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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매한 인간 Oct 12. 2023

지역서점 예산 삭감 예고를 지켜보는 책방지기

첫 번째 직업, 책방지기의 사연

우리 서점은 매달 20여 개가 넘는 독서모임을 비롯하여 다양한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지방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작가님을 초청해 북토크쇼를 하기도 하고, 지역민들을 '일일 책방지기'로 고용하여 공간을 함께 꾸려나가기도 하며, 지역 공예가·예술가와 함께하는 원데이클래스, 여러 소상공인과 함께하는 북마켓 등의 굵직한 행사도 진행하고 있다. 고작 8평 남짓한 서점에서 이런 프로그램을 개최할 수 있었던 것은, 정부나 지자체의 예산 도움이 크다.


정부나 지자체의 공모사업은 여러 목적이 있을 테지만, 나는 공모사업의 진정한 목적은 여기에 있다고 본다. 정부나 지자체에서 직접 하기 어려운 다양한 활동들을 하는 것, 공무원들이 발 벗고 나설 수 없는 부분을 섬세하게 챙겨주는 것, 조직에서는 실행하기 어려운 무수히 많은 기획들을 실험해 보고 실현해 보는 것. 그래서 나는 공모사업이 단순히 예산을 교부받는 것이 아니라, 협업하는 하나의 프로젝트라 여겼다.


그러나 오늘에서야 나는 나의 정확한 위치를 깨닫는다. 예산을 주고받는 시점부터가 '갑'과 '을'의 위치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정부의 지역서점 예산 삭감 소식에 '반대한다고 말해서 괜히 미움사면 어떻게 하지?'라는 걱정부터 했다는 사실을, 조선일보에서 인터뷰를 하자는 말에 '서점 블랙리스트가 있는 거 아닐까?'라는 생각부터 했다는 사실을, 오늘 글을 쓰기까지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는 사실이 나를 더 슬프게 만든다.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서점에서 어떤 활동들을 하고 있나요?"라고 묻길래, 마음 편히 답변했다. 매일이 활동들로 가득 차있기에, 매일이 만남으로 채워져 있기에 답변할 거리가 많았다. 내 답변을 듣던 기자는 이런 말을 한다. "가성비가 좋네요. 예산규모가 100만 원 남짓한데, 참여자수나 만족도가 굉장히 높은 걸 보면요. 실제 경력단절여성이나 미취업청년의 일시적 고용효과도 있고, 지역소상공인에게도 도움이 되는 것 같거든요."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기사에는 '지역서점 지원은 예산 투입 규모에 비해 효과가 큰 사업이었다. 지역서점들은 지원금을 활용해 문화 콘텐츠가 없는 소도시에서 ‘복합 문화 공간’의 역할을 했다'라고 쓰인걸 보니, 말을 잘 다듬어주신 것 같아 고마우면서도, 어쩐지 마음 한편은 씁쓸했다.


프로그램을 원활하게 운영하기 위해서 가족들의 노동력을 밤낮 할 것 없이 '무상'으로 빌려야 했고, 동네서점을 지켜야 한다고 말하는 애정 어린 지역민들의 손길을 '무료'로, 그것도 빚진 마음으로 받아야 했다. 그들에게 보답하는 길은 '매일상을 문화롭게, 매일을 따스하게' 모임을 운영하는 것 밖에 없었다. 그래서 꾸역꾸역 예산을 따냈다. 기획서를 쓰고, 예산을 짜고, PPT를 만들고, 면접 보고 발표하는 이 공모사업의 일상을 당연한 서점의 의무처럼 받아들였다.


우리 서점에서 다양한 활동들을 쉬지 않고 하는 것, 그것들이 화려해 보일지 모르겠지만 사실 나는 멱살 잡고 버틴 악착같은 나날이었다. 손님들이 책을 사줄 때마다, 내 마음은 되려 무겁기만 했다. 책값도 만만찮아서 손님들은 목돈을 쓰고 가지만, 서점에 남는 돈은 이삼천 원 남짓한 돈이었다. 그런데도 책을 사달라고 하는 게 맞는 걸까, 서점이 버티기 위해서 그 부담을 손님들에게 전가하고 있는 건 아닌가 죄책감이 나를 짓누르곤 했다. 그래서 지원을 받아 운영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할 땐 마음이 놓였다. 모든 프로그램이 무료니까. '문화'는 돈 없어도 누릴 수 있는 거니까. 돈이 없어도, 우린 이 공간에서 계속 만날 수 있는 거니까.


서점만으로는 자생이 어려워, 사실 손님들에게 밝히지 않은 수많은 프리랜서 일도 하고 있다. 나도 나 자신이 대견스러운 순간들이 많다. 매일을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행사를 진행하면서도 투잡, 쓰리잡, 포잡... 을 하다니? 퇴근하고 집에 들어갈 때마다 나는 어디에서 이런 힘이 나오는 걸까 생각해 보게 된다. 서점을 붙잡고 있는 이 미련의 끈이 무엇인지 고민해 보게 된다.


결론은 사람이었다. 사람에게 상처받으면서도 사람이 좋았다. 책이라는 공통된 취미로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이 마냥 좋았다. 저마다 빛나는 그 사람들이 너무나 아름다웠보였다. 늘 따스한 응원과 격려, 위로를 건네는 그들을 통해 매 일상을 견디어 냈다. 슬픔, 분노, 짜증, 웃음 그 모든 감정을 낯선 타인과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런 그들과 손님에서 이웃이 되고, 이웃에서 친구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인문학'의 힘을 발견하기도 했다.


그래서 더 서점을 붙잡고 싶었다. 우리가 만나고, 서로를 알아가고, 연결될 수 있었던 이 공간을. 매달 20개가 넘는 독서모임과 북토크쇼, 각종 프로그램들은 개인이자 타인인 사람들이 '우리'가 되어가는 소중한 계기였다. 공간이 생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배경이자, 우리네 장소를 유지하기 위한 활력이었다. '우리'가 '우리'일 수 있게 해주는 소중한 만남의 시간이었다.


'예산에 기대지 말고 자생력을 갖고 프로그램을 운영해 봐라'라는 말은, 서점의 수익구조상 불가능에 가깝다. 그 자생력의 배경에는 분명 누군가의 희생이 있다. 그 누군가는 분명 서점만이 아니다. 비용을 전가받는 모두, 돈 때문에 문화를 포기하게 되는 그 누구가 있다. 정부의 지역서점 예산 삭감 소식을 듣고 나는 '설마'라는 말만 되뇌었던 것 같다. 외면하고 싶었던 '설마'를 직면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 온다. 이제 버틸 힘을 무엇으로 더 쥐어짜야 하는 건지, 나는 길을 잃어버린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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