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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쾌한 비극과 육중한 유희

작가 정찬호의 조형적 서사

by 김현명

날렵한 스포츠의 운동들이 필드 위에서 경쾌하고 반복적인 루틴을 그려낼 때, 우리는 그 이면에 응축된 에너지의 육중한 현존을 동시에 떠올린다. 날카로운 풍자가 우리에게 공감대를 형성하는 순간에도, 현실 조건이 지닌 존재론적 무거움은 어김없이 연상된다. 정찬호의 조각은 바로 이 지점에서, 기묘한 경쾌함으로 무거움을 이야기한다. 그의 작품 세계에서 인물과 사물은 현실을 다각도로 논증하기보다, 삶이라는 무대가 지니는 상징적 기호로서 움직일 수 없는 운명의 중력 앞으로 질주하는 숙명적 엄숙함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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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빚어낸 캐릭터들은 대중문화의 친숙한 맥락을 지녔지만, 동시에 시지프스 신화의 주인공처럼 비극적 성화(聖畫)의 영역으로 우리의 시선을 붙든다. 서류 뭉치를 서핑보드 삼아 파도를 타거나(Salary board), 빌딩에서 아찔한 번지점프를 감행하는(Building bungee jump) 이들의 필사적인 질주는 자유를 향한 갈망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본질은 정교하게 설계된 트랙 위에서 허무하게 맴도는 자유낙하에 가깝다. 작가는 이 경쾌함을 통해 역설적으로 현대인의 비극적 상태를 드러낸다. 네오-팝아트가 보여주는 환희나 엑스터시 대신, 정찬호의 인물들은 그 이면의 공허와 소멸, 영적인 고독을 담담히 그려낸다. 이들은 소시민 영웅의 초상이자, 죽음과 유희 사이를 오가는 우리 시대의 기묘한 자화상이다.

이러한 양가적 감정을 증폭시키는 것은 작가의 원숙한 재료 사용 방식에 있다. 겉으로 보이는 경쾌함과 달리, 그의 조각들은 다루기 힘든 나무, 스테인리스, 철, 합성수지와 같은 단단하고 무거운 재료들을 조합하거나 연결하며 이를 동작시키는 기계장치들이 가미되기도 한다. 작가는 숙련된 기술로 이 재료들의 본성을 배반하고, 전혀 다른 질감의 캐릭터로 변주해 낸다. 날렵한 운동감을 부여하는 금속의 선(線)은 에너지의 근원을 상징하는 듯하지만, 그 본질은 묵직한 철이다. 이는 작가가 구사하는 일종의 트릭이자, 해학의 가면 뒤에 숨겨진 ‘중력’이라는 실존의 조건을 폭로하는 메타포가 된다. 부드러움과 강함, 가벼움과 무거움의 충돌 속에서 인물들의 페이소스는 극대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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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호의 작업은 물질의 존재론적 숙명을 끌어안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예술적 모색의 기록에 가깝다.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평범한 이들의 삶에 말을 거는 매혹적인 ‘우화적 놀이터’의 구축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은 난해한 담론의 성채에 갇힌 예술이라기보다 예술이라는 추상적 환원과 대중적 서사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일종의 운동과 에너지의 기제(機制)이다. 우리의 일상에 깊숙이 들어와 삶의 경이로움과 아이러니를 통찰하게 하는 조형 언어의 색다른 가능성에 관한 탐색인 것이다.


작가는 현실이라는 무대 위에서는 좀처럼 다루기 힘든 고철, 나무, 폐품과 같은 물질 재료들을 다루며 자신만의 세계를 제시하는 접근법을 견지한다. 이는 철학자 지카우치 유타가 언젠가 ‘철학은 박물관에 장식된 중요 문화재가 아니라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도움을 주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장대한 이론적 결과물뿐 아니라 이른바 민예(民藝)처럼 일상에서 쓰이는 것도 중요하다’라고 언급한 것과 어느 정도 맞닿아 있다. 정찬호의 작품들은 박제된 예술이 아니라, 평범하고 버려진 것들로부터 새로운 생명과 서사를 길어 올리는 현대적 민예와 같다. 그의 우화적 놀이터에서 기계장치들은 본래의 기능과 속박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계를 맺고, 작가의 내면 풍경과 조응하며 생동감 넘치는 캐릭터로 다시 태어난다. 그 기계적인 동작은 하나의 역설을 드러낸다. 그것은 물질 존재로서의 숙명일 뿐인 인간형식에 대한 언급이면서도, 그 한계와 부재를 벗어나려는 열망을 지닌 ‘정신의 의지’를 기계적 굴레 위로 투사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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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경 이후의 작업에서 작가의 시선은 개별적 실존의 비극에서 나아가 우리를 둘러싼 구조 자체로 확장된다. 철근, 벽돌, 낡은 집의 대문 등 건축의 파편들은 그의 손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 두 대의 타워 크레인이 서로를 마주 보며 정지된 긴장감을 연출하거나(Deja vu 2015), 차가운 벽돌이 푸른 잔디를 품은 유기적인 스툴로 변모하고(The block 2015), 철근 구조물이 원시 동굴벽화나 초기의 영사기인 키네토스코프의 연속동작처럼 키네틱 모빌로 재탄생(Cycle 2021)한다. 이는 고정된 가치와 움직일 수 없는 사회적 상징물로 여겨졌던 건축, 혹은 사회적 기반에 대한 전복적인 해석이다. 부산현대미술관에서 선보였던 [아무도 살지 않는다. 2020]는 수백 개의 오래된 문들이 전시 공간에서 프레임으로 연결된 상태로 관객들이 지나칠 때마다 열고 닫히는 설치작업으로 제작되었다. 이는 온라인 보다 훨씬 강력하게 연결되어 있었던 공동체적인 삶의 조형적 양태와 심리적 토대들의 (입구와 출구가 명확하지 않았던) 개방적 차원들을 현대미술의 중심부에서 전개시킨 작업이기도 했다. 정찬호 작가는 문명의 가장 근본적 기원인 건축재료들을 해체하고 재조립하여, 유동적인 동화와 삶의 심리적 서사들 속 조형물로 새로운 맥락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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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작가는 쓰임을 다하고 버려진 것들에서도 새로운 표정을 발견한다. 낡은 팔레트의 나뭇결에서 오랜 시간 근무한 직장인의 고단함을, 찌그러진 빈 캔에서 삶의 주름을 엿보는 식이다. 그의 최근 작품 [It‘s a swimming - 있어 쓰임이 2025]는 어디론가 나아가는 인간의 유영을 통해 생존을 위한 몸짓을 보여준다. 이는 재료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아직 ‘쓰임’이 있지만 소외될까 두려워하는 우리의 모습을 은유하며, 각자의 좌표를 찾길 희망하는 메시지를 던진다. 특히 직접 고안해 낸 정교한 기계장치로 작동하는, 단순한 물질재료에서 유기체로 변모한 형상들은 제 각각의 고유성과 에너지를 지니고 공간을 점유한 체 무한하게 부유하는 중이다. 이는 우리가 삶에서 마주하는 진부함이나 한계들을 해석하며 새로운 놀이의 가능성으로 전환할 수 있는지에 대한 생생한 전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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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작품 앞에 선 우리는 타고난 결핍과 운명이라는 트랙 위에서 매일 다시 태어나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본다. 정찬호 작가가 창조한 경쾌하면서도 약간은 아찔한 조형의 서커스 위에서 삶의 겸손과 죽음의 그림자 사이를 부유하는 존재의 근원을 떠올려 볼 수도 있다. 상상의 플레이그라운드로 이끌리게 하는 순진하면서도 매력적인 힘을 지니고 있는 그의 작업들은 간단치 않은 세상의 본성을 꿰뚫어 보면서도 결코 냉소의 우물 안에만 귀속되지 않는다. 그의 예술은, 물질에 불과하지만 시간의 재료일 수도 있는 우리 스스로에게, 운명에 순응하기보다 그 조건들을 유희하며 자신 만의 이야기로 만들어나갈 용기를 불어넣고 있는 것이다.


부산을 중심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정찬호 작가는 1979년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대학교 석사 과정을 수료한 지역을 대표하는 조각가이다. 그는 주변 소시민의 일상과 애환이라는 주제를 꾸준히 탐구하며, 이를 나무, 합성수지, 금속, 모터 등 다채로운 재료와 재기발랄한 기법으로 풀어내 현대인의 삶을 경쾌하게 담아낸다는 평을 받는다. 정찬호 작가의 작품 세계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인물들의 모습에 주목한다. 그는 삶의 고단함과 기쁨이 공존하는 순간들을 포착하여 작품 속에 녹여낸다. 이를 통해 관객들은 그의 작품을 보며 자신의 삶을 반추하고 공감대를 형성하게 된다.

2012년 부산 센텀 아트 스페이스에서 열린 개인전 'Life is sports'를 비롯해 다수의 개인전과 단체전을 통해 꾸준히 작품을 선보여왔다. 2017년에는 부산 사하구에 위치한 홍티아트센터에서 조각전 'DRAW'를 개최하며 지역 사회와 소통하고, 부산 조각제 등 다양한 전시에 참여하며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정찬호 작가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시선과 표현력으로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특별한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키며, 부산 미술계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그의 작품은 앞으로도 우리 시대의 자화상을 따뜻하고 유쾌하게 그려낼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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