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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abre Jul 27. 2018

필라테스 ?일차

홍수인간의 필라테스

몇회차 수업을 했는지 기억하는 정성은 진즉 끝났다. 과거의 나는 왜 저런 제목으로 세편을 연달아 써서 결국 물음표를 넣는 지경에 이르렀는지.. 부끄럽게.. 다음 글부턴 회차를 쓰지 않으려한다. 그래도 필라테스에 대한 흥미와 열정은 여전하다. 그저 너무 더워서 글을 쓸 정신이 없었을뿐.. 덥다. 정말 덥다.

 필라테스를 시작하고 땀샘이 그랜드오픈하여 홍수인간이 되어버린 내게 올 여름은 유난히 지옥같다. 집을 나와 한 50미터만 걸어도 땀방울이 인중부터 스멀스멀 맺힌다. 관자놀이를 지나 무언가 또르르 흘러내리는 느낌이 나면 이제 곧 홍수가 터진다는 신호다. 살면서 더위도 추위도 크게 느끼지 않고 여름에도 땀을 잘 안 흘리는 체질이었는데 필라테스 몇 회만에 홍수인간이 되다니 굴욕적이다. 집에서 필라테스 건물까지 15분정도가 걸리는데 도착해서 혼자 스트레칭을 하고 있으면 이미 땀 범벅이다. 선생님은 이제 수업 시작할때 수건을 챙겨주신다.

 그동안 나는 새로운 자세를 많이 배웠다. 새로운 기구나 도구를 접하기도 했다. 박스나 공, 롤러 같은 간단한 도구들도 있고 이름이 어려운 기구들도 많다. 그 중에 제일 싫은 애는 보수다.

애증의 <보수>

브런치에 사진을 첨부해보는건 처음인데 그정도로 내게 애증의 존재다. 특히 저 외국인 언니가 하고 있는 자세는 스피드스케이팅처럼 발을 바꾸며 좌우로 빠르게 왔다갔다 하는건데 최악이다. 허벅지가 불탄다. 허벅지가 불타는건 카디오박스도 마찬가지지만 보수는 거기에 균형까지 잡아야한다. 가뜩이나 어깨 허리 갈비뼈 골반 배꼽까지 다 신경쓰느라 정신없는데 저 위에 올라가면 내 몸이 멋대로 움직여서 하나도 제대로 하기가 어렵다. 보수 위에 올라서서 상체는 중심을 유지한 채로 팔과 다리를 번갈아 올리는 동작을 할 때에는 균형잡기에만 초집중해서 결국 같은발 같은손이 나간다. 보수 열심히 하면 균형잡힌 몸을 보수로 주는거라 이게 보수인건지.. 아무래도 나는 진보라서 보수랑은 잘 안 맞는거 같다. (아이웃겨)

검색하면서 이름은 처음 알았다 <리포머(reformer)>

 이 기구는 누워서 하는거라 상대적으로 동작이 편하게 느껴진다. 다리와 복부 근력운동을 할 때 주로 쓰이는 기구인데 타고난 허벅지 근육 덕분에 이건 처음부터 수월하게 따라했다. 다리를 펴라고 하실 때 발을 밀어서 무릎을 펴라는 뜻인줄 모르고 천장을 향해 다리를 쭉! 펴서 선생님도 나도 당황하긴 했지만 아무튼 이 기구가 제일 좋다. 왠지 편해서 돈이 아까운 기분이 들긴 하지만 보수 위에서 홍수인간이 되어 땀을 뻘뻘 흘리고 있을 있을때는 저 기구 생각이 간절하다.

 오늘은 스트레칭과 몇가지 간단한 동작만 하고 선생님과 디스크 통증부위에 대해 집중탐구를 했다. 나는 엎드려 누운 상태로 선생님이 1cm 단위로 위치를 이동하며 꾹꾹 눌렀을때 어떻게 아픈지 말하는 식이었다. 통증이 미미했던 초반까지 포함하면 내가 허리디스크로 고생한게 2년정도. 그동안 그냥 꼬리뼈 윗쪽 허리가 아프고 그 통증이 심하면 엉덩이부터 다리까지 차례로 신경통이 내려오는 정도로 인지하고 있었는데 뼈와 근육을 하나하나 만지며 모두 다르게 느껴지는 통증을 설명하려니 보통 어려운게 아니었다. 그렇게 아팠으면서, 아파서 잠도 못자고 걷다가도 주저 앉았으면서 나는 아직도 내 상태를 정확히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선생님과 그림까지 그려가며 내 몸의 상태를 파악하고 어디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얘기하는 시간이 좋았다. ‘필라테스 배워서 디스크 통증을 완화하겠다’라는 막연한 목표에서 ‘디스크 통증때문에 짧아진 오른쪽 근육을 길게 키우고 몸의 균형을 왼쪽으로 옮겨서 중심을 맞추고 척추를 둘러싸고 있는 근육들을 키우겠다’는 아주 구체적이고 오직 나만을 위한 목표를 가지게 되었다. 이것이 푹푹 찌는 서울의 여름날에도 홍수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다.

 사실 제일 좋은 것은 마사지타임이다. 통증 부위와 옆구리에 있는 근육을 위주로 꾹꾹 눌러 풀어주는건데 이 때만큼은 필라테스 호흡법은 무시한채 온몸에 힘을 다 풀고 누워있으면 된다. 정확히 통증부위를 눌렀을 때 아픈 듯 하면서도 엄청난 시원함이 몰려오며 온 몸에 정전기가 사르르 온다. 아 이것은 1:1 필라테스의 특권이다. “물론” 건강이 최고지만 “역시” 돈이 최고임을 다시 깨닫는다. 필라테스가 끝나면 더풋샵 정액권이나 끊어볼까.. 헤헤 기승전돈최고!!! 와장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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