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소개하자면 콤플렉스만한 게 없다
이걸로 자소서를 내진 못하겠지. 하지만 나란 인간을 소개하자면 콤플렉스만한 얘깃거리가 없다.
어렸을 적 나의 가장 큰 콤플렉스는 부모님이 동생을 편애한다는 생각이었다. 사과를 깎아 먹고 안 치웠다고 혼나던 날이었다. 애초에 사과를 먹은 적도 없어서 아니라고 바락바락 대들었으나 거짓말만 한다고 회초리로 맞았다. 억울했던 난, 두어시간 내내 아니라고 아니라고 악을 쓰며 울었다. 거실에 남겨진 채 계속 우는 모습을 보던 아빠는 슬그머니 동생에게 다가가 씩 웃으며 “니가 한 거 맞지?” 하고 물었다. 어린 동생은 누가 봐도 불안한 얼굴로 아니라고 하다가 결국 사실을 실토했다. 그러나 나는 이미 혼난 이후였고 엄마는 시끄럽다고 방에 들어가 버린 직후였다. 그렇게 타임 오버로 억울함은 보상받지 못했다. 그런 일을 몇 번 겪으면서 부모님은 동생만 좋아한다 생각하며 아파왔다.
이해는 간다. 동생은 늘 어딘가 어리숙하고 착했고, 나는 늘 영악하고 못된 쪽이었으니. 사실 동생은 내가 봐도 사랑받을 만한 녀석이었다. 천사 같은 외모는 둘째 치더라도 어디서든 머리만 대면 잠들어버리는 탓에 거실을 볼 때마다 앉은 자세로 머리통을 바닥에 박고 곤히 자고 있었다. 그렇게 귀여웠다. 후크선장과 강아지를 무서워하는, 받아쓰기는 20점이 일상인 아이다운 맛이 있는 애, 그게 내 동생이었다. 그에 비해 나는 어린애 주제에 말투가 도전적이라고 혼나는 게 일상이었다. 유치원에선 친구와 매일 머리채 잡고 싸웠고 엄마와는 더 자주 싸웠다. 한글이나 구구단은 혼자 알아서 깨치고, 동시에 그 과제가 어렵지 않음을 숨기지 않았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모든 이들은 동생을 여리고 꼬물거리는, 보호해줘야 하는 생명체로 바라봤고 나는 뭐, 둬도 알아서 잘하는 애였다. 실상은 관심종잔데 말이다. 그래서 그게 늘 질투가 났다. 종종 동생한테 심부름을 시키고 때로는 악질적인 장난을 치며 그것을 위로받으려 애쓰기도 했다. 3살 누나라는 권력을 느낄 때만이 낮아진 자존감을 조금이나마 회복하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인기 없는 인간이라는, 노력하지 않아도 사랑받는 애들(내 동생으로 대변되는)을 따라잡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은 나를 갉아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와의 드라이브 중에 그 피해망상은 사라지게 된다. “성호가 자기는 누나처럼은 못살 것 같다고 하대. 누난 공부도 잘하고 어딜 가나 똑 부러지게 밥 벌어먹고 살 것 같은데 자기는 그렇게는 못 할 것 같대. 걔가 착하긴 해도 좀 모자라잖니.”
입으로는 잰 체를 하며 “동생도 힘든 점이 있겠지”란 말을 종종 해댔으나 속으로는 왜 나는 사랑받지 못하지란 맘이었었는데. 동생도 똑같이 힘들었다니. 그의 힘들었을 지난날에 대해 나는 생에 처음으로 제대로 생각해보았다. 자꾸 자기에게만 심부름을 시키는 가족들과 일을 능구렁이마냥 떠넘기는 누나. 잘못을 해도 쏙쏙 잘 피해 가는 사람들에 비해 그게 쉽지 않은 자신. 문득 언젠가 동생이 부모님께 왜 자기한테만 그러냐고 화내던 모습이 떠올랐다. 속에서 뭔가 쑥-하고 내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참 못났지만, 나는 남이 힘들면 왠지 위안을 받는 인간이었던 것이다. 그래도 내가 누난데 쪽팔리게 진짜. 그렇게 오랜 날 나를 괴롭혀오던 상처는 말 한마디로 씻은 듯이 낫게 되었다. 참 어렸구나 싶다.
대학에 오기 전, 날 괴롭히던 또 하나의 콤플렉스는 너무 평범한 나 자신에게 있었다. 지금 친구들에게 그 얘기를 하면 다들 헛소리 말라고 하지만 정말 그게 큰 고민이었다. 지극히 평범한 외모와 평균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는 키와 체형, 그리고 자꾸 자라서 관리하기 힘든 머리카락까지 뭐하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튀는 가방이나 옷만 보면 이쁘다고 신이 나서 용돈을 다 털어 사들였다. 평범한 게 싫어 남들이 아는 노래는 듣지 않았고 아무도 모르는 가수를 좋아했다. 아이돌은 내 혐오대상 1순위였고, 언더그라운드 래퍼들과 외국의 가수들은 신이었다. 이런 것들이 문제를 조금이라도 해결해줄 거라 믿었던 시절이었다.
앞서 말했듯 나는 대학에 오기 전까지 자존감이 꽤 낮아서, 항상 누군가를 시기했다. 대표적인 예로 내 동생이 있고, 또 아무것도 안 해도 사랑받는 애들이 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예술을 하는, 예고나 입시미술학원에 다니는 애들이 너무나 부러웠다. 예술을 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일단 특별해보였고 소위 말하는 ‘간지’가 났다. 왠지 부유하고 재능있는 애들이 하는 것만 같았고, 난 그에 비해 색이 없고 평범했기에. 적당히 잘나오는 성적이나 안정된 미래를 포기할 자신이 없었고 그래서 나한텐 자신감이 없으면 하지 못할 일들을 저질러버린 애들이 대단해보였다.
20살이 넘어서야 내 생각이 틀린 것을 깨달았다. 이제는 고등학교 때처럼 미래를 포기하지 않아도 예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단하게 여겼던 사람들이 다를 것 없음을 알았다. 세상 대부분이 그렇듯이 막상 하다 보면 다 할만하다. 뭐든 남들이 겁줬던 것만큼은 아니었고 생각보다 나는 재능충이었다. 어릴 적에 부러워했던 애들은 만나보면 뭐 별거 없이 나랑 비슷했다. 형형색색의 원단으로 치장하기 바빴던 그 아이는, 이젠 검은색 일색이어도 반짝인다.
과거의 난, 동생을 오해했고 부모를 오해했으며 가장 크게는 나 자신에 대해 오해했다. 이젠 안다. 내가 평범하지 않은 인간인 걸 알고 엄마아빠가 우리를 똑같이 사랑한단 걸 안다. 그래서 옛날과 다르게 난 내가 너무 예뻐서 좋다. 잔뜩 생채기가 난 다리와 통통한 팔뚝까지도 좋다. 어떤 이는 진지하게 물어보기도 한다. “너 진짜 니가 이쁘다고 생각해?” 그럼 내 대답은 정말 진심으로 예스다. 난 내가 제일 예쁘다. 콤플렉스들이 하나씩 극복될 때마다 점점 더 예뻐진다. 나를 왕따시키던 애들과 뒤통수를 치던 남자들. 지겹도록 눈물짓게 한 과거와 상처는 글감이 되어 다른 것을 극복하게 만든다. 인간을 늘 뭔갈 이해한다고 오해한다. 그 오해들이 풀렸을 때 새로운 막이 시작한다. 이제 오해는 풀렸다. 이 삶엔 지금 조명이 켜진 거 같다.
March 09,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