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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용 Feb 08. 2021

Day 22, 이준이가 기억 못할 우리의 교감

숨고르기 연습, 서른여섯의 마지막 기록.

지금 당신이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은 무엇인가요?



 ‘오늘은 이준이랑 무얼 할까’를 제일 많이 고민하게 됩니다. 코로나가 심해지면서 한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고 있거든요. 새벽에 일어나서 저녁에 잠들기까지 꽤나 긴 시간을 함께하는데, 집에 있는 놀잇거리만으로는 확실히 한계가 있더라고요. 15개월 된 이준이도 답답한지 며칠 전에는 거실에서 놀다가 갑자기 신발을 꺼내 들고 오더라고요. 낮에는 창문에 떡-하니 달라붙어 창밖으로 지나가는 트럭과 버스를 한참 동안 구경하는데 그 모습이 퍽 미안하게 느껴졌습니다. 조금 더 창의적으로(?) 놀 궁리를 해내지 못하는 아빠의 잘못처럼 여겨지더라고요.

 하루는 너무 답답해서 단단히 무장하고 집 앞 문방구 나들이를 하러 갔습니다. 이준이가 집어 든 색연필 세트에 걸맞게 저는 이준이가 좋아하는 자동차가 그려진 스케치북을 골랐습니다. 그리고 근 30년 만에 처음 보는 듯한 색종이도 하나 집었습니다. 색종이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더군요. 가격은 500원! (웃음)

 집에 오자마자 종이비행기를 접어줄 요량이었는데 이게 웬걸... 비행기 접는 방법이 생각나지 않더군요. 겨우 기억을 더듬어가며 비행기를 만들고 이준이 앞에서 보란 듯이 힘껏 날렸지만, 얼마 날지 못한 채 비행기는 고꾸라져버렸지요. 이게 비행기인지 새인지 이준이로선 알 턱이 없었는지 금세 TV에 관심을 빼앗겼습니다. 색연필-스케치북 역시 형형색색 색칠해줘도, 이준이의 얼굴을 그려줘도, 엄마·아빠 이름을 써줘도 시큰둥한 모습에 약간 서운함이 있었지만, 다행히도 색연필 통에서 색연필을 꺼내고 뒤섞기를 반복하며 혼자 깔깔거리는 모습을 보며 아내와 저도 이준이 몰래 낄낄거리며 웃었습니다.

 아이와 놀아주는 시간이 제 인생에서 또 언제 있을까를 생각합니다. 이준이가 훗날 오늘을 기억하지는 못하겠지만, 오늘 이준이와 나눴던 교감이 이준이의 몸이 기억해줬으면 하고 생각합니다. 저에게도 어쩌면 지금이 이준이를 가장 많이 생각하는 순간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글은 2020년, 서른여섯 끝자락에 서서 지난 날을 되돌아보며 쓴 글입니다.

2020년 12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magazine 컨셉진으로부터 총 31개의 질문을 받고,

매일 서른하나의 대답을 1000자 이내로 하며 써 내려간 기록임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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