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승용 Feb 08. 2021

Day 20, 백수 3년

숨고르기 연습, 서른여섯의 마지막 기록.

올해 혹은 당신의 삶에서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실패는 무엇인가요?
그리고 그 경험을 통해서 얻은 것은 무엇인가요?



 3년 백수 생활이지 않을까요. 대학 졸업을 하던 스물여덟만 해도 저는 영화감독이 되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친구들은 하나둘 대기업, 게임회사에 취업하던 때였죠. 그런 저에게 지금의 아내로부터 영화감독 할 거면 헤어지자는 말을 듣고 번쩍 정신을 차리게 됐죠. 대학 졸업식까지 마치고 ‘그제야’ 말입니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 부랴부랴 방송국에 들어갈 방법을 찾으며 들어선 ‘언론고시’의 길. 과목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신문을 읽는 데도 모르는 말들 투성이고. 막막함 속에 결국 만 3년이란 시간이 흘렀습니다.

 가뭄에 콩 나듯 뜨는 시험 공고에 낙방은 정말 물 먹듯 열심히 했습니다. 나중에 세어보니 40번은 넘게 낙방을 했더군요. 말이 40번이지 인생 제대로 바닥을 찍었습니다. 울기도 많이 울었고요. 문자 그대로 ‘토할 정도로’ 글을 쓰고 공부를 했던 기억밖에 나지 않아요. 마지막 1년은 정말 두 번 다시 없을 공부를 했습니다. 새벽에 눈 뜨자마자 도서관으로 출근해서 막차 시간까지 신문 읽고, 글 쓰고, 책 읽고, 탈고하고. 이렇게도 사람이 살 수 있구나를 느끼며 퇴근(?)했던 기억이 납니다.

 잊을 수 없는 실패라고 하기엔 그 끝이 합격이어서 진정한 실패는 아닐 수 있습니다. 허나 그 공백 기간이 없었다면 그저 그런 얕은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지금 아주 대단한 사람이 됐다는 의미는 아니고요. (웃음) 공부를 하며 만났던 열의에 가득 찬 사람들, 그리고 매일 글을 쓰기 위해 더듬이 같은 촉각을 곤두세워 바라봤던 풍경들과 사건들. 단 한 명이라도 그 긴 실패의 끝에 네가 원하던 낙원이 올 것이라고 확신을 주었더라면 조금 덜 우울했을 시간이었겠지만, 돌이켜보면 우물 밖을 처음 나와 진짜 세상을 공부한 시간이었던 셈이죠. 그때의 감수성을 토대로 지금까지 버텨왔다고 해도 무리가 아닐 만큼이요. 하지만 다시는 가기 싫은 시간이기도 합니다. (웃음)




이 글은 2020년, 서른여섯 끝자락에 서서 지난 날을 되돌아보며 쓴 글입니다.

2020년 12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magazine 컨셉진으로부터 총 31개의 질문을 받고,

매일 서른하나의 대답을 1000자 이내로 하며 써 내려간 기록임을 밝혀둡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Day 19, 깐메추리알을 파는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