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승용 Feb 08. 2021

Day 24, 다시 꿈꿔보는 탈출구

숨고르기 연습, 서른여섯의 마지막 기록.

당신은 코로나가 끝나면
제일 먼저 누구와, 어디로
어떤 여행을 하고 싶나요?


 

 여행은 제게 ‘탈출구’였습니다. 프로그램을 만들다 보면 집에 못 들어오는 날도 많고, 촬영과 편집에 매몰되다 보면 항상 그 끝에는 허무함이 밀려올 때가 많았죠. 그래서 아주 잠시 휴식할 틈이 생기면 매번 시간에 쫓기듯 갑작스러운 여행을 떠났는데요. 아무래도 짧게 다녀올 수 있는 일본을 자주 여행하곤 했습니다. 기껏해야 여행지에서 하는 일이라고는 아내와 아침밥을 먹고 쇼핑을 하고 커피 마시는 일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잠시의 ‘일상’에 의미부여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코로나가 종식되고 이준이가 세상을 인식하기 시작할 즈음이라면 꼭 함께 일본을 찾고 싶은데요. 그간 했던 각별한 경험들을 아들과 함께 다시 나누고 싶은 욕심이랄까요. 도쿄 타임레코드에서 찾기 어려운 류이치 사카모토 앨범을 찾았을 때의 희열, 아키하바라에서 별난 사람 별난 취미 별난 물건들을 보며 내가 영위했던 삶의 반경이 전부가 아니었다는 깨달음, 야스쿠니 신사에서 하늘을 향해 번듯하게 전시되어 있던 미쓰비시 제로기 그리고 2차 세계대전 군복을 입고 시위하던 할아버지들을 보며 느꼈던 분노까지. 그게 어떤 것이든 내가 느꼈던 것 이상으로 이준이가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순전한 욕심에서 비롯된 소망입니다.

 떠나고 싶은 여행은 여전히 많습니다. 아직 실행으로 옮기지 못한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하는 여행도 여전히 위시리스트에서 지워지지 않았고, 아직 이준이를 한번도 보지 못한 처제 가족을 위해 호주를 방문하는 일도 실행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허나 역사에까지 길이 기록되고 기억될 코로나가 언제 발길을 돌릴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이러다가 영영 아무 곳도 갈 수 없는 허구의 세계가 현실로 오는 것은 아닐지 두렵기까지 합니다. 이 글을 다시금 꺼내 읽고 있을 미래의 나. 과연 탈출구를 통해 이 모두를 실행한 이후일지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묻습니다.




이 글은 2020년, 서른여섯 끝자락에 서서 지난 날을 되돌아보며 쓴 글입니다.

2020년 12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magazine 컨셉진으로부터 총 31개의 질문을 받고,

매일 서른하나의 대답을 1000자 이내로 하며 써 내려간 기록임을 밝혀둡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Day 23, 다큐멘터리 만드는 피디의 고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