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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는이야기 Oct 14. 2016

입만 열면 기승전 '결혼',
거절합니다

[결혼 없이도 괜찮아 ①] 안 하거나 미루거나... '결혼 없는 삶'

지난해 인구 1000명당 혼인 건수는 5.9건. 1970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 결혼은 더 이상 '의무'가 아닙니다. 비혼을 택하는 사회·개인적 이유는 무엇일까요. '결혼 없는 삶'은 어떤 모습일까요. 오마이뉴스는 '결혼 없이도 괜찮아' 기획을 통해 삶의 다양한 가능성을 엿보려합니다. - 편집자 말

그 자리에 모인 세 사람의 생각은 같았다. '굳이 결혼할 필요가 있나, 결혼을 하게 된다고 해도 최대한 미루자.'

얼마 전, 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들과 만났다. 저녁 식사 자리의 화두는 '결혼'. 평균 초혼 연령이 남녀 모두 30대를 넘어선 시대, 이제 막 20대 중반에 접어든 사람들치곤 좀 까마득한 이야기를 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연애에 대해 논하다 보면 자연스레 그쪽으로 대화가 흐른다. 먼저 입을 연 것은 한 친구였다.


"친구 중에 결혼 문제 때문에 엄마랑 싸웠다는 애가 있더라. 난 당연히 얘가 결혼하고 싶지 않다고 하고, 엄마가 '그래도 결혼은 해야 한다'고 해서 싸운 줄 알았는데 반대였어. 얘는 지금 만나는 사람이랑 일찍 결혼하고 싶대."


친구의 말이 끝나자마자 우린 한목소리로 "대체 왜?"를 외쳤다. 적어도 그 자리에 모인 세 사람의 생각은 같았다. 굳이 결혼할 필요가 있나, 결혼을 하게 된다고 해도 최대한 미루자. 한 친구는 "난 혼자 살 거야"라고 명확히 선언했다. 이렇게 말하면 으레 던지는 농담이 하나 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제일 일찍 결혼하더라." 


물론 그럴 가능성도 존재한다. 한 치 앞도 모르는 인생, 우리의 삶이 어떻게 흘러갈지 그 누구도 모른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해보면, 이렇듯 삶이 불확실한데 왜 우리는 '결혼'을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는 걸까. 


기억을 되짚어보면, 성인이 된 이후 명절날 친척들을 만날 때마다 "이제 시집가도 되겠다"는 말을 듣곤 했다. 나이가 더 많은 이들은 "왜 결혼할 사람을 데려오지 않느냐"는 채근을 들었다. 그야말로 기승전 '결혼'.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모두들 '언젠간 결혼할 사람'이 됐다. 


물음표가 짙어지는 결혼, 꼭 해야 하나 


사실, 이런 경험은 그리 특별하지 않다. 비혼보다 더 흔히 쓰이는 미혼이라는 단어가 이를 증명한다. 결혼을 '아직' 하지 않은 상태. 지금은 아니지만, 곧 결혼할 가능성을 품고 있다는 의미를 지닌 이 단어는 결혼이 인생의 당연한 수순이라는 고정관념을 강화한다. 그래서 여성주의 문화운동 단체 언니네트워크는 '비혼'이라는 개념을 보편화하기 위해 '비혼 선언', '비혼여성축제' 등을 기획하고 5월 21일을 비혼인의 날로 지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비혼에 대한 오해와 무지는 여전하다. 


비혼을 독신주의로 이해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비혼은 말 그대로 결혼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비혼을 택했다고 하여 모든 인간관계가 단절되는 것은 아니다. 혼자 사는 이가 있는가 하면 애인과 동거하지만 결혼이라는 제도에 편입되려 하지 않는 이들이 있고, 비혼 공동체를 꾸려 함께 생활하는 이들도 있다. 이렇듯 비혼이라는 하나의 삶의 방식 안에는 여러 모습이 존재한다. 결혼이 '당연'한 것이라며 이토록 다양한 삶의 가능성을 차단해버리는 것은, 너무 섣부르지 않은가. 


그날 우린 식사 자리에서 비혼의 가능성을 열어둘 수밖에 없는, 꽤 합당하고 타당한 이유를 나눴다. 우리의 고민이 결코 치기 어린 불만에서 나온 건 아니라는 뜻이다. 경제적인 문제는 당연히 포함된다. 비싼 등록금을 안고 학업을 마친 뒤 겨우 직장을 구한 상태에서 결혼식을 치르고 신혼집을 구하려면 빚에 빚을 더해야 한다. "우리 땐 단칸방에서 살림을 시작했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옛날 이야기'다. 단칸방에서 시작해 누군가와 함께 빚을 떠안아야 하는 삶은 암담하다. 


실제 시장조사전문기업인 마크로밀 엠브레인의 조사(전국 만19세~59세 '미혼' 남녀 1000명 대상)에 따르면,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미혼 남녀의 증가'(71.2)가 비혼족 증가의 가장 큰 원인으로 뽑혔다. 자녀 양육비에 대한 부담감(63.1%), 주거비용에 대한 부담감(60.8%), 결혼 비용에 대한 부담감(59.6%)이 그 뒤를 이었다.  


돈만 걸리는 건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결혼은 단순히 개인과 개인의 결합이 아니다. 가정과 가정의 결합이다. 이 구조 안에서 감당하기 힘든 인간관계가 생겨나기도 한다. 포털사이트나 온라인 카페에 올라오는 상대 집안과의 갈등 경험은 '마르지 않는 샘'이다. 


또 여성의 경우, 결혼 이후 '나의 삶'을 살기 어려운 사회 구조도 문제다. 아직도 몇몇 기업에선 면접 때 '결혼 계획이 있느냐'고 묻는다. 아이를 낳을 경우, 육아는 온전히 아내의 몫이 되는 경우도 많다. 처참한 성평등 지수(145개국 중 115위, 세계 성 격차 보고서 2015, 세계경제포럼)가 이를 뒷받침한다. 게다가 '한 사람과 평생 함께하는 이 제도가 과연 효율적인가'라는 근본적인 의문까지 더해지면, 결혼에 대한 물음표는 더 짙어진다. 


제도 밖으로 뛰쳐나와도 안전망은 필요하다 


그야말로 결혼이 '의무'가 아닌 '선택'이 된 세대. 결혼이라는 법적 테두리에서 벗어나도 혼자 혹은 누군가와 함께 잘 살 수 있다는 가능성, 존재할까.


물론 모두가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고 일반화할 수는 없다. 앞선 친구 지인의 사례처럼, 우리가 비혼을 치열하게 고민하듯 결혼을 꿈꾸는 이들도 존재한다. 그렇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결혼을 생각하지 않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2015년) 인구 1000명당 혼인 건수(조혼인율)는 5.9건으로 1970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1인가구 비율도 2010년 23.9%(414만 가구)로 10년 전에 비해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그야말로 결혼이 '의무'가 아닌 '선택'이 된 세대다. 


하지만 이성애 부부와 자녀로 이루어진 가정을 '정상'이라고 인정하는 사회에서 비혼으로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다. 문화도 문제지만, 제도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결혼을 통해 이룬 법적 관계가 없는 이들은 세금 혜택, 대출, 가족복지정책, 보험 제도 등에서 소외된다. 제도가 돌보지 않는 이들은 고립된다. 


"가족 없는 노인 중엔 혹시 고독사하면 빨리 발견되려고 일부러 신문 구독하는 경우도 있다더라."


그날 우리의 대화는 "나중에 늙어서 가족 없이 살다 죽으면 아무도 거둬주지 않을 테니 일주일에 한 번씩 서로 전화해서 안부를 확인하자"는 농담 아닌 농담으로 끝났다. 비혼에 대해 신나게 떠들면서도 한편으로 찜찜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제도 밖의 삶에 대한 불안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울타리를 뛰쳐나왔다고 하더라도,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느슨한 안전망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기존 4인 가족 중심의 각종 복지 제도가 1인 가구의 증가라는 변화에 걸맞게 수정되어야 한다. 단지 혼자 산다고 해서 주거, 금융, 복지 제도 등에서 후순위로 밀려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또 영국의 시민동반자법(Civil Partnerships Act), 프랑스의 시민연대계약(Pacte civile de solidarité: PACS) 등과 같이 결혼으로 맺어진 관계가 아니더라도 파트너십을 인정하고 권리를 보장하는 법이 필요하다.


한국에서도 2014년 '생활동반자 관계에 관한 법률안' 도입이 논의된 적 있다. 물론 법안 발의에서 그쳤다. 서울시와 같은 지자체에서 1인가구의 삶을 지원하는 정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이제 시작하는 단계다. 결혼이라는 법적 테두리에서 벗어나도 혼자 혹은 누군가와 함께 잘 살 수 있다는 가능성, 존재할까. 적어도 아직은 갈 길이 멀어보인다.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편집부 김예지 기자가 작성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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