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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you Sep 19. 2022

놀멍 쉬멍 우리의 신혼여행 / JEJU DAY10

힘든 일은 좀 나눠서 하면 어때?

 서둘러야 하는 아침이다. 오늘은 가지고 왔던 차를 탁송으로 다시 보내고, 새로운 차를 렌트해야 하는 날이기 때문에. 우리의 여정에 탁송이 미친 영향은 지대했다. 탁송 때문에 출발하는 날짜를 몇 번이나 바꾸었고, 탁송 때문에 여행의 기간도 고민했다. 명절엔 탁송이 불가능하다는 것도 이번 여행으로 알게 되었다. 며칠간 손이 닿지 않아도 되는 물건들을 잘 챙기고, 예식에서 받은 화분도 챙겼다. 우리가 없어도 주차장에서 잘 버텨주기를.

 짝꿍은 혼자 다녀오겠다고 했지만, 그래서 혼자 있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지만. 양보하기로 했다.

 신혼여행이니까, 같이 있는 것을 훨씬 더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짝꿍을 위해 서두른 아침이라서 나는 커피 수혈이 되지 않았고, 갑자기 안절부절못한 상태가 되었다.

 여기 어딘가에 그냥 날 떨궈주면 안 될까? 저기 사거리에서 날 버려줄래? 하는 짝꿍의 입장에서 기가 차는 헛소리를 하다가 결국 스타벅스 드라이브 스루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무조건 재사용 텀블러를 선택해야 한다고 해서 조금 놀랐고, 공항에 바로 반납하는 기계가 있어서 안심했다.

 환경 앞에서 늘 고민하게 된다. 재사용하는 컵을 씻는 물과 정리하는 인력, 빌리고 반납하는 수고와 그냥 쓰레기로 버려지는 컵 중에 어떤 것이 더 효율적일 것일까. 하는 것들에 대해서 말이다. 각자의 컵이 있다면 최상이겠지만!



 배가 고프기 시작해서 고민 끝에 근처에 있는 브런치 식당을 찾아가기로 했다. 내가 찾는 곳들은 왜 자꾸 이렇게 한적하다 못해 길이 아닌 곳 끝에 서 있는지. 입구를 찾지 못해서 헤매다가 결국 주인의 도움을 받았다. 고민할 필요 없이 인원수만 말하면 알아서 나오는 프랑스 가정식 요리는 따뜻하고 맛있고 배불렀다. 저녁엔 작은 원 테이블 레스토랑으로 운영한다고 해서 더 혹하고 말았다. 언젠가 친구들과 다 같이 제주에 내려와서 맛있는 저녁을 먹어야지.



 저녁 예약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어서 카페도 한 군데 더 들러보기로 했다. 궁금했던 카페 진정성 종점이다. 말도 안 되는 곳에 멋진 건물을 지어두었구나 하고 놀랐다. 나는 따뜻한 커피를, 짝꿍은 녹차를 마셨다. 모든 사람들이 한 방향으로 앉아 바깥 바다를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는 광경이 새삼 웃겼다. 맞아 우리는 제주에 자연을 보러 온 사람들이지.



 힘든 일은 나누어서 하면 좋을 텐데 짝꿍은 운전대를 잘 넘기려고 하지 않는다. 졸려서 눈이 반쯤 감기는 상태에서도 꼭 운전은 본인이 하겠다고 우기곤 하는데, 나는 그게 너무 아슬아슬하고 보기 언짢다. 물론 내가 남자니까! 내가 남편이니까! 차를 운전하는 일은 본인이 하고 싶을 수도 있지만, 평소와 다른 컨디션이라면 쿨하게 운전대를 넘겨주는 일이 더 멋진 사람이 아닌지.

 시간이 여유 있으니까 내가 천천히 운전을 하겠어! 나도 제주를 드라이브하고 싶어! 하고 우기고는 운전대를 넘겨받았다. 짝꿍이라면 빠른 길로 재빨리 달려 나갔겠지만, 나는 짝꿍과는 다른 사람이라서 다른 길을 골랐다. 내가 고른 길은 1100 도로를 천천히 달려 제주의 남쪽으로 내려가는 코스다. 1100 고지에서 잠시 바람도 쐴 수 있고, 몇몇 전망대에서 제주를 바라볼 수도 있다. (짝꿍은 잠들었기 때문에 이건 온전히 나만의 여행, 나만의 추억이 되었다.)

 그런 도로를 고집했기 때문에 좁은 산길을 달리기도 했다. 마주오는 차를 만날 때면 운전대를 잡은 손에 힘이 꾹 들어갔지만 나도 상대방도 여유롭게 차선을 기다려주었다. 좋은 동네다.



 저녁은 저번 주에 미리 예약해 둔 철판요리를 코스로 제공해주는 곳이다. 한 타임에 한 예약만 받아서 프라이빗하게 진행하는 이곳은 어디선가 보고 너무 마음에 들어서 위시리스트에 올려두었다. 짝꿍이 흔쾌히 가자고 해 주어서 욕심내 보았다. 우리 신혼여행이잖아, 하면서.

 오랫동안 호텔에서 일한 셰프 두 분은 여유롭게 우리를 맞이해주셨고, 능숙하게 대화를 이끌어주셨다.

 그리고 무엇보다 요리가 너무 맛있었다. 정말 잊지 못할 제주의 한 끼를 만들어주셨다.

 


 과하게  오른 배는 천천히 산책하는 일로 마무리다. 셰프님들에게 추천받은 바닷길은 바람이 살랑거려서 걷기  좋은 코스였다. 오늘은 내가 조금  욕심나서 해가  때까지 어딘가 앉아있고 싶다고 우겼다. 그렇지만 져버렸지 . 오늘의 기분을 조금  끌어가고 싶었는데 그건  안됐다. 오늘의 핀트는 슬며시 어긋났네. 그래도 나는 오늘의 하늘과 오늘의 바람을 드라이브로 잔뜩 느꼈어.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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