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마빈 Jun 24. 2020

어떤 약속에 대하여.

인천국제공항 정규직 전환에 대한 단상


#1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관문, 인천국제공항에는 인천 국제공항 사람을 찾기 힘들다. 1만 명을 넘는 사람들이 직접 관리하는 공항이지만, 실제 인천국제공항공사에 소속된 사람은 1400명에 불과하다. 우리가 해외로 나가기 위해 티켓을 발권하고 짐을 수속하는 사람은 항공사 소속의 비정규직이고, 짐을 맡긴 뒤 입국장에서 몸수색을 하고 짐을 검사하는 사람도 용역 하청업체 소속의 비정규직. 공항 면세점의 직원도 비정규직이며 이들을 안내하는 카운터 사람도, 공항 전체를 쓸고 닦는 사람들도 모두 비정규직이다. 심지어 화재와 같은 심각한 응급상황에 대처해야 하는 직원들까지 인천국제공항은 비정규직으로 이루어져 있다. 공항에서 서 있는 직원을 찾는다면, 그는 99%의 확률로 인천국제공항 소속 사람이 아닐 것이다. 현재까지는 그렇다.     


#2

사실 이 문제제기는 꽤나 오래되었고, 국회를 비롯한 타 공공기관의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문제시되기도 하였다. 그 결과 2016년 국회를 시작으로 공공기관에 속해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고용하는 작업들이 이루어졌다. 책임 떠넘기기와 고용안정성을 해치는 현재의 하청 구조를 탈피하기 위해 정치의 영역에서 먼저 해결할 수 있는 공공부문부터 하청 없는 구조로 만들기 위해서다. 특히 그간의 노동구조 속에서 시설의 안전에 직결된 문제들이지만, 위험하고 힘든 업무라는 이유로 외주 하청업체에게 맡겨진 노동들이 많이 있었기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여론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3

2017년 5월 12일. 문재인 대통령은 당선 후 첫행보로 인천국제공항에 방문하여 인천국제공항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약속하였다. 앞서 이야기한 두 조건, 인천국제공항은 그 어느 곳보다 비정규직이 많이 있는 공간이었고, ‘위험의 외주화’라 불리는 하청구조 탈피를 위해 공공부문이 선도할 필요가 있었다. 공공기관으로서 인천국제공항은 그렇게 정치의 스포트라이트를 단숨에 받았다. 화려한 유토피아가 꿈꿔지는 곳이었다.      


#4

하지만 약속은 한순간이었다. 다이내믹 코리아에서 일주일 신문 1면에 실려 주었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미디어는 더 새롭고 중요하며 자극적인 이슈를 찾아가는데 힘을 쏟아야 했다. 2018년 평창올림픽을 위해 인천국제공항에 제2터미널이 만들어지고, 이 시설들을 유지하기 위해 비정규직 인원들은 더 필요했지만, 이들을 직접 고용하고 정규직으로 만들어 주겠다는 이야기는 여전히 지지부진했다. 대통령은 약속을 했지만, 이들과 협상해 고용하는 당사자는 대통령이 아니다. 그리고 당연하듯이 미디어는 이들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5

사측은 협상을 미루었고, 노측은 갈라져 노노갈등이 일어났다. 인천국제공항 비정규직들이 처음 만들어진 노조는 민주노총 소속이었다. 이들은 대통령의 지시 이전부터 노조를 만들어왔고, 그런 만큼 기존 노동자들이 많이 소속되어 있는 1 터미널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협상을 하는 사이에 2 터미널이 신축되었고, 이쪽 인원이 협력업체 소속으로 충원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들은 여러 상황적 요건에 의해 한국노총 소속으로 다른 노조를 만들어 투쟁했다. 파업을 불사한 1 터미널의 투쟁에 비해 온건한 2 터미널의 투쟁은, 결국 자회사를 통한 직고용에 합의하는 안으로 이어졌다.   


#6

이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협력업체 소속의 노동자를 본사로 직고용하기 위해 민간에서 투쟁한 사례 가운데, 눈에 띄는 케이스가 바로 파리바게트 제빵기사 직고용 관련 사건이기 때문이다. 당시에도 파리바게트의 제빵기사들은 처음에 민주노총으로 조직해 협상을 시도했지만 이내 협력업체 사장님들 주도로 제3노조라 불리는 다른 조직을 만들고, 이들의 머릿수를 불려 협상 테이블에서 민주노총을 배제시키도록 했다. 이들이 이렇게 민주노총과 협상을 하지 않으려는 이유는 하나, 본사에 정규직으로 직고용하는 것을 막고 최대한 간접적인 방법으로 지금의 하청구조를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본사는 다수의 인력이 들어오면서 생길 수 있는 리스크를 부담하기 싫어했고, 협력업체는 자신들의 몫을 유지하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방식은 그대로 인천국제공항의 사례에도 적용되었다.     


#7

2년도 넘는 협상이 이어지고, 결국 사측은 한국노총이 주도로 하는 2 터미널부터 자회사로 채용하기로 합의한다. 대신에 급여는 지금보다 조금 더 올려주고, 주 52시간제를 감안해 휴식시간을 보장해주는 방식으로 합의해 채용하기로 했다. 여기까지가 2020년 초순, 코로나로 모두가 정신없었을 때의 이야기였다. 1 터미널은 여전히 받아들일 수 없다며 반발하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이 입장을 바꾸었다. 보도에 따르면 정규직화 전환 비율이 너무 낮았고, 법률자문 결과 청원경찰 신분으로 고용하면 업무 변동 없이 보안검색 요원들을 직고용할 수 있다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인천공항의 1만여 명의 비정규직 가운데 보안검색 1902명, 공항소방대 211명, 야생동물통제 30명은 공항공사 소속으로 채용이 전환되었다. 나머지 운영, 시설, 시스템, 경비 등의 직군은 자회사 소속으로 전환되었다. 2020년 6월 22일의 일이었다.      


#8

1138일 만에 이루어진 반쪽자리 약속. 그러나 이에 대한 반박논리는 그대로였다. 공정하지 못하다, 역차별이다. 모 언론사는 가장 자극적인 워딩, ‘고졸 알바로 들어와서 정규직’을 사용했다. 보안검색이나 소방대의 업무가 학사 이상의 학력을 요구하지 않으니 고졸도 있을 것이고, 정규직이 아니니 알바라고 퉁 쳐버리는 편안함. 마지막으로 자신들은 인터넷 여론을 옮겨왔을 뿐이라는 졸렬한 안전함까지. 물론 저 감정이 어디를 드러내고 있는지는 안다. 고작 1400명인 인천국제공항 정규직은 토익 만점도 서류 탈락을 가뿐히 시키는 그야말로 ‘계층화된 신의 직장’이다. 높은 노력을 들인 만큼 충분한 연봉과 안정적인 고용환경을 자랑한다. 그런데 자신들보다 더 많은 수의 인원이 자신과 같은 ‘정규직’이 된다니. 게다가 저들은 정말 ‘무스펙’으로 자신들과 같은 노력을 쏟아붓지도 않았는데! 그렇기에 정규직 노조는 ‘공정한 경쟁’을 거치지 않았다며 반발하고 있다.     


#9

물론 보안검색과 같은 직군 노동자들이 지금 정규직의 연봉과 노동조건을 바로 받으리라 생각하진 않는다. 인터넷에선 익명 오픈 카톡방을 기반으로 이들이 해당 조건을 진지하게 요구하고 있는 것처럼 나오고 있지만, 실제 인천공항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그런 실명 기반의 일반 오픈 카톡방을 운영하고 있다 말한다. 어떻게 아냐고? 바로 내 친구가 당사자기 때문이다. 물론 이 친구도 늘 불평한다. 전문대와 체대 출신이 대부분이고, 군대문화가 강한 주제에 여초인 직장 분위기 때문에 다니고 있는 2년 내내 불평과 불만이 끊이지 않았다. 급여는 최저보다 높지만, 그렇다고 10년 차가 넘어가도 비정규직인 채로는 전혀 호봉이 오르지 않고, 회사의 복지는 전혀 생각할 수 없는 그런 공간. 구성원과 업장이 바뀌지 않는 한 이들이 변화할 수 있는 건 고용안정 정도일 것이다. 3년여간의 그 투쟁이, 그렇게 고까웠을까 싶은 생각이 사라지지 않는다.     

작가의 이전글 '말한다'가 가지는 용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