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2B 프로덕트 디자인이 흥미로운 이유
작년 연말, 지금의 회사로 이직하면서 B2B 프로덕트 디자이너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하였다. 이전 회사에서도 B2B 업무가 가능했지만, B2B2C라고 해야 할까? B2C와 함께하는 업무였던 터라 겉핥기로만 경험한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고, 이직 시 B2B 공고만 지원하며 본격적으로 B2B 세계에 뛰어들었다.
B2C에 비해 전체적인 범위는 작을지언정, 더 깊게 파고든다.
B2C에 비해 사용자들의 목적이 뚜렷하고 패턴이 일정하다.
사용자들은 해당 도메인에 대해 어느 정도의 지식 또는 정보가 있는 상태이다.
사용자 그룹별로 권한이 다르고 그에 따라 화면과 동선이 달라진다.
뒷단(Back)에 대한 이해가 B2C보다 더욱 강조된다.
PC와 모바일 외에도 다양한 디바이스에서 프로덕트를 구현하기도 한다.
업계마다 제약조건이 다르다.
B2B는 조직의 복잡한 업무와 문제점을 대신 처리하여 기업이 더 중요한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B2C에 비해 대중의 주목도가 높지 않고, 특정된 사용자들이 이용하는 편이다. 특정 업계의 기업과 종사자, 관련자를 대표적인 사용자로 볼 수 있으며, 해당 프로덕트가 처음인 사용자도 존재하지만, 대부분은 프로덕트의 성격을 기본적으로 인지하고 있다. 대표적인 B2B 프로덕트로는 플렉스, 채널톡, 배민 사장님 등이 있다.
B2B의 특성을 <플렉스>를 예시로 하여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HR 플랫폼으로서 기업과 기업의 임직원들이 사용한다.
- 기업의 임직원 또는 부서별로 권한과 기능이 다르게 작동한다.
- 기업의 HR 관련한 여러 복잡한 업무는 플렉스를 통해 해결한다.
복잡한 업무를 대신 해결해주는 만큼, 프로덕트 뒷단에는 정보도 무척 많고 복잡하게 뒤엉켜있는데 이 혼돈의 환경에서 B2B 프로덕트 디자이너는 보이지 않는 처리 구조를 이해하고, 사용자가 원하는 가치를 효과적으로 전달해야 한다.
나는 사용자가 어느 정도의 기본 지식이 있고, 목적이 뚜렷하여 B2B 프로덕트는 더 깊고 끈질기게 파고들어야 한다는 것에 끌렸다. 실제로 와서 경험한 B2B는 더 놀라운 곳이었다. 특히 가볍게만 파악하고 끝냈던 뒷단의 구조와 전체적인 로직에 관해 공부하고 고민할 수 있다는 것이 나를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게 하였다.
예전에는 눈에 보이는 프론트엔드 중심으로 단순하게 화면을 설계했다면 B2B는 필연적으로 보이지 않는 뒷단의 로직과 정보의 호출을 신경 쓰게 된다. 이 과정에서 보이는 '바깥'과 보이지 않는 '안쪽'의 정보를 함께 인지하고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내가 만드는 화면의 깊이가 달라진다. 자연스레 화면 구성의 이해도가 달라지고, 프로덕트를 보는 시야가 넓어지게 되었다. 이렇게 보이지 않는 화면을 생각하며 디자인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보이지 않는 경험에 도전하게 된다.
채용 인터뷰를 들어갈 때 지원자들이 지금 내가 하는 업무에 대해 어필해달라고 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항상 "보이는 경험도 디자인하지만, 보이지 않는 경험 역시 디자인한다"라고 이야기한다. 수수께끼 같은 말이지만 정말 이 일은 그렇다. 내가 가장 매력을 느끼는 부분이다.
이어서 단점을 적어 보자면 B2C에 비해 B2B는 회사 또는 프로덕트의 인지도가 떨어질 수 있다. 불특정 다수가 아니라 '특정한 목적'을 가진 '기업' 고객이 대상인 관계로 대중성과는 거리가 멀다. 또한 대부분의 디자이너는 미적인 부분에 민감할 테지만, 아쉽게도 B2C만큼 프로덕트 비주얼을 챙기지 못할 때가 많다. 설계와 비주얼을 함께 가져가면 좋겠지만 우선순위에서 뒤로 물러날 때가 잦다. 프로덕트의 최종 산출물 역시 화사한 B2C 화면에 비하면 무척 밋밋해 보일 것이다. 그리고 많은 경우 비즈니스가 우선시되어 프로덕트가 비즈니스에 휘둘리는 경향도 없잖아 있다. 이 부분은 많은 B2C 회사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비즈니스가 프로덕트에 미치는 영향력은 B2B 쪽이 더 크다.
그러나 이러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장점이 주는 경험치가 매우 크다. 새로운 경험을 하면 할수록 시야가 넓어지고, 순발력과 유연성이 늘어난다. 그래서 디자이너로서의 성장을 생각한다면 도전해볼 만한 분야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B2B 업계의 프로덕트 디자인 수요는 많은 데 비해, 공급은 늘 부족해서 만성적인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그래서 나는 새로운 경험을 고민 중인 프로덕트 디자이너들에게 B2B를 자주 추천한다.
아직 이 글을 쓰는 나조차도 B2B 프로덕트 디자이너로서 부족한 점이 많다. 그런데도 내가 부족한 만큼 고민하고 도전하는 재미가 있다. 어려운 문제에 매달렸다가 해결했을 때의 뿌듯함과 만족스러움을 일하면서 느낀다. 보이지 않는 것들을 생각하다 보니 막상 보이는 부분에서 임팩트가 덜할 수도 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고민하며 만들다 보면 화면의 구성이나 동선이 전체적으로 정돈되어 전달하고자 하는 가치를 좀 더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었다. 고민이 많을 수록 화면은 그만큼 깊어졌다. 그래서 나는 이 분야가 흥미롭고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