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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영 May 24. 2019

푸르공 드라이버

고비에서 홉스골까지, 보름 동안 몽골 여행.



몽골을 여행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여행사를 통해 차량과 드라이버, 가이드를 섭외해서 여행을 하게 된다. 몽골로 출발하기 전, 한국에서 여행사를 통해 일정을 조율할 때 우리는 가이드가 누구인지, 그의 한국어 실력이나 음식 솜씨 등에만 관심이 있었다. 막상 여행을 해 보니 가이드보다 더 중요한 것은 드라이버였다. 국제 운전면허가 있더라도 외국인은 몽골에서 운전을 할 수 없다고 하는 데다가 운전할 수 있다고 한들 길을 찾아가기도 어렵기에 드라이버는 필요하며 오지로 향하는 긴 여행 중 차를 정비할 수 있는 능숙한 드라이버를 만나는 것이 몽골 여행에서는 가장 중요한 일이다. 고비로 향하기 전날, 울란바타르에 있던 우리는 고비사막에 전례 없는 큰 비가 내려 몽골 정부에서 고비로 가는 길목을 통제하고 있다는 공문을 몽골 여행카페에서 보게 되었다. 어느 팀은 차를 돌려 홉스골로 향하기도 하고 또 다른 팀은 고비를 포기하고 테를지로 목적지를 바꾸기도 했다고 한다. 불안한 마음에 머릿속으로 경로를 바꿔야 하나 고민을 했다. 출발 당일에 만난 가이드에게 ‘우리 고비에 갈 수 있나요?’하고 물으니 당연하다고 말했다. 우리의 기사님은 경력이 많고 능력 또한 좋은 드라이버라고 말하며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매서운 눈빛에 무표정한 얼굴로 일관하던 드라이버에 대한 관심은 크지 않았다.


 울란바타르를 떠난 푸르공은 포장도로를 천천히 달렸다. 울란바타르 외곽의 대형마트 주차장에는 고비로 향하는 푸르공이 줄지어 있었다. 가이드들은 마을에서는 구할 수 없는 식재료와 당일 마실 물을 구입하고 여행자들은 간식이나 술을 구입한다. 마트에는 한국 제품들이 아주 많았다. 라면이나 , 김치뿐만 아니라 쌀, 음료수, 과자 등 울란바타르에서는 쉽게 한국 제품을 볼 수 있다. 푸르공의 트렁크에 여섯 여행자의 짐을 싣고 마트에서 산 물건들까지 싣고 나니 빈 틈을 찾을 수 없을 정도였다. 마트를 떠나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차를 세우더니 드라이버만 어느 집안으로 들어갔다. 가이드는 그곳이 차량정비소이며 드라이버가 차에 문제가 생겼을 때 필요한 물품을 사러 간 거라고 알려주었다. 투어에 이용되는 차량은 여행사 소유의 차량이 아닌 드라이버 소유이며, 투어 드라이버 면허가 따로 있다. 드라이버는 운전만 하는 것이 아니라 차량관리도 하며, 푸르공 역시 드라이버의 취향에 따라 개조되어있다고 한다. 내가 알 수 없는 몇몇 물건을 사 온 드라이버의 다음 목적지는 주유소였다. 푸르공의 양쪽으로 주유를 하며 차를 흔들어가며 가득 기름을 채웠다. 주유소를 벗어나서도 한참은 포장도로를 달렸다.




울란바타르를 벗어나니 창밖으로 초원이 펼쳐졌다. 그 풍경이 좋아서 휴대폰을 창에 대고 연신 사진을 찍었다. 열흘 동안 매일 보게 된 풍경이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사진을 찍는 횟수도 줄었지만 창밖을 볼 때마다 내내 좋았다. 포장도로를 달리던 푸르공이 갑자기 초원으로 들어갔다. 길이 보이지 않는 초원 위로 드라이버는 거침없이 운전했다. 가이드가 앞쪽에 보이는 산 너머가 오늘의 목적지라고 말했다. 처음엔 별로 멀어 보이지 않았는데 아무리 달려도 그 산은 가까워지지 않았다. 표정도 없고 말도 없는 빨간 모자를 쓴 드라이버가 초원 한 복판에 차를 세웠다. 초원엔 우리뿐이고 양 떼들이 한쪽에서 풀을 뜯고 있었다. 양에게 가까이 가려고 하니 양들은 멀리 도망을 가버렸다. 바람도 볕도 좋아서 푸른 초원이 더 맑게 느껴졌다.







네시쯤 첫 번째 게르 캠프에 도착했다. 수도는 없었지만 잠자리도 깔끔하고 화장실도 깨끗한 곳이었다. 캠프에 도착한 뒤로 드라이버를 마주치기가 어려웠는데 알고 보니 드라이버의 가족이 운영하는 캠프였다. 바위산 사이에 있는 캠프는 안락했다. 캠프를 마주 보고 있는 바위에 오르니 바위틈에 말 한 마리가 있었다. 바위 색과 비슷한 보호색으로 무장한 말을 한눈에 찾기도 어려웠는데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주인이 어디선가 보고 있을 거라고 했다. 이렇게 가까이에서도 잘 보이지 않는데 어디서 어떻게 보고 있다는 걸까. 바위에 올라 캠프 쪽을 보고 있으니 일행 중 하나가 나와 게르 앞에서 요가를 했다. 캠프의 반대쪽에서는 드라이버와 그의 아들들이 우리가 타고 온 푸르공을 수리하는 듯 보였고 커다란 스피커로 노래를 틀어 놓기도 했다. 그 풍경이 보기 좋았다. 무표정하던 드라이버는 며칠은 더 지나서야 우리가 편해졌는지 함께 앉아 맥주도 마시고 짧은 이야기들을 나눴다. 그는 영어도 한국어도 하지 않아서 몽골어를 할 수 없는 우리와 긴 이야기를 할 수 없었지만, 잠깐씩 웃고 떠들 수 있었다.

가이드가 술에 취해 보이지 않던 비 오던 밤에, 드라이버는 젖어버린 장작 때문에 난방을 할 수 없던 게르를 데워주기 위해 빗속을 몇 번이나 오가며 애써주었다. 그는 기름이 떨어져 바이크를 끌고 가는 소년들에게 푸르공의 기름을 나눠주었고 길을 찾지 못하는 다른 드라이버들을 늘 도와주었다. 늘 차가워보이는 표정이었으나 언제나 따뜻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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