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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기억의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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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혜 Dec 09. 2021

코로나에 걸리다.

두렵더라도 끝까지 붙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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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에 걸린 지 닷새째. 여전히 몸에 힘이 없고, 열이 있다가 없다가 한다. 냄새도 잘 맡지 못한다. 미각도 고장이 났는지 아주 짜거나 아주 달지 않으면 무슨 맛인지 알 수가 없다. 때로는 음식에서 이전에 알던 맛이 아니라 전혀 엉뚱한 맛이 난다. 어제는 인스턴트 육개장을 데워서 먹는데, 국물에서 자판기 코코아 밀크 맛이 나서 기겁을 했다. 오늘 아침에는 미역국과 어제 먹다 남은 고등어자반을 먹었다. 나는 본래 고등어를 비려서 잘 못 먹는다. 하지만 지금은 특유의 비린 맛도, 짭짤한 맛도 거의 느낄 수가 없다. 그야말로 살기 위해서 냉장고를 뒤져가며 삼시세끼를 챙겨 먹는 중이다.


2

사실 정말 속상한 건 망가진 미각 따위가 아니다. 엄마가 많이 아프다. 엄마가 아산병원 중환자실에서 코로나 폐렴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오늘 아침 열 시쯤에 주치의가 전화를 했는데, 산소요구량이 50퍼센트 정도라고 한다. 기관삽관을 하고 인공호흡기에 의지하고 있는 엄마. 하루 종일 먹지도 못하고 죽은 듯 잠만 자고 있을 엄마... 엄마를 마지막으로 본지 벌써 나흘이 지났다. 그날 아침 엄마는 누가 봐도 이상할 만큼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얬다. 호흡을 하는 가슴이 급격하게 오르락내리락했고, 내가 부축해도 앉아있지를 못하고 다시 침대 위로 쓰러졌다. 나는 당장 119를 불렀다. 응급차에 올라탔는데, 대원이 내 체온을 재더니 열이 있다면서 동행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때 나는 이미 엄마로부터 코로나에 전염된 상태였지만,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나는 내가 아니면 보호자 노릇을 할 사람이 없다고 박박 우겼다. 결국 나는 엄마와 함께 응급차에 올라탔고, 순천향대학교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엄마는 의식이 있어서 내가 하는 말에 대답도 하고 먼저 의사를 표현하기도 했다. 응급차로 이동하는 내내 가슴을 졸이면서도, 엄마가 의식이 또렷해서 '설마 큰일은 아닐 거야' 생각했다. 상황은 응급실에 도착하면서 숨 막히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오줌이 왜 이렇게 많이 나오지?", "혈당이 너무 낮아요", "기관삽입을 해야 하니 보호자분 동의해주세요." 뭐가 뭔지도 모르면서 동의서에 사인을 하고, 의료진의 속사포 같은 질문 세례에 하나하나 답변을 했다.  약 두 시간 후, 속성으로 진행된 코로나 검사 결과가 나왔다. 아니나 다를까, 엄마는 양성이었다. 엄마는 코로나로 인한 급성 폐렴이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보호자인 나에게는 당장 집으로 귀가하라는 조치가 내려졌다. 거의 쫓겨나듯이(실제로 응급실 의사는 내가 착용한 보호복을 거칠게 벗겨내고는 아주 무서운 표정으로 당장 집으로 가라고 말했다.) 응급실에서 빠져나와서 지나가는 아무 택시를 잡아탔다. 그제야 안개가 걷히듯이 현실이 뚜렷하게 자각되면서 가슴이 방망이질 쳤다. '엄마가 죽을 수도 있구나.' 폐렴은 코로나 위중중환자의 주요 사망 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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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에서 쫓겨나기 직전 잡았던 엄마의 손은 대리석처럼 차가웠다. 그때 나는 내가 갖고 있던 핫팩을 엄마 손에 쥐어줬는데, 엄마는 그걸 두 손으로 꼭 쥐고는 눈알만 굴렸다. 이미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기에 어떤 말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엄마는 그렇게 순천향대학교 병원의 차가운 응급실에서 하루를 꼬박 넘게 버텼다. 위중중환자임에도 병상을 구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수도권 병상은 물론이고 지방에서도 병상이 나올 확률이 극히 희박합니다. 혹시 강원도나 전라도 쪽에서라도 병상이 나오면 전원(병원을 옮김)하실 생각이 있으신가요?" 의사는 몇 번이나 전화를 통해 병상을 구하기 힘들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말인즉슨 수도권 병상을 얻는 건 낙타가 바늘귀를 뚫는 격이라는 것이다. 나는 먼저 교회 목사님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교회 청년들의 단톡방에도 기도를 부탁했다. 아는 집사님 한 분은 자기가 활동하는 선교회에 중보기도를 요청해도 되겠냐고 물어왔다. 나는 당연히 감사하게 받아들였다. 정말이지 기도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많은 분들이 마음 써서 중보 기도를 해주신 덕분일까. 엄마가 응급실로 실려간 다음날, 극적으로 병상을 구했다는 의사의 전화를 받았다. 순천향대학교 병원 응급실 쪽에서는 엄마가 근래 들어 처음으로 병상을 배정받은 코로나 환자라고 했다. 밤새 한숨도 못 자고 두려움에 떨었던 나는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져 나와 볼을 타고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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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통화 에 목사님이 말했다. "어머니를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은혜씨도 푹 쉬세요. 그리고 보호자는 냉철해야합니다." 통화를 끝내고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몸에 힘이 하나도 없는 건 나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 목사님의 목소리가 다시 들리는 듯하다. "보호자는 강해야합니다." 나도 알아요. 그래서 열심히 먹고 기운 내려고 합니다. 그런데 엄마가 잘못되면요? 만에 하나 상태가 악화되어 엄마를 보내게 된다면 나는 나를 용서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진작에 살펴서 병원에 데려가지 못한 나를, 평상시 엄마에게 관심조차 없었던 나를 어떻게 용서하지? 나 같은 딸을 둔 엄마가 불쌍해서 어떡하지. 독한 약 기운이 퍼지면서 다시 정신이 아득해진다.  바닥 밑의 바닥까지, 성경이 말하는 무저갱 속으로 내려가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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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병원에서는 하루 한번, 전화로 환자의 상태를 알려준다. 입원 시 70퍼센트에 달했던 산소요구량이 현재는 50퍼센트까지 떨어졌지만, 여전히 위험한 상태이기에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오늘은 처음으로 콧줄을 통해 엄마에게 유동식을 주입했다고 한다. 어쩌면 진정한 싸움은 지금부터인지도 모른다. 나는 현재 코로나 위중증환자 보호자들이 모여있는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을 통해서 온갖 이야기를 듣고 있다. 개중에는 열흘만에 산소호흡기를 떼고 퇴원한 노모의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에크모까지 동원해서 최후의 사투를 벌이고 있는 부친의 이야기도 있다. 이제 막 채팅방에 들어온 사람은 내가 처음에 그러했던 것처럼 미칠듯한 불안과 걱정을 토로하곤 한다. 병상을 못 구해서 며칠째 응급실에서 대기하고 있는 노모를 둔 사람도 있어서 가슴이 너무 아프다. 어떤 분은 일주일 전에 안타깝게도 부친을 코로나 폐렴으로 보냈는데, 오픈 채팅방에 그대로 남아서 본인의 경험담을 토대로 다른 사람들에게 적절한 정보를 주려고 애쓰고 있다. 이런 분들을 보면 한없이 절망하다가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 무시무시한 아픔을 잠시 접고, 다른 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마음이란, 그 영혼이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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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에는 친한 언니가 각종 식료품을 챙겨서 택시를 잡아타고 우리 집까지 왔다. 큰 보따리를 바깥 출입문 앞에 두고는,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뒤돌아서서 가는 모습을  훔쳐보았다.  사랑의 빚. 내가 먼저 준 적이 없는데 이렇듯 받고 있는 사랑의 빚을 어떻게 갚아나가야 할까? 언니는 "그저 말씀에 의지해서 왔다"라고 말했다. 언니는 다시 택시를 타고 돌아가면서 카톡으로 요한복음 15장 12절 말씀을 보내주었다.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내가 받은 사랑의 힘을 중환자실에서 사투하고 있는 엄마에게 모두 보내고 싶다. 엄마가 제발 힘을 냈으면 좋겠다. 엄마는 늘 강한 사람이었기에 이번에야말로 굳건하게 이겨내서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 좀 더 기도가 필요하다. 나는 늘 기도해야만 하는 운명이었으니, 이번에도 두렵지 않다. 두렵더라도 끝까지 주님의 십자가를 붙들 것이다.



2021.1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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