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애매한 인간 Sep 07. 2023

사하라 사막에서 모래 한 알을 움직였을 때의 변화

네 번째 직업, 작가

<엄마는 카페에 때수건을 팔라고 하셨어>라는 엉뚱하면서도 긴 제목의 에세이를 출간한 이후로 나는 '작가'라는 명칭을 얻게 되었다. 처음 '작가'라고 불리었을 때 온 손가락과 발가락이 몸 둘 바를 몰라 베베꼬였다. 내가 작가라고 불려도 괜찮은 걸까, 내가 과연 작가는 맞을까, 내가 쓴 이 글이 '책'이라고 불려도 되는 걸까. 문학에 대한 처절한 고민도, 예술성에 대한 고뇌도,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도 막연했던 글들도 '글'이 될 수 있는가.


내가 쓴 문장이 비문인지 아닌지 조차 몰라 '맞춤법 검사기'만의 나의 유일한 글쓰기 선생님이었다. 그런 나의 글들은 하나같이 버석거리는듯했다. 글자가 모여 단어가 되고, 단어가 문장이 되고, 이어 행과 연이 만들어지는 법이다. 하지만 책 속 어디에서 나의 문장들은 왜 합주를 하지 않고 괴상한 변주를 일삼는 걸까! 수많은 에피소드들이 모여 한 권이 책이 되었건만 어째서 작가만의 시선과 통찰력이 엿보이는 문장도, 문학성이 보이는 문장도, 반짝이며 매력을 발산하는 문장도 없는 걸까!


비관은 비관을 낳고, 무한 증식하는 비관의 끝에 낙관을 발견하게 된다.


아, 나는 진심으로 작가가 되고 싶은 거였구나.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호칭이나 직함으로서의 작가가 아니라, 진심으로 작품에 대해 고민하고 고뇌하여 세계를 확장하는 작가가 되고 싶었구나. 그래서 욕심이 났던 거구나. 첫 책 <엄마는 카페에 때수건을 팔라고 하셨어>에 특출 난 문장 하나 없지만, 별거 아닌 한 문장을 읽고 밑줄을 긋는 이들이 있기에 마음이 더 조급해졌구나. 책 속 에피소드들을 읽으며 눈물짓기도, 웃기도 하는 독자들이 있기에 감정을 더 다채롭게 보여주고 싶었구나. 내 이야기가 '글'이 될 수 있음을 이들을 통해 깨닫는다.


사하라 사막 한복판에 내려서 핀셋으로 모래 한 알갱이를 집어 1밀리미터 옆으로 옮겨놓는다면 어떻게 될까?(*) 그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내가 쓰는 글을 쓰는 행위 또한 이와 같을지 모른다. 어떠한 예술성, 사회적·역사적 의미도 없는 활자들의 흩뿌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자못 무의미한 글쓰기가 나 자신을, 타인을, 그리고 세계를 조금이나마 바꿀 수 있을 거라 믿기로 했다. 수많은 비관 속에 낙관 한 알을 집어 들기로 했다. 사하라는 광활한 대무변의 사막이다. 수백만 년 동안 존재해 왔던 그 사막을, 모래 한 알 움직여 바꿀 수도 있음을, 그 가능성을 나는 믿기로 했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책 참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