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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밤 Oct 18. 2022

그녀가 문득, 새벽을 울리는 사울의 전화를 받는다

<베터 콜 사울>1기 1~3화 후기

<베터 콜 사울> 1기의 1,2,3화만 본 후기이며, <브레이킹 배드>등 다른 드라마, 주인공에 대한 이해가 없다. 그다지 취향은 아니지만 3화까지 봤다. 마음만 먹으면 주인공을 저승으로 보내고 끝장 낼 수 있는 전개에 독자가 믿을 것은 사울과 마찬가지로, 킴 밖에 없다. 




1. 아무나 가질 수 없는 종류의 재능, 사울


사울은 독실하다. 자신이 똑똑하다는 것을 지독하게 믿는다. 그 믿음이 아무리 자기를 배신해도 말이다. 그는 세상을 어떻게 요리 해볼 수 있다고 '믿는'사람이다. 자신을 과대하게 생각하며, 그 끝을 자신도 모른다. 그는 '나는 영웅이 아니야' 읊조리곤 하는데, 그 말은 사실 자신이 영웅이라고 믿는 사람의 것이다(평범한 사람은 영웅이라는 말도 입에 올리지 않는다) 


이 어긋난 현실인식이나 야망은 아무나 가질 수 없는 종류의 것으로, 스스로를 괴롭히거나 더 낫게 만드는 일종의 재능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보통의 경우 이것이 삶을 힘들게 하기 때문에 대부분 사람들은 대개- 나이가 들면서 이런 재능을 버린다. 세상에 맞추게 된다. 지고, 져버리고, 온전하게 그냥 남들 사는 것처럼 살게 된다. 


사울은 변호사인데 사기를 친다. 얄팍한 수는 우습지만 그 정도 성실히 조사했으면 성공하게 두어도 괜찮을 것 같다. 좀 있는 사람의 주머니를 살짝 터는 것뿐이니까. 그러나 이야기는 가만두지 않는다. 그의 예측은 너무 크게 틀리고 그가 생각할 수 없는 어둠을 끌어오고 그가 상상할 수 없는 종류의 인간 군상을 불러온다. 도저히 이겨낼 수 없는 전개. 제발 꿈이었으면 싶은 현실에 자주 죽을 뻔한다. 그러니까, 그가 쓰는 '귀여운 수준'의 수로는 대적하기에 이 세상은 만만치가 않다. 나중에는 위험에 처하는 수를 쓰면서도 '제발 위험하게는 하지 마세요'을 비는 그. 어쨌든 주인공이고 변호사라는 직업상의 이점 때문에 벌써 죽을 기회가 너무 많았지만 아직 죽지는 않았다.




2. 웅크려 있는 천재가 현실도 자신도 인식하지 않을 때, 척


그의 형 척도 변호사이다. 최고의 변호사-였다. 드디어 제대로 된 인물이 나오나 싶었지만 그의 집에는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 냉장고 대신 스티로폼 박스에 얼음을 털어 넣는다. '접지'가 그 집의 규칙이다. 그는 전자파로부터 자신을 지켜야 한다는 일종의 정신병을 앓고 있다. 그것은 그를 칩거하게 만든 어떤 실패와 연관이 있을 것이라 짐작되는데, 그는 자신의 상처나 실패로 인정하지 않는다. 현실도 자신도 인식하기를 거부한다. 그가 갖는 희망이라고는 언젠가 자신이 나을 것이고, 그때가 되면 밖으로 나갈 수 있으며, 그때는 내가 다 돌이켜 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전자파로부터 자신을 지켜줄 은박지를 뒤집어쓰고.


사울과의 싸움은 대부분 그런 것이다. 이렇게 유능한 형이 실패했다고 인정하거나 나가서 싸웠으면 좋겠는데 척은 둘 다 하지 않는다. 칩거하면서 아직도 사기나 치고 변호사가 가져야 할 마땅한 선을 지겨워하는 동생에게 이성적인 말을 건네는 것은 점점 무력해진다. 척은 온전해 보이지만 그의 인생도 사실상 틀려버린 것처럼 느껴진다.


사울처럼 바깥에서 이해받을 수 없는 미친 인물이거나, 아니면 척처럼 안에서부터 미쳐버린 인물이거나. 그 둘은 혼자서는 살 수 없으며, 서로를 버릴 수 없으며, 서로의 위안이나 다행이자 저주이면서도 서로를 보완한다. 




3. 준비가 끝난 어떤 삶이 자신이 살아볼 수 없는 다른 생의 가능성을 알아볼 때, 킴


킴의 등장은 굉장히 감각적이지만, 한편으로 구려-보이기도 한다. 이 이중의 감정이 왜 드는 것일까. 그녀는 건물 1층에서 미팅에 실패한 사울을 기다린다. 그들은 약속처럼 담배를 나눠 피고 별 말을 나누지 않는다. 그녀는 사울이 발로 차 버린 자신의 회사 휴지통을 조용히 정리하고 들어간다. 1화에서 보여주는 이 씬은 아마도 이 드라마에서 킴의 할 일을 요약하는 것이리라. 사울을 위로하고 사고를 수습한다. 여기서 킴의 감정은 무엇일까?


의문1. 왜 킴은 욕망하지 않는가

킴에게서 이해할 수 없는 지점은 그녀가 마땅히 가져야 할 것으로 보이는 어떤 종류의 욕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녀가 주인공이 아니라서 그런 걸까? 이것은 킴이 정확하게 자신을 아는 만큼만의 욕망을 가졌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넘치지 않고, 마치 없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되지도 않는 야망을 감추지 않는 사울의 옆에서 있다면 말이다.


킴은 자신이 누구인지 잘 아는 인물이다. 능력이 있지만 한계를 정확히 인지한다. 어쩌면 사회에서 가장 요구되는 미덕을 갖췄다. 자신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구분하는 것. 그녀의 인생은 1화만 봐도 예측할 수 있을 듯하다. 적당한 곳까지 올라가서 안정적이게 이인자를 오래 하거나, 자신이 유능하게 꾸릴 수 있을 만큼의 규모의 회사를 차려 오너가 될 것이다. 그 자신은 아마 더 하리라.


의문2. 킴은 왜 사울의 전화를 받는가

사울은 그런 킴에게 늘 전화를 한다. 도움을 구하거나 말도 안 되는 사고의 전조를 전한다. 이때마다 킴의 반응은 놀랍다. 그녀는 절대 화를 내지 않는다. 그저 듣는다. 듣고, 또 듣고. 말도 많이 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울은 킴에게 여전히 전화할 수 있다. 이 부분이 감명 깊었다. 화는 킴의 것으로, 킴의 화는 사울을 바꿀 수 없다. 화는 사울을 바꾸려는 어떤 태도일 것이다. 사울이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킴은 잘 안다.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듣는다. 사울을, 자신과 너무나 다른 삶을 대하는 그녀의 존중의 표현이겠다.   


완성된 인생은 알 수 없는 위험천만한 삶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사울은 미친 것 같고 허황되어 보이지만, 자신의 한계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어떤 활기와 가능성을 갖고 있다. 그것을 킴이 알아본 이유는, 자신의 완성된 인생이 절대 가질 수 없는 무엇임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한 번에 하나의 인생을 사는 이들, 잘 이루기 위해 평생을 노력하는 것처럼 킴 역시 온 힘을 다해 일과를 하고 잠에 든다. 예측이 끝난 삶. 이미 본 것과 다름없는 전망으로 잠이 드는 그녀는 문득, 새벽을 울리는 사울의 전화를 받는다.


그 전화벨은 그녀에게 다른 삶의 감각을 깨우는 알림 같다. 어디서 끊어져 있을지 모르는 레일을 향해 출발하는 망가진 롤러코스터 같은 사울의 인생으로, 가자는 안내처럼 들린다. 그녀는 사울의 엉망진창을 이야기하지는 않으며 제발 그것을 그만 하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자신의 완성된 삶으로 그를 이끌지 않는다. 자신이 살아보지 못한 삶에 대한 깊은 존중이며, 자신의 인생을 잘 갖춰왔기 때문에 내밀 수 있는 태도이며, 그 때문에 마침내 그녀가 살아보지 못했던 삶으로 고개를 들게 되는, 어쩔 수 없는 이끌림, 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녀는 기꺼이 한쪽 레일이 되기로 한다. 누가 아는가. 저 롤러코스터가 그녀가 가보지 못한 곳으로 데려다 줄지. 낙하하는 순간의 스릴로 다시 끝 모르게 올라간 풍경을 보게 될지. 이 안전하게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는 도저히 보여줄 수 없는, 감각을 다시금 느끼게 될지. 그녀의 참여는 사울과 독자에게 이 롤러코스터가 추락해도 이들이 다치지 않을 것이라는 유일한 안심을 준다. 이미 본 것과 다름없는 전망으로서, 그녀의 삶이, 저 아래에서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런 킴의 선택에는 마땅히 다른 감정도 포함될 것이다.  



그는 <베터 콜 사울>을 좋아한다고 여러 번 말했다

2시간을 보아야 2시간이 끝나는 영상매체를 나는 나이가 들수록 잘 안 보게 되어, 하물며 이렇게 긴 시리즈는 말할 것도 없어진 후였다. 드라마라면 10화 정도가 알맞고, 때로는 그것도 길어서 중간에 그만 보기도 했다. 그게 아쉽지가 않았다. 말하자면, 여유가 없었고 거기서 무엇을 해석하기를, 끌어내는 것을 그만두었다고 해도 좋다. 


<베터 콜 사울>도 마찬가지였다. 1화를 보다가 그만두고 주인공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을 읽었다. 킴, 킴은 완벽한 조력자였다. 나는 킴이 완벽한-조력자라는 설명 때문에 이 드라마를 보지 않고 불신했는데, 그래서 왜 그가 이 드라마와 캐릭터를 좋아하는지 잘 알수 없었다. 드라마를 볼 때 나만이 해석할 수 있는 텍스트가 있을 것이라는 능력을 불신한 대가였다. 킴에 대한 설명은 맞는 말이었지만, 표면적인 이야기였다.


그는 킴 같은 이가 자신의 인생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다시 말하면 아마도, 자신이 사울처럼 느껴진다는 이야기였을 것이다. 그는 사울처럼 무모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멋대로 살아보고 싶은 충동을 나보다는 조금 더 느끼는 사람이었다. 나는 계획 없는 삶은 이미 위험에 처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나는 유능하게 삶을 이끌어가는 사람은 아니지만 적어도 밤늦게 걸려온 전화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화를 냈겠지만, 그가 그런 사람임을 받아들이기로 했다면 잠자코 들어주는 사람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의 레일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지만 나는 그가 어떤 롤러코스터를 타고 싶어 하는지는 자주 궁금해했다. 그가 마침내 타고야 말 것임을, 타게 되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3화까지 밖에 보지 않았지만 실제로 킴은 사울의 레일이 되어주었을 것이다. 총과 폭력과 살인의 위협이 있는 사울의 삶에서 든든한 지지대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총과 폭력과 살인의 위협이 없는 삶에서는, 레일이 되어주겠다는 약속으로 충분할 수도 있다. 그러니까 그가 바랐던 것은 어쩌면 저 높은 데까지 올라가도 저 아래 누군가가 있어주면 좋겠다는, 자신이 어딘가로 가봐도 돌아올 곳이 있다는 있는 약속을, 그런 믿음을 가져보고 싶다는 이야기였는지 모르겠다.


어떨까. 튼튼한 레일은 되지 못하더라도 저 아래 짱짱한 트램펄린을 깔고,그 위를 팡팡 뛰며, 그래볼 수도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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