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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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시 루앙프라방으로 돌아왔다. 숙소에서 꽝시폭포 물을 씻어내기 위해 샤워를 했고, 루앙프라방에서의 마지막 만찬을 위해 메콩강 지류 인근으로 나섰다. 국내 TV 프로그램을 통해 소개된 적 있는 레스토랑을 찾아갈까 고민하다가 무작정 낯선 곳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내가 고른 레스토랑은 크지 않았으나 단정했다. 그리고 실내보다 야외에 테이블이 많았다. 야외에 자리를 잡고 점원의 추천을 받아 현지 음식 몇 가지와 라오비어 다크를 주문해서 먹었다. 주문한 음식 중 한 가지는 민물 생선을 바나나 잎에 넣고 각종 현지 향신료와 함께 삶은 음식이었는데 큰 장어에 산초가루를 넣고 삶은 듯한 묘한 흙냄새 같은 게 있었다.
그리고 다시 야시장으로 갔다. 하늘이 조금씩 연보랏빛을 띄며 어두워지면 야시장의 조명이 하나 둘 켜진다. 그리고 하늘이 적갈색에 가까워지면 야시장은 활기를 띄기 시작한다. 야시장은 심미적으로 대단히 아름답다. 붉은빛 그라데이션의 하늘과 밝은 하얀색의 노점 조명, 하늘의 빛과 지상의 빛을 나누는 천막, 풍성한 열대 나무와 시장 주변에 있는 사원의 첨탑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을 만든다. 굳이 뭔가를 사지 않더라도 해 질 녘의 야시장은 관광객에게 충분한 볼거리를 선사한다.
나는 어제 야시장을 돌아다니면서 사고 싶은 물품 목록을 정해뒀다. 직접 물레를 이용해 만든 직조물, 그중에서도 목도리(스카프)와 가방을 사고 싶었다. 그래서 야시장의 수많은 매장들을 하나하나 둘러보면서 사고 싶은 디자인을 정하고 가격을 흥정했다(인건비가 비싼 나라에서는 구매하기 어려운 수공예품들이 라오스에선 그리 비싸지 않다). 그리고 상인이 처음 제시했던 가격의 30% 할인된 가격으로 실크 스카프와 직조 목도리, 가방을 샀다.
저녁 5시경부터 시작한 야시장은 10시 정도가 되면 순차적으로 노점을 정리한다. 정해진 시간 없이 손님의 양이나 당일의 매출 정도, 그리고 주변 상황에 따라 당일의 파장 시간이 결정된다. 그리고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상대적으로 접근성이 떨어지는 시장 입구에서 먼 지역부터 파도타기처럼 순차적으로 정리를 시작한다. 야시장이 모두 철수하는 모습을 구경하다가 호텔로 돌아왔다. 호텔에는 욕조가 있었고 욕조에서 메콩강을 볼 수 있었다. 늦은 저녁이라 딱히 강이 보이진 않았지만 강 방향을 보면서 씻었다. 루앙프라방의 마지막 하루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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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서 공항으로 가는 툭툭(오토바이를 개조한 운송수단)을 예약했다. 비엔티안에서 루앙프라방으로 올 땐 육로를 이용했지만 내려갈 땐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항공편을 예약해뒀기 때문이다. 아쉬운 마음에 부지런히 루앙프라방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우선 숙소 근처에 게스트하우스를 겸하는 식당이 이른 아침부터 열었기에 볶음밥을 시켜서 먹었는데 썩 맛있지 않아서 대부분 남겼다. 다른 아침을 먹어야겠다 싶어서 이리저리 헤매다 어느 길 모퉁이에 사방이 활짝 열린 낡은 식당을 발견했다. 현지인들이 제법 앉아서 먹고 있었다. 전 식당에서 아쉬웠던 것을 만회하기 위해 마찬가지로 볶음밥을 주문했고 맛있었다(간혹 밥에 벌레가 섞여있는 문제점은 있었다).
그리고 툭툭을 타고 공항으로 갔다. 툭툭은 오토바이를 임의로 개조하여 영업하는 현지 택시다. 원래 오토바이에는 매연 저감장치가 의무적으로 설치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 툭툭들은 승객을 태우기 위해 개조하는 과정에서 출력을 높이고 매연 저감장치 등의 설비는 제거했을 것이다. 게다가 배기구는 오토바이의 원래 위치에 달려 있어서 매연은 고스란히 오토바이를 연장해서 마련한 승객 좌석으로 온다. 여행자라면 한 번쯤 꼭 타볼만한 흥미로운 경험이지만 매연에 예민한 사람은 상당히 고통스러울 수 있다.
루앙프라방의 공항은 작다. 내국인은 직원을 제외하면 찾아보기 어렵다. 대부분의 라오스 인들은 한화로 약 8만 원에 달하는 국내선을 타기가 부담스러워서 육로를 이용한다고 한다. 약간을 기다리다가 비행기에 탔다. 날개와 더불어 양 쪽에 프로펠러가 달린 작은 비행기다. 생각해보니 해외에선 여행할 때 간혹 탄 적이 있었는데 국내에선 프로펠러가 달린 비행기를 타 본 적이 없다. 소형 비행기라 제법 흔들렸지만 무사히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에 도착했다.
공항 입구에는 많은 택시기사들이 승객을 태우려고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 당시 온도는 40도에 달했다. 그러나 여행자금은 거의 바닥난 상태였고, 택시기사들이 제시하는 요금은 부당하리만큼 비쌌다. 그래서 무작정 걸어 나갔다. 여행 짐을 둘러메고 공항입구까지 걷다 보니 땀이 비 오듯 흘렀다. 걷는 와중에 지나가던 택시기사들이 비교적 저렴한 가격을 몇 번이나 제시했지만 계속 걸었다. 그리고 지나가던 버스를 만났다. 루앙프라방엔 버스가 없어서 라오스에서 처음 보는 버스였다(비엔티안은 라오스의 수도답게 상당히 발전된 모습이다). 버스기사와 눈을 마주쳤는데 버스기사가 손을 흔들었다. 그래서 냅다 달려서 탔다. 과연 정류장이 있는지, 아니면 이렇게 눈빛으로 정차를 결정하는 건지 모르겠다.
버스는 30년 정도 됐음직한 모습이다. 어렴풋이 남아 있는 어릴 적 버스의 기억과 유사하다. 앞유리에는 라오스의 연예인으로 추정되는 두 사람의 사진이 붙어 있고, 버스기사와 옆좌석 승객의 수다로 소란스럽다. 에어컨은 없고, 다행히도 창문은 열 수 있었다. 버스기사에게 목적지인 여행자거리 지명을 몇 차례 반복해서 말해줬더니 이해했다는 듯 함박웃음을 지으며 목적지에 정차해줬다. 아무래도 일정 노선은 있지만 구체적인 정차 지점(정류장) 지정은 되어있지 않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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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를 식히고 피로를 풀 수 있을만한 적당한 곳을 찾다가 마사지를 받기로 했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라오스의 마사지는 인접한 국가인 태국의 마사지만큼 우수하진 않지만 저렴한 가격 탓에 꼭 한 번 가볼만하다고 한다. 얼마 남지 않은 여행인지라 신중하게 마사지샵을 골랐다. 대부분의 경우 밖에 영어 가격표를 게시하고 입구엔 마사지라는 영문과 함께 머리에 꽃을 꽂은 동양 여성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그러나 그중 한 곳은 입구에 발의 혈점(한의원에 붙어있는 것과 유사한)이 크게 게시되었기에 들어갔다. 여행자거리에 위치하고 있으나 상대적으로 관광객의 발걸음이 뜸한 곳인지 직원이 영어를 못했다. 그래서 마사지에 대한 정보수집은 포기하고 가장 평범한 코스(마사지 60분, 6만킵)를 선택했다. 땀이 많이 났던 탓에 씻고 싶었으나 샤워 설비는 구비되어 있지 않았다. 반바지로 갈아입었더니 나와 비슷한 또래의 남자가 들어와서 마사지를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마사지할 때 약간의 오일과 함께 마사지를 하기 마련인데 여기는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맨손으로 했다. 내 땀과 힘찬 마사지가 더해져서 '때'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다가 잠들었고 마사지가 끝나서야 깨어났다.
마사지가 끝나고 비엔티안을 대표하는 사원인 '탓 루앙'으로 향했다. 내가 위치한 여행자의 거리와 사원까지는 제법 멀어서 택시나 툭툭을 이용해야 했고(버스노선은 알 방법도 없고 비정기적으로 다니는 버스를 기다릴 시간도 없었다) 길가에 정차해있는 툭툭 기사와 오랜 흥정 끝에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사원까지 갈 수 있었다.
'탓 루앙'은 라오스에서 가장 신성시하는 공간이라고 한다. 높은 담과 작은 창문을 가진 사원이 탑을 둘러싸고 있으며 사원의 입구에는 탑을 건축한 왕의 동상이 있다. 탑은 전체가 황금색이며 부처의 유발과 가슴뼈가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한국의 불교 건축과 라오스의 불교 건축을 비교하면서 보는 재미가 있었고 각 나라의 문화나 건축 양식에 따라 같은 종교의 사원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느꼈다.
사원을 모두 둘러본 후에 다시 툭툭을 타고 비엔티안 야시장 근처로 갔다. 저녁을 먹으려고 인근 식당들을 둘러보니 식당은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었다.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식당들은 문이 닫혀 있고 에어컨이 가동되고 있다. 그리고 현지인을 상대하는 식당들은 완전히 열려있어서 외부와의 경계가 모호하며 간간히 선풍기가 있을 뿐이다. 나는 시스터즈(three sisters)라는 로컬 식당으로 들어갔다. 제법 많은 사람들이 있었으나 외국인은 한 명도 없고 모두 현지인이었으며, 제법 유명한 식당인지 각종 기사가 스크랩되어 있었다. 그중 인상 깊었던 것은 미국의 어느 주간지에서 선정한 아시아 TOP10 식당에 포함된 것이었다. 스프링롤과 볶음밥, 쌀국수 등 여러 가지를 시켜서 맥주와 먹었는데 맛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야시장 인근의 메콩강변을 걸었다. 루앙프라방의 메콩강변은 관광객이 대부분이고 차분한 분위기였다면 비엔티안의 메콩강변은 현지인이 대부분이고 번잡하다. 강과 면한 건물들은 제법 높은 빌딩이 대부분이다. 필리핀이나 태국 등 동남아 국가의 주요 도시와 유사한 모습이다. 역시 루앙프라방이 좋다고 생각했다.
비행시간이 다가와서 툭툭을 타고 왓타이 공항으로 갔다. 공항은 한국인이 완전히 점유하고 있었다. 여행 중에는 한국인을 별로 보지 못했었다. 어디에서 이렇게 쏟아져 온 것인가를 보니, 올 때와 마찬가지로 여행사의 패키지 상품으로 온 사람들이다. 나와 함께 비행기를 타게 될 수백여 명의 한국인들은 공항에서 구호를 외치기도 하고 면세점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기도 했다. 꽝시폭포와 라오스 길거리에서 가끔 마주쳤던 한국인들은 결코 시끄럽거나 무례하지 않았는데, 왜 다수가 모이면 달라지는지 의아했다. 비행기는 약 40분 정도 연기되어, 나는 저녁 11시에 비행기에 탑승했다. 그리고 증발하기엔 너무나 아까운 라오스 여행의 추억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붙잡고자 조그만 노트에 이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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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라오스 여행은 무척이나 덥고 습했다. 그리고 라오스는 무척이나 느긋하고 평화로웠다. 라오스는 느리고 고요한 삶의 방식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이따금 스스로를 증명하는 경쟁에 지칠 때 라오스 여행을 떠올리게 될 거 같다. 웅장하거나 화려하지 않고 고즈넉한 자연환경과 소박하지만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 아름다운 자연과 자연에 순응하는 사람들이 만드는 도시, 라오스엔 평범한 사람들이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