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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명 Feb 01. 2021

생애 첫 사진 전시회

이미지와 글쓰기 

한동안 글을 쓰지 않았다. 징검다리처럼 몇 가지 영역을 이쪽저쪽으로 건너 다니다 보니 다시금 무언가 곱씹어 소화하며 글쓰기 모드로 바꾸기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그러니까 좌뇌의 스위치를 우뇌로 바꾸는 그런 식의 모드 전환 같은 것 말이다. 나의 활동을 그간 글로 꾸준하게 정리해 오고 있던 차에, 2년 가까이 시각예술을 창작하는 활동에 매진하게 되었다. 그것도 나쁜 친구들(?)의 꾐에 빠져서. 그래서 나는 항상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싶었던 미술계 활동을 어느샌가 깊이 몰두하고 있었다. 직업적인 작가로서, 나는 아주 성실한 케이스는 아니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영역 간의 산만한 모색들을 말한다. 그렇지만 작업을 할 때는 예외적으로 나의 이러한 모색에서 벗어나 무작정 몰입하게 된다. 예술가로서 어떤 권위를 포장하는 데에 질색인 어떤 성격이 그런 오버페이스를 더 가속화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어떤 다른 성질의 성실성이라고 해 두자. 


기억하는 회로들 #03 pigment print on paper 2020 김현명


어쨌거나 사진 전시를 하게 되었다. 그래도 익숙하게 제작해 오던 영상작업에서 벗어나 사진이라는 새로운 매체와 제작방식으로 전시를 하게 된 것이다. 사실상 이런 기회를 준 기획자나 함께 참여를 허락한 작가분들께는 감사할 따름이다. 나는 이미 편집된 영상작품에서 스틸을 뽑아 출력해서 액자에 담아 작품으로 다시금 구성했다. 움직이는 그림들에서 정지한 화면으로 이미지의 성질이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영상에서 미처 제대로 다루지 못했던 미세한 표현까지 다듬어 강조할 수도 있었다. 기획자의 시선에서는 이런저런 심미적 의미를 다룰 수 있겠지만, 제작을 하는 입장에서는 기술적으로 어떻게 하나의 시각적 언어로 균형을 잡아낼 것인가가 관건이었다. 


기억하는 회로들 #01 pigment print on paper 2020 김현명 


대체로 이번 사진 작업들은 하나의 시선에 관한 것이었다. 지극히 사실적이지만 그 시선에는 인간적인 것과 관습적인 것들이 제거되어 있다. 날것의 풍경이 주는 별다른 의미부여 없는 사실 그대로의 정물들이다. 이 풍경들은 사실상 드론, 영상 프레임, 색보정, 프레이밍, 프린트까지의 상당한 디지털 프로세스로 결정되는 선택적인 결과물들이다. (그렇지만 현장을 직접 로케이션 해야 하는 지극히 일차원적인 아날로그적인 직접성도 함께 내재해 있다.) 그래서 나는 이러한 작업과 시선에서 어떠한 패턴, 추상으로까지 상상이 가능한 미적인 정물화가 되기를 바랬다. 대상을 단지 인간적 시선으로 바라보면, 그 안에 숨어서 작동하는 미묘한 추상들의 작동들을 놓치게 된다. 나는 그렇게 비록 디지털 과정 속에서 이지만 어떤 회화적인 심상이 담기기를 바랬다. 심심하고 무료하지만, 우리는 심상이라는 렌즈로 풍경이나 정물에 어떤 패턴들을 덧 입힐 수 있으니까 말이다. 


기억하는 회로들 #07 pigment print on paper 2020 김현명


이번 전시는 다른 두 분의 사진작가인 이동근, 조현택 작가가 <세 개의 조망>이라는 전시 타이틀과 함께 했다. 오랫동안 사진 세계를 천착해 오던 그러면서도 굉장히 젊은 에너지가 담겨 있는 작가분들이라, 이러한 나만의 접근과 어떻게 대비가 될지 굉장히 궁금했다. 각자의 방식대로 존경심을 가지고 하나의 공간에서 시선을 주고받는 것, 이것이 만남이라고 한다면 이번 전시는 꽤나 도전적인 방식으로 성공적인 시도였다고 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기억하는 회로들 #08 pigment print on paper 2020 김현명



그간 글로 써 내려오던 나의 시각적인 체험들이 이번에는 오롯이 시각적인 것들로 몇 분의 협력을 통해 드러났다. 정말 글과 시각적인 것들은 서로를 대체할 수 없는 독자적인 방식의 표현 언어들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경험은 시각적이든 문자적인 것이든 또한 언어적인(조직적인) 패턴으로 우리에게 남겨진다. 서로는 서로 보완적이며 어떤 직관의 세계에서는 서로 뒤섞여 있다. 꿈에서 우리가 보는 것들은 어쩌면 이런 감각의 무정형의 상황에 우리가 놓인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여기에 감정적 상태까지 덧입혀지는 것이다. 이런 것들을 상상하며 만든 수많은 예술 작품들이 존재한다. 


시각이라는 평면적 프린트라는 새로운 프로세스를 탐색하면서,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나의 글들을 읽는 팔로워들이 적은 수는 아닌 듯도 해서, 다소간의 쉼표에 관해 몇 마디라도 채우고 알리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인 것 같기도 하다. 나에게는 글을 쓰거나 시각적인 경험을 드러내거나 하는 것들이 어쩌면 동일한 이야기의 연장선상이긴 하다. 처음 도전해 보았던 사진 전시는 사실상 녹록하지 않은 현실세계의 허들의 연속들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긴 하다. 무엇이든 그렇지만 첫 시도는 새로운 활력과 기대를 꿈꾸게 한다. 글과 시각적인 두 영역의 색다른 이질감과 공통점 모두를 모색한 두어 해의 경험들이 준 것들은 무엇일까? 나는 가장 현실적인 장애들과 가장 이상적인 창작의 어떤 양 극단을 오고 갔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언제 진정한 처음이, 어떤 사건이 이루어지는지 알 수 없다. 다만 현재의 조건들이 나에게 요구하는 과제들에 관해 응답할 뿐이다.   






세 개의 조망 _ Camera lucida / 쿤스트 캄머 205


<이미지와 글쓰기> 내가 대학 시절 읽었던 롤랑 바르트가 쓴 책의 제목이다. 이때 읽은 개념들과 문장은 내게 큰 영향을 미쳤다. 그 당시 미술 학부생들은 아마 죄다 기호니 시니피에니 하는 말들을 하곤 했다. 지금 더 이상 미술판에서는 기호학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아마 좀 더 경험적이며 개인적이며, 또한 사회적인 상징들을 더 다루는 시대로 변모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내 방식대로의 이미지, 글쓰기 또는 현실적인 체험에 관하여 쓰기를 계속하고 있다. 이 사진 전시회가 정작 창작을 하는 현장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는 의문이다. 한 번의 모색으로 끝날 수도, 영원히 사라질 어떤 미몽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개인적 시간이 중첩되는 경험들과 디지털 기술의 시각적 모색들 사이를 오가며 시도해 보았던 기억의 편린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나만의 글쓰기'라는 오랜 여정의 문장들 속에서 나름 이완의 쉼표가 되기를 바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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