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드 예측하기
녹차음료의 추억 - 트렌드는 타이밍이다
해가 바뀌면서 늘 그렇듯이 트렌드 관련 서적과 뉴스들이 넘처나고 있다. 아울러 남성해방, 젊어지기, 작은사치, 공포의 기류 등의 트렌드 코드들이 회자되면서 관련 산업이나 브랜드가 성장하고 있다. 트렌드는 기업입장에서 잘 활용해야 하지만 때로는 독이 되기도 하며, 대개는 너무 빨리 받아들여 상품화 하였다가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제일제당에서는 1995년도에 차음료 출시를 염두에 두고 시장성 분석을 하였다. 당시의 음료시장은 콜라, 사이다등 탄산음료와 쥬스음료가 대세를 이루고 있었고, 일본에서는 수조원대의 차음료 시장이 지속 성장하고 있었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차음료 시장이 형성되어 있지 않았다. 당시 녹차음료 등 차음료 신규사업에 참여하였던 필자를 비롯한 제일제당 마케팅 조직에서는 음료시장 실태조사와 컨셉 및 시제품의 시장성 평가 끝에 많은 비용과 시간이 투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차음료 상품 출시는 시기상조라 판단하고 과감하게 상품화를 포기 하였다.
세월은 흘러 2000년대 중반부터 탄산음료의 건강이슈가 부각되고, 건강트랜드 및 다이어트 열풍이 불면서 이에 적합한 음료로 인식되었던 웅진식품 하늘보리(2000년 출시), 남양유업 17차(2004년 출시), 광동제약 옥수수수염차(2006년 출시) 등이 히트상품 대열에 합류하며 2000년 200억원 안팎이었던 차음료 시장은 2006년 2,500억원선으로 5년사이 12배 넘게 늘어났다. 녹차음료의 매출도 급격하게 늘어나는 등 무첨가, 저칼로리 건강음료에 대한 소비자들의 선호가 뚜렷해졌다. 일본 시장과 대략 10년여의 트랜드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트렌드를 기업에서 활용하기 위해서는 특히 2가지 측면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 우리나라와 미국 등 다른나라 간에 시차가 존재하듯 각국의 트랜드에도 시차가 존재함으로 이를 반영하여 트랜드를 해석하고 마케팅에 적용해야 한다.
둘째, 패스트푸드의 트랜드가 뚜렷해지는 이면에는 슬로우 푸드의 흐름이 있는것처럼 트랜드에는 반드시 역트랜드가 존재함으로 이를 동시에 고려하여야 한다.
5년후의 트렌드를 예측해 보자
트렌드란 5~10년 정도 지속되는 사회현상을 뜻한다. 즉, 5년 미만이면 유행이라고 표현하며, 5~10년이면 트랜드(일반적으로 얘기하는), 20년 이상 지속되면 메가 트랜드라고 부른다. 화약, 치솔모, 스타킹, 콩고기 등 변화를 거듭하며 성장하고 있는 듀폰(DuPont)사의 채드 홀리데이 회장이 언급한 성공비결은 '오래 붙들면 썩고, 빨리 점프하면 추락한다'는 것이었다. 미 대통령이 입는 셔츠로 유명한 브룩스 브라더스의 창립자도 '너무 빠르지도 너무 늦지도 않는 것이 우리의 성공비결' 이라고 말한 바 있다. 또한 약22조원의 자산가로 알려진 중국 최대 음료업체이자 세계 5대 음료업체인 쭝칭허우 와하하(娃哈哈)그룹 회장은 ‘領先半步’ 즉, 경쟁자보다 반걸음만 앞서나간 것이 성공비결이라고 하였다.
앞서의 사례처럼 트랜드는 타이밍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업입장에서는 관심있는 산업분야나 카테고리와 관련이 있는 트랜드를 잘 파악해야 하지만, 동시에 이들 트랜드가 단기적으로 마케팅전략에 반영해도 되는 트랜드 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서두에서 필자가 현재 우리나라의 트랜드인것처럼 언급한 트랜드 코드(남성해방, 젊어지기, 작은사치, 공포의 기류) 의 출처는 모두 2000년에 출간된 ‘클릭 이브속으로(원제: EVEolution, 페이스 팝콘 저)’라는 책에서 발췌한 것이다. 미국의 16년전 트랜드가 현재 우리나라의 트랜드와 유사한 것이다. 우리보다 소득수준이나 소비성향 등이 다른 선진국 또는 개발도상국들의 트랜드를 활용할 때는 타이밍 갭 즉, 트랜드가 선행하는지 후행하는지를 잘 파악해야 한다. 예를 들어 미국, 일본이 우리보다 선행하는 트랜드 분야는 식품, 부동산, 생활용품, 스포츠용품 등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이들 카테고리 관련 회사들은 미국이나 일본에서 현재 트랜디한 제품들을 국내에 도입할 경우에는 너무 빠른 것이 아닌지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일본 트랜드의 경우 우리나라 보다 약 10~15년 정도 트랜드가 선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잘 활용한다면 우리나라 5년후 10년후의 트랜드도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할 것이다.
왕년의 테크닉스 턴테이블의 귀환 - 트렌드의 또다른 얼굴 역트렌드
파이낸셜타임스(ft.com)의 작년 12월 보도에 따르면 파나소닉은 팬들의 요청에 힘입어 2016년 중 왕년의 대표 상품이었던 턴테이블을 재생산할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 테크닉스사는 70년대 초반 '다이렉트 방식'의 턴테이블을 개발하고 이를 최초로 상품화한 회사다. 다이렉트 방식의 턴테이블은 모터의 축에 직접 턴테이블 축을 연결한 방식으로, 벨트 드라이브 방식이 사용되던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것이었다.)
이후, 테크닉스사는 알루미늄 다이케스팅 코팅, 상판 분리형 몸체 등의 신기술을 턴테이블에 적용하여 80년대 중반까지 중저가형 턴테이블 시장을 휩쓴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LP음반은 음원이 카세트 테잎에 저장되고, 이어서 더 간편하고 음질이 좋은 CD로, 세계 최초로 우리나라에서 개발한 mp3에 이르면서 점차 소비자들의 기억속에서 사라졌다. 특히 최근에는 고음질 음원이 인기를 더하고 있다. 고음질 음원이란 24bit 192kHz로 저장된 음원으로 흔히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음원과 같은 수준의 음질을 말한다. 물론 그만큼 화일 용량이 늘어난다. MP3가 한 곡에 5MB 정도였다면, 24비트 음원은 한 곡에 100~200MB에 이른다. MP3보다 수십 배 큰 그릇에 음원을 담았다고 보면 된다.
디지털의 범람에도 불구하고 상반되는 복고열풍 속에 아날로그를 상징하는 LP음반의 생산이 최근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미국 음반 판매량 집계기관인 닐슨 사운드 스캔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에서 LP가 920만장 팔렸다고 한다. 전체 규모면에서 디지털 음원 다운로드 등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 압축된 디지털 음향에 싫증난 음악팬들의 아날로그의 감성, 고품질 음향에 대한 소비 욕구가 증가하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과거에 히트했던 들국화, 김광석 등의 LP음반은 물론 이글스, ABBA 등의 LP음반도 교보문고 등의 온라인 또는 오프라인 LP코너에서 새판을 쉽게 구매할 수 있다. 또한 국내 아이돌 그룹도 신곡을 발표할 때 한정 LP음반을 동시에 발매하며, 곧바로 품절이 되곤 한다. 가수 조용필이 19집 앨범 ‘Hello’를 발표하면서 LP를 1만장 발매하기도 하였다. 가격대도 약 4만원대의 고가이지만 꾸준한 관심을 받고 있다.
(LP로만 1만장이 생산된 조용필의 19번째 앨범. 2012년 아이돌 그룹으로는 최초로 AM이 LP음반을 출시한 이래 최근 많은 가수들이 LP음반을 출시하고 있다.)
한때 서울음반 등 메이져 LP생산 음반사들이 지금은 모두 철수했지만 다시 부는 LP음반 바람에 국내 유일의 LP공장 (LP팩토리, 대표 이길용)이 설립되기도 하였다. 조용필의 19집도 이곳에서 생산하였다고 한다.
최근에도 생산되는 독일에서 만든 이 턴테이블의 톤암은 최첨단 자기부상 방식을 사용하여 그 어떤 톤암보다도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레코드판을 트랙킹한다. 한가로운 주말 오후, 커피를 마시며 LP를 턴테이블에 올리면 잡음소리 조차도 음악의 일부분으로 들리며 시름도 한순간에 사라진다
트렌드 속에는 항상 역트렌드가 존재하며 트랜드와 역트랜드가 더해져 종합트렌드를 형성한다. 이처럼 트렌디한 고객의 니즈를 충족하는 마케팅도 필요하지만 이처럼 역트렌드도 우리에게는 좋은 마케팅 기회가 될 수 있으니 항상 동시에 고려할 필요가 있다. 특히 중소기업에게는 대기업이 간과하거나 시장이 작아서 고려하지 않는 역트렌드가 더 좋은 사업기회를 가져다 줄 수 있다.
자! 5년뒤 우리나라 트렌드가 궁금하다면 묵혀두었던 일본, 미국, 영국 등의 10~15년전 트렌드 자료를 다시 꺼내보자.
김기석(경영학 박사)은CJ제일제당 리서치센터장을 역임하면서 신상품개발(NPD: New Product Development) 프로세스 개발 및 운영을 총괄했다. CASS맥주, 햇반, 쁘띠첼, 뚜레쥬르, 투썸플레이스, CGV, 올리브영, 엔프라니, LG화학 에너지 창호 등 50여개 신규사업 프로젝트에 참여한 브랜드 전략 전문가이며, 저서로는‘신상품 마케팅전략(2판)’이 있다. kskim17@gmail.com
<본글은 중소기업진흥공단에서 발행하는 경영잡지 '기업나라'에 1년간 기고된 컬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