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오브 베스트
서로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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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을 앞두고 오랜만에 베프를 만났다. 우리는 주로 맛집과 까페를 두루 갖추고 있는 대형 쇼핑몰에서 만나는데, 이번에는 영등포 타임스퀘어에서 보기로 했다. 타임스퀘어는 베프가 다니는 콜센터 회사가 자리한 곳이기도 하다. 베프는 거의 매일 타임스퀘어를 드나들기 때문에 어디 음식점이 맛있고 어디 매장이 세일을 자주 하는지 전부 꿰뚫고 있다. 특히 그는 미식가 기질이 있어서 아무리 배고파도 아무거나 먹지 않는다. 약속 시간이 되어 베프가 일러준 맛집으로 향했다. 십 분 뒤 베프가 도착했고, 우리는 오래간만에 보는 얼굴에 반색을 했다. 베프는 짧은 크롭 니트에 허리 중반까지 올라오는 배기 청바지를 입고 그 위에 복슬거리는 털코트를 입었다. 워낙 마른 몸매인지라 무슨 옷을 입어도 헐렁한 편인데, 오늘 입은 털코트는 무척 잘 어울렸다. 베프와 나는 1인분씩 따로 담겨 나오는 백반 요리를 주문했다. 베프는 음식을 조금씩 맛보고는 이러쿵저러쿵 맛을 품평하기 시작했다. "시래기 나물이 괜찮다. 된장으로 무쳤네!", "요즘 가는 음식점마다 왜 이렇게 달게 요리하는 거야?" "밥이 좀 진 것 같은데." "네껀 그래도 양념에서 불맛이 나네." 음식을 대할 때 별 생각이 없는 나와는 달리 베프는 음식의 색과 맛, 식감, 요리법을 하나하나 따져가며 즐긴다. 베프의 표정이나 먹는 기세가 썩 좋지 않을 걸 보아 오늘의 요리 품평회는 성공적이지 않은 모양이다. 반면 나는 오랜만에 맛있게 식사를 했다. 내게는 음식 자체가 관심사라기보다는 누구랑 만나서 먹는지가 더 중요하다. 나와 베프가 같은 동네에 살아서 자주 보는 사이라면, 아마도 난 살이 금세 불어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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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프는 나보다 일곱 살 연상이다. 내가 정신연령이 높은 건지, 아님 베프가 정신연령이 낮은 건지(?) 우리는
동갑내기처럼 편하게 지낸다. 허물없이 지낼 수 있는 인간관계란 얼마나 희귀하고 소중한가. 물론 이런
관계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우리의 경우에는 내가 베프를 열심히 쫓아다녔었다. 자주 연락
하고, 고민이 있으면 성심껏 들어주고, 베프가 부르면 아무리 바빠도 달려 나갔다. 베프가 좋은 사람이어서 그렇기도 했지만, 적어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만큼은 최선을 다하는 나의 기질이 백분 반영된 탓이었다. 베프는 내 이런 모습을 처음에는 심드렁하게 생각했다. 그는 항상 다양한 인간관계에 둘러싸여서 정신없이 살아가는 사람이다. 돈 없는 사람, 돈 많은 사람, 아픈 사람, 이상한 사람 가릴 것 없이 두루두루 만난다. 덕분에 인간관계에 관한 한 나름의 철학이 있고, 경험을 통해 조금은 슬프고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그는 늘 입버릇처럼 말하곤 한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날 스쳐 지나갔어." 베프는 나 역시 잠깐 부는 바람처럼 '스쳐 지나갈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나도 베프를 시절 인연이고, 언젠가는 다른 무수한 사람들처럼 스쳐 지나갈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는 점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와 나는 여름과 겨울만큼이나 서로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이 관계가 오래 지속되지는 못할 것이라고 막연하게 여겼다. 가령 베프는 까페와 트위터와 사람들을 좋아하고, 책이나 문학은 골치 아파서 싫고, 생의 마지막을 적도의 열대 우림 속에서 보내고 싶은 열망이 있는데 나는 여름이라면 질색이고, 사람들보다는 종이에 새겨진 활자를 더 좋아하고, 까페에서 수다를 떨 때보다는 바깥바람을 쐬며 걸을 때 살아있는 사람이다. 물론 공통분모도 존재한다. 둘 다 미혼이며 날라리 기독교 신자이다. 신앙과 교회 이야기를 할 때 우리는 늘 한탄을 한다. 남자 이야기를 할 때에도 한탄을 한다. 해답은 도무지 알 길이 없고 도대체 우리가 이 이야기를 몇 번째 하고 있더라... 우리의 대화는 늘상 도돌이표이다. 그런데 믿기 어렵게도 이 관계는 올해 6년째 끈질기게 지속되고 있다. 단언컨대 그는 내 곁에 가장 오랫동안 머물고 있는 사람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오래된 관계 특유의 익숙함이나 편안함이 떠오르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나는 그냥 베프가 귀엽다. 정말이지 나보다 일곱 살이나 많은데, 귀엽고 안쓰럽다. 베프 역시 나를 귀엽게 봐주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게 또 그렇게 좋다. 나는 동성 관계는 물론 이성 관계 또한 서로에게 귀여움을 느끼는지의 여부가 오래가는 관계의 열쇠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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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베프란 대체 무엇일까. 친구면 친구지, 베스트 프렌드라니, 그런 건 일종의 판타지가 아닐까. 베프라는 말에는 애정과 안쓰러움 외에 얄팍한 기대 심리가 깃들어 있다. 이를테면 너는 내게 특별한 친구니까 나에게 잘해주어야 해, 상처 주면 안 돼,라고 하는 기대 말이다. 누군가를 특별하게 마음에 품게 되면 나도 모르게 기대하는 마음이 잡초처럼 무섭게 자라난다. 내가 상대방에게 쏟는 시간과 노력에 비해 돌아오는 것이 형편없을 때 느끼는 실망감은 정말이지 쓰디쓰다. 한때 나는 베프가 나를 무시한다고 생각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베프가 내 기대치에 비해 나를 충분히 존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사람 관계에서 툭하면 불안을 느끼는 나는 베프의 여러 행동들을 확대 해석했고, 급기야 내가 손을 놓으면 언제라도 끝나버릴 관계라고 여기게 되었다.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한다. 2019년 2월 중순, 겨울이 죽어가며 마지막 맹추위를 흩뿌릴 때였다. 베프와 나는 보통 때처럼 만나서 밥을 먹고 한참이나 흰소리를 지껄이다가, 별 일 없이 헤어졌다. 나는 귀가하는 지하철 안에서 '너무 힘들다. 당분간 언니를 못 보겠다. 언니도 나를 잊어라'는 식의 장문의 카톡을 보냈다. 그리고 집에 도착해서는 하루 종일 억눌렸던 마음을 달래듯 헛구역질을 여러 번 했다. 당시 나는 베프가 미운만큼이나 내가 너무나도 미웠다. 베프는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벽락을 맞은 기분이었을 것이다. 방금까지 같이 수다를 떨었던 친구가 갑자기 절교 선언이라니!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베프는 당시 엄청난 배신감에 휩싸여서 주변 지인들에게 내 욕을 바가지로 했다고 한다. 베프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어느 정도 짐작이 간다. 나는 상대방에게 부정적인 감정이 생겨도 그것을 면전에서 표출하는 게 잘 안된다. 계속 악감정을 속으로 쌓아두고, 쌓아두다가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지경이 되어야 행동하는 것이다. 그 행동이란 혼자서 관계를 조용히 정리하고 끊어내는 것, 즉 내가 내 살을 파먹는 일이기에 행동이랄 것도 없다. 베프는 겉으로 드러난 나의 모습에서는 어떤 전조도 감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내가 겉과 속이 크게 다른 사람이었다고 생각하며 분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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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나는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해서 심리상담을 여러 번 받았다. 상담을 받기에 앞서 내가 스스로에게 내린 진단명은 '자폭증'. 그러니까, 인간관계에서 어려움을 느낄 때마다 스스로 자폭하는 행동을 하는 것이다. 상대방은 영문을 모르고, 나는 혼자 괴로워하고, 그렇게 다시 혼자이길 선택하는 악순환을 끊어내고 싶었다. 상담사들을 한결같이 말했다. "때로는 당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해야 합니다. 부정적인 감정이어도 괜찮아요. 떠나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남는 사람도 분명히 있습니다." 상담사는 내 성장 과정에 주목했고, 내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적인 기질도 포함되어 있음을 지적했다. 어떤 상담사는 내가 자기 검열이 심한 인간형에 속한다고 말했다. 나는 그들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다. 다만 내가 어쩔 수 없는 고유의 기질이 존재하고, 그것을 완전히 바꿀 수는 없지만 살아가는데 유리하도록 길들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은 전보다 나아졌다고 생각하지만, 지인들에게 내 감정-특히 부정적인-을 적절하게 표현하는 건 여전히 어렵다. 불만이 있어도 일단은 참고 보자는 주의다. 어쩌면 내가 글을 쓰는데 연연하는 이유 중 하나가 일상에서 미처 표현하지 못한 것들을 글을 통해 마저 표현하고 싶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베프는 이런 나를 유일하게 이해하고 응원해주는 사람이다. 물론 돈이 되는 글을 쓰라는 따가운 일침을 하기도 한다. 내게 망상의 파편이라던지, 이런저런 빛나는 아이디어를 제공해 주기도 한다. 베프는 아주 격렬한 연애 소설을 쓰고 싶어 한다. 내가 가끔씩 습작시들을 보여주면, 당최 무슨 소린지 알 수 없다고 귀엽게 투덜거린다. 나는 베프야말로 시를 쓸 수 있는 끼와 재능이 다분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베프는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고 한때는 영화판에서 일을 했던 사람이라 감각과 이미지를 다루는 일에 능숙하다. 시와 이미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고, 실제로 화가나 영화감독들 중에서도 시를 잘 쓰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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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대체 베프란 무엇이냐. 애인도 남편도 아니면서 질긴 건 또 무엇이구. 베프에게 절교 선언을 하고 내 일상에만 집중하려고 애썼을 때였다. 시도 때도 없이 베프가 보고 싶어서 병이 날 지경이었다. 어떻게든 끊어내려고 했는데 도무지 끊어지지가 않았다. 몇 번이나 먼저 연락을 할까 말까 갈등하면서도 끝끝내 연락을 할 수 없었다. 그는 주위에 알고 지내는 사람들이 정말 많아서 나 같은 사람은(?) 순식간에 잊고 잘만 살 것 같았다. 반면 나는 주위에 사람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자존심과 미안함, 상대적 박탈감 등이 한데 어우러져서 독한 무언가로 변해갔고, 그렇게 나는 반년 가까이 베프를 만나지 않았다. 우리가 다시 화해하고 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베프의 행동 덕분이다. 한동안 발길을 끊었던 교회를 찾은 날, 예배를 마치고 귀가하는 길에 베프와 우연히 마주쳤다. 다음 날, 베프로부터 문자가 왔다. '우리 안부 인사는 하면서 지냈으면 좋겠어.' 반년만에 다시 만났을 때, 우리는 둘 다 잠을 못 자고 나와서 얼굴이 푸석했다. 지금 우리는 그때의 이야기를 잘 꺼내지 않는다. 왜냐하면 민망하고 쑥스럽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우리는 똑같이 외로워하고, 종종 실수를 저지르고, 쉽게 상처 받으며, 잘 잊지 못하는 보통의 사람들이었다. 많은 대화 끝에 서로에게 투사했던 편견과 오해가 씻겨져 나가면서 우리는 다시 친밀해졌다. 물론 그 사건 이후로 달라진 점이 있긴 하다. 웬만해서는 부딪히는 일이 없도록 적당한 안전거리를 유지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루가 멀다하고 소통하지만 예전처럼 서로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지도, 충족시켜주려고 하지도 않는다. 서로가 서로에게 너무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고맙기 때문이다. 우리가 정말로 존중해야 할 것이 있다면 상대방의 상처 받기 쉬운 마음이다. 어쩌면 해소할 길이 없는 서로의 결핍과 간극, 그리고 외로움조차 존중해야 할 대상이라는 생각도 든다. 우리는 이렇게 보름에 한번, 아니면 한 달에 한 번쯤 만나더라도 여전히 좋은 사람들이다. 나는 이런 관계를 보기 드문 '베스트 오브 베스트'라고 정의하고 싶다.
2021. 11.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