깨닫는다.

이게… 비행기표가 원래 이렇게 비싼 물건이던가?

여행 중 마시는 맥주, 이게 너무 그리워서 나가고 싶었다

요즘 여행의 장벽은 사실 코로나 보다 높아진 기름값이다. 코로나와의 전쟁이 끝나는가 싶으니 진짜 전쟁이 터져 유류할증료와의 전쟁을 벌일 줄이야.

그렇게 틈새의 틈새를 노려 해외로 가는 비행기 중에 제일 싼 놈을 발견해 본다.

애초에 ‘해외’가 가고 싶은 거지 특별히 가고 싶은 나라가 있었던 것은 아니니까 그냥 아무거나 샀다.

그렇게 결정된 목적지는 코타키나발루.

누가 정했는지는 모르는 세계 3대 선셋을 가졌다는 그곳, 코타키나발루

티켓을 발권한 이후에 가야 할 이유를 만들었다.

나 휴양지 안 가봤잖아.

이제 나도 30대니까 휴양도 좀 시작해 보자.

지금까지 한 번도 안 가본 새로운 곳에 가보자.

휴양지를 싫어해서 안 갔던 주제에 변명이 길어진다.

그렇게 기대도 없이 코타키나발루로 갔다.

인천에서 비행기를 타고 5시간 10분.

휴양지라더니 가는 길은 휴양이 아니다.

도착하기 전부터 한국인들이 코타를 동남아의 다른 여행지보다 상대적으로 덜 선호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필리핀처럼 가깝지도 않고, 베트남처럼 음식이 입맛에 맞지도 않고,  태국처럼 화려하지도 않다.

코타키나발루에서 제일 유명한 건 선셋이다. 일출, 일몰이 관광 상품이라는 건 다른 건 볼 게 없다는 의미다.

나는 그런 곳에서 열흘이 넘게 있었다.

그래서 불만이었냐고?

아니, 좋았다.

왜 좋았냐면, 아무것도 안 해서 좋았다.

안 그래도 할 일 없기로 유명한 코타에서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남들 다 하는 반딧불 투어, 시티 투어 등등의 관광은 하나도 하지 않았다.

핑크모스크도, 필리핀 마켓도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

내가 코타에서 본 건 오직 바다였다.

아침마다 호텔 창문으로 바다의 모습을 확인했고, 저녁마다 선셋이 깔리는 바다를 보았고, 태양이 머리 꼭대기로 올라가면 바다로 빠져버렸다.

눈을 뜨면 호텔의 통창으로 보이는 바다

바다.

그렇다.

코타키나발루는 그저 바다 하나로 설명할 수 있는 곳이었다.

사실 나는 바다에서 노는 걸 싫어했다.

귀신이 나오는 흉가보다 태양이 내리쬐는 모래밭이 더 무서운 햇빛 알레르기 환자이니 어쩔 수 없다.

수영장도 남들이 사진 찍으려고 환장하는 인피니티풀보다 햇빛을 막아주는 천장 아래서 헤엄치는 걸 더 좋아한다.

온몸에 짠물을 뒤집어쓰고 수영복에서 소금과 모레를 빼려고 괴로워하는 건 내 취향이 아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스노클링 장비를 사면서도 헛돈을 쓰는 줄 알았다.

그냥 현장에서 돈 주고 잠깐 빌려 쓰면 되는 걸 괜히 사서 한국에서 이고 지고 간다고 생각한 것이다.

솔직히 마스크를 사서 라이터로 유막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현타가 좀 왔다.

그런데 올해의 돈지랄인 줄 알았던 스노클링 마스크가 가장 후회 없는 소비가 되어버릴 줄이야.

나는 생각보다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아니, 바다 근처는 싫지만 바다 속은 좋아했다.

제셀톤 포인트에서 티켓을 사다 만날 수 있는 동네 주민

바다에 가기 위해서 제셀톤 포인트에서 섬으로 가는 배의 티켓 가격을 흥정해야 한다.

흥정 과정에서 인터넷에서 본 적정 가격을 말하니 정색하며 저리 꺼지란다. 바로 옆 사람은 또 그 가격에 해준다.

나는 이런 소모적인 과정과, 내가 얼마에 물건을 사도 호구가 되는 시스템을 극혐한다.

정찰제가 좋아서 마트만 가는 나로서는 이미 이 과정에서 기운이 빠졌다.

그렇게 흥정을 해서 배를 기다리면 배는 제시간에 오지 않는다.

배를 타면 제시간에 출발하지 않는다.

섬에 들어가기 전부터 기운이 빠진다.

아무리 기다려도 배가 오지 않아서 고양이랑 친구가 되었다

아무래도 이 짓을 또 할 것 같지는 않으니 오늘이 처음이자 마지막 스노클링이 될 것 같다.

그렇게 태어나서 처음 바다로 갔다.

그런데 이를 어쩌나.

바다가… 재밌다.

바다는 정말 땅과는 달랐다.

유튜브로 대충 스노클링 마스크 사용법을 배우고 구명조끼를 입고 물에 들어갔다.

생각보다 호흡은 쉽다.

스노클링 마스크를 쓰고 얼굴을 바다에 묻으니 갑자기 세상이 변한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 물이다.

무엇보다 소리가 달라진다.

속을 시끄럽게 만드는 세상의 모든 잡소리가 찰나에 사라지고 물의 흔적이 들리기 시작한다.

배우다 만 수영 실력으로 짧은 다리를 움직였더니 갑자기 물고기들이 보인다.

발밑에 산호초가 펼쳐진다.

아름답다.

너무 아름답다.

내가 물속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황홀하다.

물 속에서 찍은 동영상을 실수로 다 삭제해서... 남은 사진이 별로 없다. 이건 씨워킹 하면서 찍은 사진!

그 순간부터 바다가 달라 보인다.

항상 표면만 보다 속을 들여다보고 나니 더는 내가 알던 그 소금물이 아니다.

나는 저 속에 사는 니모와 이름 모를 물고기, 산호를 알고 있으니까.

나는 이런 순간들이 참 기적처럼 느껴진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오는 신비로움.

바다에 들어갈 때마다 지금껏 가본 적 없는 곳에 나를 들이미는 기분이었다.

모든 소리가 먹먹해지는 순간 역설적으로 내가 내는 소리들에 민감해진다.

사방이 물로 가득하니 내가 어떤 몸짓을 하는지가 생생하게 느껴진다.

바다에 들어가면 자꾸 내가 누구인지가 보인다.

그 순간 이 거대한 바다에 딱 나 하나만큼 부피가 더해지며 나도 바다가 된다.

인어공주가 물 위를 동경했듯, 나는 물 속을 경애하게 된다.

그렇게 나는 코타에 있는 동안 최대한 바다에 갔다.

예상치도 못한 즐거움을 하나 알아버린 것이다.

아직도 몇달 전에 듣던 바다의 소리가 생생하다.

처음 가보는 곳에서, 처음 하는 일을 해보자는 시도는 성공했다.

왜 사는가 싶다가도 그렇게 우연히 만나는 기쁨이 있어서 계속 살게 되는가보다.

그런 순간을 발견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때가 여행할 때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여행을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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