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썸머 Dec 13. 2019

굳이 말하자면 페미니스트, 바바라크루거

바바라 크루거 전시를 다녀와서


바바라 크루거 : 내가 사랑한 그녀, 포에버




과거, 바바라 크루거 이름보다 먼저 들었던 그녀의 텍스트. 'I shop therefore I am'

철학자 데카르트의 명문장을 소비사회에 맞게 재해석한 그녀의 텍스트는 매혹적이었다. 이 재기발랄하고도 개념적이며, 혁신적인 예술가 바바라 크루거의 첫 아시아 개인전이 이 달을 끝으로 막을 내린다. 다행히 전시가 끝나기 전,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을 찾아 그녀의 생각과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다.

 



굳이 말하자면 페미니스트인, 그녀의 예술


바바라 크루거 개인전에 입장하면 외벽을 텍스트로 가득 채운 대형 공간에 들어서게 된다. 쏟아지는 텍스트들 사이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문장은 YOU로 시작하는 그 것이다.


 



You know that women have served all these centuries as looking glasses possessing the magic and delicious power of reflecting the figure of man at twice its size.

지난 몇백 년 동안 여성은 남자의 모습을 실제보다 두 배쯤 크게 비추는 신비하고 달콤한 능력이 있는 거울 역할을 해왔어요.


이는 영국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의 에세이 [자기만의 방]에 나온 문장으로, 바바라 크루거는 "이 글을 꼭 인용해야만 했다"고 표현한다.

20세기글로서 페미니즘에 기여한 버지니아 울프처럼, 바바라 크루거는 본인이 가장 잘하는 예술적 표현을 통해 여성의 목소리에 앞장선다. 바바라 크루거는 자신을 "굳이 말하자면, 페미니스트"라고 표현했다.


작품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 오랜만에 자기만의 방을 다시 펼쳐 보았다. 여성이라 공부하는 것도, 글 쓰는 것도, 교정을 가로지르는 것도 금지 받은 버지니아 울프를 생각하며 그날 전시장을 함께 거닐었던 여성 관람객들을 떠올렸다.





이 대형 공간은 블랙, 레드 바탕에 개성적이며 대중적인 글자체를 하얀색으로 얹어 본인의 메시지를 임팩트있게 전하는 바바라 크루거의 성격을 여실히 드러내주었다. 참으로 맘에 들었던 공간이다. 나 역시 WAR FOR ME TO BECOME YOU가 되기 위한 하나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제발 웃어 제발 울어 :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




바바라 크루거는 잡지사에서 일하며 최대한 잉크를 아끼기 위해 흑백 작업을 주로 진행해 왔다. 따라서 그녀가 컬러로 진행한 광고 작품을 보는 것은 꽤나 특별한 일이다. 이번 한국 전시에서도 특별히 컬러로 제작된 작품이 있다. 감정을 드러내는 데 서툰 현대인들에게 전하는 그녀의 메시지 '제발 웃어 제발 울어'

감정 표현을 거세당한 현대인들에게 단 8자의 글자로 그녀는 여전히 강렬함을 준다. 74세에도 이토록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니.





이어지는 전시 공간에서도 자본주의, 남성우월주의에 대한 그녀의 생각을 볼 수 있다.

your gaze hits side of my face 당신의 시선이 내 뺨을 때린다,에서는 전시를 열며 카메라 시선의 폭력을 거부해 나타나지 않은 바바라 크루거의 신념이 느껴진다. 유독 여성에게 더욱 꽂히는 시선 강간에 대해 그녀는 NO라고 말한다. 바바라 크루거는 본인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 예술을 통해 우리와 교류한다.





Are we having fun yet? 앞에서는 전시장 입구에 놓인 또 다른 한국어 작품 '충분하면 만족하라'라 떠올랐다. 소비지상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어느 수준까지 도달해야 만족할 수 있는 걸까.





GOOD BUY. 크리에이티브한 그녀의 텍스트. 또한 그 문장들을 어떻게 해야 시각적으로 잘 나타낼 수 있는지를 그녀는 잘 알고 있다. 시각적인 표현 방법에 대해서는 잡지사 디자이너로 일하며 가장 좋은 방법들(그녀가 주로 쓰는 사진, 텍스트의 결합 방법)을 터득했다고 한다.

참고로 바바라가 점차 선보이게 된 레드 박스 안에 흰 텍스트를 넣는 기법은, 후에 브랜드 슈프림 로고에 영감을 주었다.





전시 끝에 다다를 때쯤 인물들의 얼굴과 대칭되는 텍스트로 결합된 작품 컬렉션이 있다.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겉으로는 화려하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들로 무장한 현대인들의 숨은 냉소적 발언을 메시지로 드러낸 이 공간에서는 왠지 모를 씁쓸한 웃음이 났다.

그녀의 세계관과 작품을 이해하는 데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에서 무료로 제공한 오디오가이드가 도움이 되었다.




당신의 몸은 전쟁터다.




바바라 크루거의 유명 메시지 중 하나인 Your body is a battleground '당신의 몸은 전쟁터다.'

당시 미국에서 여성 낙태법 시위를 위해 바바라 크루거가 자발적으로 제작해 붙인 포스터다. 사진과 메시지가 갖는 강력한 힘을 진작에 알고 있던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페미니즘 운동을 전개했다.


그녀에게 있어 여성 문제는 계급 문제와 같은 맥락의 것이었다. 어릴 적부터 많이 가진 자들과 그렇지 않은 자신 사이의 균열을 직시하고. 그 문제를 고찰했던 바바라 크루거는 자본, 남성 등 권력층에 대한 조준을 서슴치 않았다.



얼마 남지 않은 전시 기간이지만, 지금이라도 바바라 크루거의 예술을 만나보길 추천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