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아이
고등학교 시절 내내 공부를 하지 않았다.
공부를 해야 할 이유를 몰랐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아이
집과 학교만을 오가던 학창시절, 그때 그 순간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사람은 나였다. 보는 시야가 너무도 좁았고 어린 나이였기에 나의 고통이 가장 큰 고통이라 생각했다. (어른이 되면 좋은 점 딱 한가지는 이해할 수 있는게 많아진 다는 것이다. 지금은 세상에는 너무나도 큰 고통을 인내하고 이겨내며 사는 사람이 많다는 걸 안다.) 학교라는 공간이 답답했다. 아침부터 저녁늦게 까지 하루종일 앉아 있다보면 '내가 왜 여기 있나?'라는 생각에 자주 야자를 땡땡이쳤지만, 집에 와도 막상 할일은 딱히 없었다. 여전히 아파트 입구부터 부모님싸우는 소리가 울렸고, 부끄러운 마음에 자주 고개를 숙이고 다녔다.
집을 탈출하고 싶은 날에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아파트 주차장에 놀이터 뿐이었다. 어둠이 내린 밤에 홀로 앉아 있는 놀이터는 왠지 더 쓸쓸했다. 놀이터에서 날이 점점 추워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일상이었다. 그나마 쓸쓸한 마음으로 들어온 집은 밝은 전등이 비추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부터 답답한 마음이 드는 날이면, 방문을 닫고 책상에 앉았다.
노트에 그 날의 감정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오늘 할일에 대한 구체적인 상황보다는 그날의 마음에 관하여 주로 썼다.
그 시절 나를 이해하는 유일한 친구는 글쓰기였다.
글쓰기에 재능이 없는 아이
누군가와 대화하고 싶은 날은 그렇게 매일 글을 썼다.
특히 부모님이 크게 싸우는 날이면, 방문을 닫고 최대한 소리가 들리지 않게 이어폰을 끼우고 나의 친구와 대화했다. 그렇게 한참을 눈물에 젖어 흐려진 글씨가 번진 채로 말라갈때 쯤이면, 태풍이 지나고 고요가 찾아온듯 다시 평화로웠다.
대부분 나의 친구는 가장 우울하고 슬픈 날만 자주 찾게 되었다.
글쓰기가 가장 큰 위로가 되는 시절이었다.
그 이후로 집에서 뿐만 아니라 학요에도 포스트잇에 시를 적어 두고, 모의고사에 나온 시를 오려 노트에 붙이기도 했다. 시험에 나오는 시의 해석을 외우기보다는 내가 느낀 대로 시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싶었다. 친구에게 선물로 편지를 쓰고, 때로는 시를 써주기도 했다. 장난삼아 친구들은 나를 시인이라 부르기도 했다.
그 시절 아무도 모르게 문예창작학과의 진학을 꿈꿨다.
수능 공부는 하지 않고, 시 공모전에 응모하고는 했다. 현실은 여전히 답답했지만, 우표를 사서 시를 쓴 종이를 우체통에 넣는 설레임이 참 좋았던 시기였다.
당연히 모든 공모전에 탈락했다.
"나는 글쓰기에 재능이 없구나.. 돈이 안되는 일을 할 수 있을까.."
꾸준히 글을 쓰지 않고, 생각나는 대로 쓴 서투르고 어설펐기에 당연한 결과였다.
여전히 공부에는 관심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