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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주 Jan 04. 2023

2022 회고

남들과는 다르게 남들보다 느리게



해가 지날수록 나의 패턴을 지켜보면 남들은 안 할 때 나는 한다. 정확히는 남들 다 할 때 안 하고, 안 할 때 한다. 연말 회고도 마찬가지다.






재작년 연말에 이직을 하고 예년과는 다른 회사 환경에 적응이 오래 걸렸다. 조직 변경도 잦았고, 스타트업만 돌다가 큰 회사는 처음인데 일하는 방식이나 환경이 달라서 정말 이게 맞나? 이렇게 해도 되나? 싶은 것들이 많았다. 오로지 프로덕트 디자인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인데도 한참을 낯설어했다. 그런가 하면 기존 회사들과는 다르게 업무 템포가 무척 느리고, 디펜던시가 많이 걸려있어 답답하기도 했다. 그래서 내 경험으로 여기에서 이 프로덕트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서 개선할 수 있을지를 계속 고민했던 기간이다. 다행히 삼 개월 전후로 어느 정도 회사가 익숙해지고, 동료들이 편해지고, 나도 지인을 데려오고 하면서 녹아들어 간 것 같다. 내가 들어온 이후 우리 셀러 Side PD들이 많이 늘어나서 나는 피리 부는 헤이즈다.. 하면서 셀프 최면도 했다.



상반기는 적응도 그렇고, 잦은 조직이동과 타 팀 파견 업무도 있고 해서 나름 여유롭게 일을 했는데, 후반기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한 조직에 자리를 잡고 업무를 진행했다. 처음 예상과는 달리 업무가 너무 많아져서 힘든 상황이 찾아오기도 했다. 성격이 확연히 다른 물류와 도매라는 도메인을 혼자 쳐내면서 멘탈이 나갈 뻔 하다가도 아, 내가 실무를 하고 싶어서 여기 왔지 생각하며 바쁜 와중에 즐거워했다. 난 정말 이 일이 하고 싶었으니까.



작년 7, 8, 9, 10월 러쉬 잊지 못해요...


 다른 도메인을 동시에 치면서 업무 집중 스위칭이 어렵다는 이유로 챙기지 못한 작은 부분들이 많이 나왔지만,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잘 체크해주고 피드백을 준 덕분에 어떻게든 버틴 것 같다. 일을 하다가 멘탈이 깨지면 정성껏 토닥토닥 예쁘게 반죽해주는 우리 PD들도 너무 고마웠다. 방화 욕구와 포악해진 성정을 마구 드러냈는데도 잘 다독여주는 착한 사람들... 또 그 와중에도 PD 지원자를 한 분 한 분 추려내고 인터뷰하는 과정 역시 빠듯한 일정 속에서 조금 벅차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지금 좋은 분을 만나 함께할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다. 연말로 갈수록 점점 업무 컨디션은 제 자리를 찾아가고 있었고, 그 덕분에 적당히 할 거 하고, 쉴 거 쉬면서 보낼 수 있었다.






2022년은 기존의 나답지 않게 뭔가를 배워야겠다, 익혀야겠다 하는 그런 향상심이나 성취욕은 많이 들지 않았던 해였다. 매너리즘은 아닌데 다급함은 없는 그런 해. 재작년 같은 강도 높은 스트레스나 공황은 줄었지만, 감정의 큰 고조 없이 일직선을 그린 느낌이다. 아무래도 복용 중인 약의 효과도 있을 것이고, 성취와 향상에 대한 강박, 정리와 기록에 대한 강박을 조금 놓으라는 주치의 선생님의 조언도 한몫했다. 사람이 항상 달릴 수는 없으니 천천히 걷는 시간이라 생각하고 길게 보자고 하셨다. 여전히 무기력은 쉽게 가시지 않았고 집중력이 사라지거나 건망증이 심해져 추가적인 약물을 처방받기도 했다. 다행히도 공황은 점점 드물어졌고 가끔 불안이 조금 올라오기도 한다. 난 그저 그것만으로도 만족하는 쟈근 마음을 가지며 2023년을 맞이한다. 내년의 나는 어떤 모습으로 회고를 할지 궁금한 마음을 한 구석에 간직한 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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