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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랑은 낙엽을 타고> 리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

크리스마스 시즌, 자극적이거나 화려하지 않은, 잔잔하고 은은한 감성의 로맨스 영화에 대한 니즈가 있다면 <사랑은 낙엽을 타고> 관람을 권한다.


<사랑은 낙엽을 타고>는 버거운 현실에서도 피어나는 사랑, 사랑의 힘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핀란드 거장 아키 카우리스미키의 스무 번째 장편영화로, 차가운 도시 헬싱키에서 냉혹한 현실을 유랑하는 두 남녀의 멜랑콜리하고도 사랑스러운 일상을 독특한 화법으로 담아낸다. 비정규직, 일용직 근로자인 남녀의 척박한 노동 환경과 로맨스를 묘사한다. 현실적인 면과 연극을 보는 듯한 장면들이 어우러져 묘한 매력을 발산한다.



여자 주인공 '안사'(알마 포이스티)는 대형 슈퍼마켓에서 근무한다. 유통기한이 지나 버려야 할 샌드위치를 집에 챙겨가려던 걸 들켜 해고당한다. 안사의 집에는 말소리 대신 지직거리는 형광등 소리, 전자레인지 작동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군의 전쟁 보도뉴스만이 흐른다. 외롭고 쓸쓸한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남자 주인공 '홀라파'(주시 바타넨)는 공장을 떠돌아다니며 일터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살아가는 노동자다. 술이 없으면 정상적인 생활을 버티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일상 자체가 전쟁과 다름 아닌 삶을 살아가던 두 사람. 어느 금요일 밤 동료와 함께 카라오케에 놀러간 안사와 홀라파는 짧은 만남이었지만 서로에게 강하게 이끌린다.


그러나 서로의 이름도, 연락처도 몰랐기에 접점이 없었던 두 사람. 안사가 주방 보조원으로 일하게 된 주점 주인이 마약 판매 혐의로 체포되는 장면을 함께 목격하다 우연히 마주친다. "커피 마시러 갈래요?" 공교롭게도 이날이 첫 월급일이었는데 급여를 받지 못하게 된 안나에게 홀라파는 커피를 사겠다고 제안한다. 홀라파는 커피뿐 아니라 빵을 사주고 영화까지 보여주며 관심을 표한다. 영화가 끝나고 홀라파는 "또 만날까요?"라 말하고 안나는 다음 만남 때 이름을 알려주겠다는 말과 함께 연락처를 종이에 적어 홀라파의 점퍼 주머니에 집어넣는다. 어랏! 그런데 애석한 바람이 안나의 연락처가 적힌 종이를 날려버린다. 그렇게 둘의 연이 끊어지나 싶더니 재회하게 된다.



이렇게 헤어짐과 만남이 반복되는 상황을 통해 우연과 순환으로 점철된 인생을 그린 <사랑은 낙엽을 타고>. 안나와 홀라파의 일상을 피로하고 지루하기 짝이 없지만, 각자의 노력으로 삶에 활력이 생긴다. 안사의 연락처를 잃어버린 후 함께 갔던 극장 앞에서 기약 없는 기다림을 반복한 홀라파. "당신 찾느라 신발이 다 닳았어요."


그렇게 기적처럼 만난 후 안사는 홀라파를 집으로 초대한다. 끼니를 제대로 챙긴 적이 없던 안사가 마트에 들러 새 그릇과 나이프, 스파클링 와인을 사 정성스레 음식을 준비한다. 홀라파는 꽃집에 들른다.



고요했던 안사의 집은 설렘과 활력으로 재탄생한다. 음식으로 에너지를 얻고 술로 분위기가 채워진 공간. 그러나 안사는 홀라파의 술에 대한 집착을 이해하지 못하고, 홀라파는 안사의 말을 잔소리로 들으면서 또 다시 멀어지게 된다.


서로를 잊지 못하는 둘! 멀어진 뒤 외로움과 헛헛한 감정을 채우기 위해 분투하지만 여운이 오래가는 건 어쩔 수 없다. 일이 생각만큼 풀리지 않는 둘 사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만나기 위해 노력하는 두 사람의 모습이 사랑스럽다. 또한 강아지 러버인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의 취향대로 사랑스러운 강아지가 등장해 재미와 사랑스러움을 높인다(무려 팜도그상을 수상한 연기파!).



<사랑은 낙엽을 타고>는 제76회 칸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의 영예를 안은 데 이어, 제81회 골든글로브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과 여우주연상 후보에도 올라 화제가 됐다. 핀란드 역사상 가장 유명한 감독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프롤레타리아 3부작'이라는 평을 듣는 <천국의 그림자>, <아리엘>, <성냥공장 소녀>를 잇는 네 번째 작품이라 볼 수 있는 영화다.


하층민의 삶을 향한 따뜻한 시선, 그들을 둘러싼 사회에 대한 통찰과 로맨틱한 무드의 조화가 인상적인 <사랑은 낙엽을 타고>. 끝없는 고용 불안과 열악한 작업환경 등 척박한 상황에서도 사랑을 향한 끊임없는 열정을 싹틔운 두 사람! 배경은 낙엽이 진 차디찬 늦가을일지라도 마음만은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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