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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영 Sep 21. 2019

고비를 향해서

고비에서 홉스골까지, 보름 동안 몽골 여행.




푸르공 투어 중 점심식사는 주로 현지 식당에서 해결했다. 일행중 그 누구도 그 식당들의 메뉴를 읽을 수도 없었고 사진이 있더라도 무엇인지 알아채지 못했다. 따라서 식당에 가면 대부분은 가이드가 알아서 주문을 했다. 첫 번째로 간 식당은 울란바타르에서 이어지는 포장도로 옆 초원에 홀로 서 있던 식당이다. 고기가 들어간 볶음 요리였는데, 그 음식에  있던 게 밀가루 반죽인지 감자인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우리는 챙겨간 고추장을 뿌려 먹으며 생각보다 괜찮다며 씩씩하게 행동했지만 그 누구도 절반 이상을 먹지는 못했다. 뒤늦게 식사에 합류한 가이드는 이 식당이 별로라며 한입 먹고 자리를 떴고, 드라이버만 묵묵히 식사를 마쳤다. 밥을 먹었으니 화장실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식당 앞에 있는 입구의 위아래가 뚫려있던 화장실에는 차마 들어갈 수 없었다. 만난 지 이틀쯤 된 일행과 함께 화장실이 될 만한 곳을 찾아 건물 뒤로 갔다. 서로 망을 봐주며 볼 일을 마치고 상쾌한 기분으로 첫날의 일을 마쳤다. 그 뒤로는 건물이 있으면 건물의 뒤쪽, 언덕 위쪽, 커다란 바위 뒤가 화장실이 되었다. 처음은 조금 어색하고 어려웠지만 그 뒤론 부끄럽지도, 어색하지도 않은 일이 되었다.



고비사막의 커다란 모래언덕, 홍고르 엘스까지는 울란바타르에서 2박 3일을 달려야 했다. 모래먼지가 날리는 비포장도로를, 사실 도로라고 할 수도 없는 초원을 가로지르는 일이 더 많았다. 요란하게 덜컹이는 차를 하루 종일 타는 일이 조금 고되기는 했지만 지루 할 틈은 없었다. 고비로 향하는 길에도 매일의 목적지가 있었다.






우리가 처음으로 들린 곳은 바가 가즈링 촐로. 라마승이 라마불교 탄압을 피해 숨어들었던 바위산이다. 바위산의 계곡에는 절터가 남아있었다. 몽골에 사회주의가 들어올 때, 이 넓은 몽골 땅에 숨은 승려들을 찾아 모두 박해했다고 한다. 절터를 지나 바위산 위에 오르면 솟아오른 암석 지형 너머로 푸른 초원이 보인다. 눈에 걸리는 것이 없이 펼쳐진 땅의 끝에 하늘이 맞닿아 있다. 등 뒤로 펼쳐진 파란 하늘 앞에서 차에 있느라 찌뿌둥해진 몸을 늘렸다.

첫날의 숙소로 가기 전 가이드는 바위 언덕의 중턱으로 우릴 안내했다. 바위 언덕의 앞에는 ‘SPRING FOR EYES’라고 쓰인 작은 표지판이 있었다. 바위에 난 작은 구멍에 국자가 꽂혀있었다. 구멍 안의 물을 떠 눈을 씻으면 눈이 좋아진다는 속설이 있는 아주아주 작은 샘이었다. 그 효력에 의심을 하며 눈을 적셔보니 건조한 바람에 시달린 눈이 상쾌해지는 느낌이었다. 시력이 그리도 좋다는 몽골인들에게 이런게 필요할까 싶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으나 건조하고 삭막한 곳이니 이런 작은 물도 소중했으리라 싶었다.






여행 둘째 날 아침, 조금 서둘러 캠프에서 나왔다. 원래는 첫날의 목적지였던 차강 소바르가에 가기 위해서였다. 일정에 없던 바가 가르징 촐로에 첫날 가고 둘째 날 좀 더 부지런히 다니자고 제안한 가이드의 제안을 수락했기 때문이다. 날이 흐려 전날 저녁에 왔어도 일몰을 보기엔 어려웠을 거라고 가이드는 말했다. 구불구불 아찔한 절벽 끝에 서니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절벽 아래의 땅은 붉은빛을 뗬다. 나는 절벽 아래의 땅이 마음에 들었다. 울퉁불퉁, 울긋불긋한 땅이 흐르는 듯, 강줄기처럼 퍼져나가는 모양이었다. 맑은 날의 색도 궁금해졌다. 너른 절벽 위에서 맘껏 시간을 보내고 우릴 태운 푸르공은 구불구불 절벽 아래로 내려갔다.





둘째날의 종착지는 욜린암이었다. 욜이라는 이름의 새가 사는 절벽의 입구라는 이름이라 했는데, 초원을 따라 들어가면 작은 물줄기가 흐르고, 물줄기를 따라 걷다 보면 작은 계곡에 다다르게 된다. 해가 저물무렵이어서였는지 계곡의 온도는 꽤 차가웠다. 초원에는 풀을 뜯는 말 무리나 작고 재빠른 쥐, 날개를 뻗고 활공하는 새를 쉽게 볼 수 있었다. 느즈막히 도착한 우리는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어슬렁어슬렁 걸었다. 해가 산의 뒤로 넘어갈때쯤 욜린암에서 나왔다. 캠프에 도착하니 이미 해는 다 져서 하늘이 까맸다. 헤드랜턴을 끼고 게르 앞에 앉아 가이드가 해 준 늦은 저녁을 먹었다. 가이드는 쌀밥과 소고기 스튜를 내어주었다. 소고기 스튜는 꼭 한식처럼 모두의 입에 잘 맞았다. 마트에서 사 온 맥주도 꺼내고 한국에서 들고 온 김도 꺼내 먹으니 아쉬울 게 없었다. 식사를 마치고 그 자리에 돗자리를 펴고 누워 별을 바라보았다. 시규어 로스의 호피폴라를 들으며 맥주를 마시고 누워있으니 낮에 덜컹거리는 푸르공에서 시달린 몸이 그제야 풀어지는 느낌이었다. 공기는 조금 쌀쌀해져 두꺼운 옷을 입고 별 사진을 찍으며 천천히 몽골의 둘째 날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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