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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터뷸런스 Apr 02. 2020

고맙습니다.

우리는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며 산다. 아니, 하기가 힘들다.

그렇게 어렵고 머리 아픈 주제를 두고 혼자 고뇌하기에는 현실의 짐들이 너무나 버겁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죽음은 찾아온다. 내가 의도하였든, 의도하지 않았든.


그래서 때로는 소중한 사람의 죽음이 납득되지 않는다. 

나의 사랑하는 할아버지가 할머니와 함께 스스로 삶을 포기하시고 돌아가셨을 때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그들이 대체 무슨 잘못을 하셨길래 그렇게 가셨을까. 수백 번 되뇌어봐도 답할 수도 없고 누군가에게서 답을 들을 수도 없었다.


잊은 채 살다가도 종종 기억이 난다. 관은 정말 무거웠다. 사실 무게는 무겁지만 들을 수 있는 정도였다. 그런데 너무나, 지독히도 무거웠다. 

생각해보면 마음의 무거워짐이 내 몸으로 전해졌던 것 같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이 나를 떠나는 일은 나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 놓았다. 내 삶은 그 사건 전과 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분들에게 충분히 전해드리지 못한 사랑을, 나보다 더 힘들어하는 누군가에게 전하며 살자고 다짐했다. 

그분들이 고통받으며 이야기하지 못했던 그런 슬픔들을 품어주거나 위로하며 살겠노라고 결단했다.


평소에는 나 역시 남들과 비슷한 일상을 보낸다. 하지만 나에게 그 일상이 의미가 있는 이유는 나 혼자만을 살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기 때문이다.

분명 할아버지 할머니는 떠나가셨지만 그분들이 뿌려놓은 사랑의 씨앗은 '나'라는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분들의 죽음은 너무나 의미 있다. 그리고 더욱더 값진 열매로 보답하리라. 타인의 죽음은 누군가의 생명을 보전한다. 바람에 날려 스러진 꽃은 어딘가에 심겨 새로운 생명을 토해낸다.


우리의 삶은 때때로 끊어지지만 그 생명과 의지는 누군가에게 연결되고 전해진다. 그래서 죽음은 끝임과 동시에 시작이다. 

찬미로 가득 차기에 충분하다. 우리는 당신의 미소를 기억한다. 그것으로 우리는 더 찬란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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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사 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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