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할머니는 알츠하이머 환자입니다.
여전히 어설픈, 30s
어릴 적부터 수제비를 좋아했다. 수제비를 먹기 위한 꽤 그럴싸한 명분이 바로 비 오는 날이다. 빨리 학교가 끝나기를 바란다. 어서 집으로 달려가 할머니에게 수제비를 해달라고 해야겠다. 온통 그 생각뿐이다. 비가 오니까 갑자기 쌀쌀해졌고, 그러다가 이 작고 귀여운 손주가 감기라도 걸리면 큰 일이라는 소리를 하면 할머니는 전쟁이라도 난 것처럼 밀가루를 꺼내 반죽을 시작하셨다.
10살 먹은 손주는 할머니 앞에서 꽃받침을 하고 응원했다. "할머니 손맛이 최고다. 이건 하늘이 주신 재능이 틀림없다."라는 말을 했다. 할머니는 내 입에서 꽃향기가 난다고 하셨다. 나는 아들만 둘 있는 집에서 애교를 담당했다. 나는 할머니가 수제비를 해주신 날, 수제비를 먹은 것을 자랑스럽게 일기에 기록하곤 했다.
요즘처럼 간편하게 쓸 수 있는 시판 육수도 없던 시절이었다. 할머니는 똥을 뗀 멸치와 집에 있는 야채를 털어서 국물을 내셨다. 감자, 애호박과 당근 그리고 약간의 파를 넣으셨는데 나는 그 색감이 너무 예쁘고 좋았다. 그리고 할머니는 밀가루 반죽을 정말 얇게 잘 떼셨는데, 나도 해보고 싶다고 졸라서 떼어봤는데 나는 떡볶이 떡처럼 뭉텅하게 뜯을 수밖에 없었다. 허접한 실력이었지만, 할머니는 그냥 하게 두셨다. 대신 내가 두껍게 떼어낸 수제비 덕분에 평소보다 더 오래 수제비를 끓일 수밖에 없었다. 수증기가 가득 찬 부엌 창에는 김이 서리고 나는 거기에 '할머니♡' 같은 글씨를 쓰며 기다렸다.
늘 그렇듯 초등학생이 먹기에는 제법 많은 양을 만들어진다. 할머니 매직이다. 형은 나의 애교 덕분에 비 오는 날의 수제비라는 횡재를 한다. 형에게 공치사를 해본다. 우리 형제가 조금 진정하고 수제비를 남기게 되는 날도 간혹 있었다. 그날에는 퇴근한 엄마도 아빠도 할머니의 수제비를 맛볼 수 있었다.
풍족하기만 한 시절을 살면서 수제비를 좋아하는 막내 손자가 좀 당황스럽기도 하셨겠지만, 매번 할머니는 번거롭기 짝이 없는 수제비를 만드셨다. 할머니가 선보이는 맛있는 음식들이 참 많았다. 할머니는 종갓집 며느리 출신으로 동네에서도 음식 잘하기로 소문이 자자했다고 한다. 할머니는 제사 음식부터 명절음식이며 나물이며 식혜며 못하는 것이 없었다.
그때 스마트폰이 있었다면, 할머니가 요리하시는 모습을 기록하고 남겼을까? 아닐 거다. 그때는 할머니가 영원히 건강하시고 언제라도 맛있는 음식을 해주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거다.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뚝딱뚝딱 요리를 하고 있는 할머니를 바라보며, 옆에 서서 노래를 부르고 율동을 했겠지.
퇴근길에 할머니에게 종종 전화를 한다. 할머니는 핸드폰 벨소리를 잘 듣지 못해서 전화를 못 받기 일쑤다. 운이 좋아서 통화가 되는 날에는 할머니가 제일 좋아하는 막내 손주라고 나를 소개한다. 형한테는 비밀인데 어린 시절부터 할머니는 장남인 형보다 내가 더 좋다고 하셨다.(물론 형에게는 형이 더 좋다고 하셨겠지만.) 할머니는 내 이름을 부른다. 아이고 우리 ㅇㅇ이냐?라고 말이다. 그리고 크게 웃는다. 할머니는 자식들 이름과 형제자매의 이름을 잊기도 하지만, 내 이름은 또렷하게 기억하신다. 알츠하이머가 할머니의 기억을 제법 많이 지우는 동안에도 내 이름은 굳건하게 자리 잡아 할머니를 웃게 만든다.
귀가 어두운 할머니에게 여러 번 묻는다. 날이 너무 춥죠? 제가 드린 모자는 쓰고 다니세요? 할머니가 알아듣기까지 나는 3번이고 4번이고 반복해서 묻는다. 할머니는 내가 사드린 모자를 쓰고 학교에 다니신다. 나와 할머니는 주간보호센터를 학교라고 부른다. 학교 가서 꿀리면 안 된다고 나와 아내는 모자와 액세서리, 옷도 철마다 선물했다. 물론 우리 엄마아빠가 할머니 모시는 것에 비하면 새 발의 피도 안되지만.
유튜브에서 "치매 환자에게 과거의 본인이 잘하셨던 일들을 물어보면서 가르쳐달라고 조르는 것이 자기 효용감을 높여서 도움이 된다"는 얘기를 보았다. 할머니에게 전화해서 수제비 만들어 먹었던 이야기를 해본다. 그날 할머니가 수제비를 엄청 많이 해주셨다고 너무너무 맛있었다고 조잘거려 본다. 할머니는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 할머니는 전쟁통에 밀가루 수제비와 칼국수를 먹어서 그런지 수제비 같은 건 싫다고 했다.
나는 곧 가겠다며, 0월 0일에 찾아가겠다고 날짜를 말씀드린다. 달력에 동그라미를 치라고 할머니를 침대에서 일으켜 달력 앞으로 걷게 한다. 며칠이 무슨 요일인지, 그게 몇 밤을 자고 일어나야 하는지 산수문제도 여러 개 낸다. 우리 작은 손주가 주말에 와서 맛있는 밥을 사주기로 했다고 동네방네 자랑하라고도 시킨다. 모두 유튜브에서 배운 것들이다. 할머니는 그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하면서 전화를 끊으신다.
나는 할머니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수제비 레시피를 완전히 잊었고, 사실은 할머니가 수제비를 좋아하지 않았다는 진실을 마주한 날. 유독 차도 없고 길이 막히지도 않아 30분이나 빨리 집에 도착했지만, 주차장에서 하염없이 앉아 있었다. 엘리베이터 거울 속 빨개진 눈이 어쩐지 좀 창피해서 아내에게 저녁 먹기 전에 샤워 먼저 하겠다고 둘러댔다.
아직 할머니 앞에서 나는 여전히 꼬마인데, 시간이 나와 할머니를 기다려주지 않는 게 너무 밉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