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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복 관람 금지! 영화 <프렌치 수프> 리뷰

시작부터 맛깔나는 요리 공격에 미친다. 어떠한 설명 없이 주방 속 네 사람은 쉴새 없이 요리를 한다. 신선한 재료들로 온 정성을 다해 준비한 요리는 '도댕'(브누아 마지멜)을 포함한 다섯 남자들에게 서빙된다.



고기와 채소를 푹 익혀 끓인 국물을 헝겊으로 걸러낸 콩소메 수프, 페이스트리의 속을 파내 고기와 해산물, 채소 등을 소스와 함께 채운 볼로벙, 퇴폐적이라 수치를 느낄 수 있어 얼굴을 가리고 먹는 멧새 요리 오르톨랑, 스펀지케이크 시트에 아이스크림을 얹고 머랭으로 덮어 머랭만 오븐에 구운 디저트 오믈레트 노르베지엔 등 서빙된 요리를 먹은 남자들은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맛에 탄복한다.


다섯 남자들은 '깐깐한 미식가'다. 특히 도댕은 '주방의 나폴레옹'이라 불릴만큼 음식에 일가견이 있다. 음식에 엄격한 사람들이지만 '외제니'(줄리엣 보노쉬)의 요리엔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녀의 요리는 완벽해, 남녀노소 모두를 만족시킨다.



도댕과 외제니는 오랜 연인이자 파트너다. 20년 넘게 한 집에 살면서 요리를 연구하고 독창적인 미식의 세계를 만들어왔다. 서로를 사랑하는만큼 일에도 열정을 바친다. 사랑이 피어날 수밖에 없는 관계지만, 외제니는 도댕의 거듭된 청혼에도 결혼을 거절한다. 오랜 세월이 흘러 두 사람은 '인생의 가을'인 중년에 이르렀다.


두 사람의 로맨스는 진한 풍미를 가진 요리처럼 깊다. 재료들을 잘 배합해 완성된 훌륭한 요리처럼 둘의 관계 역시 완성형이다.

나는 조리법을 읽었고
그녀는 마법을 부렸어.


환상의 호흡 아닌가. 도댕과 외제니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따. 서로가 있었기에 모두를 만족시키는 요리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거다.


외제니: 난 당신의 요리사인가요, 당신의 아내인가요?

도댕: ... 내 요리사요.

외제니: 고마워요.


도댕은 외제니를 깊이 사랑한 동시에 요리사로도 존중했다. 외제니 또한 도댕을 믿고 의지했다. 늘 도댕에게 요리를 해주기만 하던 외제니에게 도댕이 정성스러운 코스요리를 대접하는 모습은 내가 꼽는 명장면 중 하나다. 정성과 사랑을 담아 A부터 Z까지 외제니만을 위한 음식을 준비하는 과정은 설렘 그 자체였다.



두근두근, 설렘폭발 로맨스가 아닌 중년 로맨스의 깊이에 빠져 허우적댔다. 오랜 세월을 거쳤기에 거칠거나 조급해하지 않는 매너가 담긴 '아름다운 사랑'. <프렌치 수프>는 미식(美食)처럼 농익은 풍미를 자랑하는 사랑을 지켜보는 재미가 있는 영화다.


하나의 맛을 완성하려면
문화와 기억이 있어야 해.


도댕과 외제니의 20년에는 얼마나 많은 추억이 있었을까. 우리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고 소울푸드로 계속 찾게되는 이유 중 하나도 문화와 기억이다. 특정 장소에서의 잊지 못할 맛에 대한 기억은 그 음식을 평생 잊지 못하게 만든다. 외제니가 죽은 후 도댕이 외제니의 레시피를 잊지 못하는 이유도 외제니와 만든 요리에 대한 철학과 그녀를 향한 애정어린 기억들 때문이다.



<프렌치의 수프>는 요리가 완성되기까지의 여정을 충실히 담는다. 카메라는 요리사들의 움직임을 율동하듯 세세하게 포착한다. 인물들의 동선을 하나하나 섬세하게 좇으면서 예술과 다름 없는 요리사들의 혼을 온전히 담아낸다.

내가 떠날 때도 여름일 거예요.
난 여름이 좋아요.


하나의 레시피가 영원할 수 없듯, 사랑도 영원할 순 없다. 누군가에겐 도댕과 외제니의 사랑이 아쉽고 안타까울 순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아름다운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그 옛날, 도댕만큼 연인을 평등하게 대할 사람도 없었을 거다. 트란 안 훙 감독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 도댕이 여전히 외제니에게 매료되어 있는 이유는 그가 그녀를 온전히 소유한 적이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둘 관계의 아름다움은 바로 거기에 있다"라고 설명했다.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역할에 충실하며 사랑에도 열심인 둘은 각자의 삶도, 애정선도 완벽했다.



<프렌치 수프>의 원제는 프랑스 가정식 수프 '포토푀(The Pot-au-feu)'다. 포토푀는 고기와 채소를 오랜 시간 뭉근하게 끓인 스튜다.

마흔이 되기 전에는
미식가가 될 수 없다.


미식과 사랑을 완성하기까지의 오랜 시간과 노고를 함축한 대사다. 영화에는 음식과 페어링한 와인들도 등장한다. 와인 역시 숙성 과정을 거쳐야 완성되기 때문에 주제와 걸맞은 주종이다.


영화는 제76회 칸국제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해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인상적인 건 도댕과 외제니처럼 비노쉬와 마지멜 역시 한때 동거를 했다는 점이다. 둘은 2003년 이별한 후 20년 만에 <프렌치 수프>로 재회했다. 둘의 실질적인 관계 때문인지 영화의 분위기가 꽤나 자연스럽다.


일과 사랑 모두 잡고 싶은 사람이라면 공감할 만한 깊이 있는 영화 <프렌치 수프>. 공복에 가면 괴롭다. 프랑스 요리를 담았기에 메뉴도 다양하고 조리 과정을 세세하게 담아 '꼬르륵' 소리와 '꼴깍' 침 넘어가는 소리가 절로 나오기 때문이다. 반드시! 배를 채우고 관람하길 추천한다. 프랑스 요리를 먹고 간다면 더 좋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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