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뚤이의 필라테스 2일차
돈만 주면 디자인이란 디자인은 다 하지만 나의 전문분야는 편집 디자인이다. 가로세로 촘촘하게 깔린 그리드 위로 가이드 선을 만들고 레이어를 보기좋게 올리는 일이다. 수직수평이 딱 맞아떨어질때 기분이 좋은것만큼 맞지 않을때는 짜증이 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경도 쓰지 않는 그것이 내 눈에는 크게 보이고 이 작은 균형을 맞추느라 제법 긴 시간을 보낸다.
나는 오늘 가로세로 선이 그어진 천 앞에 서서 나의 자세를 앞뒤좌우로 촬영하고 선생님과 함께 사진을 감상했다. 내 몸은 눈에 띄게 삐뚤었다. 선생님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깨말림 등등 균형이 잘 맞지 않는다고 괜찮다고 하셨지만 11번과 12번 사이 줄에서 정확히 왼쪽으로 올라가있는 나의 어깨가 자꾸 눈에 들어왔다. 아.. 픽셀 유동화 켜서 툴로 두번정도만 툭툭 문지르면 맞출 수 있겠는데 나는 왜 레이어로 태어나지 않았을까! 내 몸 하나도 수직수평을 못 맞추면서 나는 여태 무슨 편집디자인을 해왔던것일까! 레이어 보기좋게 맞추느라 정작 내 몸은 삐뚤어지고 있었다니 이런 자본주의의 노예가 다 있나!
바로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계단오르내리기와 스쿼트로 몸을 풀.. 아니 이게 스트레칭이라니 본격적인 수업땐 뭘 하시려고요 선생님.. 또 땀이 줄줄 났다. 계단오르내리기를 할 때는 자꾸 같은발 같은손이 나갔다. 서너군데의 근육을 동시에 신경쓰려니 평소에 자연스럽던 모든 동작들이 어색했다. 스쿼트는 연예인들 하는거나 많이 봤지 해보는건 처음이었는데 엉덩이를 뒤로 빼면 몸이 뒤로 넘어갈것 같은 느낌에 자세가 소심해졌다. 선생님이 좀만 더 좀만 더 외치시길래 허벅지랑 복부에 힘을 있는 힘껏 주고 버텼는데 쿵 하고 앉아 버렸다. 너무 웃긴데 웃음 참느라 이젠 광대근육까지 움찔움찔 했다. 땀은 온몸에서 뻘뻘 나고 이러다가 땀샘근육까지 키울 판이다.
땀을 닦으며 아주 잠깐 휴식을 하고 플랭크를 배웠다. 날개뼈 사이 근육을 팽창시키고 엉덩이는 올리고 허리는 내리고 그렇다고 척추까지 둥글게 올라오면 안되고 배에는 힘을 주고.. 라고 선생님이 말씀하셨지만 하나가 잘되면 나머지는 다 안됐다. 동작이 끝날때마다 선생님이 어디가 아팠냐고 물으면 온 몸이 다 아파요 라고밖에 대답할 수가 없었다. 진짜 온 몸이 다 아팠다. 허리가 아파서 시작한 필라테스인데 온 몸의 근육들이 자신의 존재감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 다음에 이어진 자세에서도 선생님이 계속 배꼽을 닫으라고 하시는데 배꼽을 닫을 수 있는 거였다니 당황하면서도 내 배꼽이 문을 쾅 닫는 상상을 하니까 너무 웃겨서 또 광대근육까지 조절해야했다.
오늘이 겨우 이틀차라는게 믿기지가 않는다. 체감상 해병대캠프 3박4일은 다녀온 것 같다. 너무 힘들지만 내 몸을 깨우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은 좋고 얼른 그 삐뚤어진 어깨를 맞추고 싶다. 다음 수업까지 나의 근육들이 잘 대기하고 있어줬으면 좋겠다.
* 평소에 틈틈이 신경쓸 것들 (=오늘내일만 신경쓰고 조만간 까먹겠지만 그래도 신경쓰려고 노력해보는 것들)
- 오른쪽 갈비뼈랑 골반 사이 벌리려고 노력하기
- 누워있을때 오른쪽 골반은 누르고 무릎은 세워서 왼쪽으로
- 매일 종아리가 찢어질듯 마사지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