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deo art is fake; the emotion it inspires in the viewer is real."
영상은 그 자체로 가짜다. 화면 속의 모든 것은 만들어진 것일 뿐, 진짜는 그 영상을 통해 끓어오르는 감정이다.
예술이 우리에게 전달하는 진짜는 작품이 아니라, 그 작품을 보고 느끼는 우리 안의 움직임이란 생각이 든다. 내가 느끼는 감정까지가 예술의 완성인 것이다.
최근 내가 가장 크게 동요했던, 관찰자인 나까지도 예술의 일부가 되었던 작품을 소개한다.
우리는 생산성과 소비가 일상처럼 얽힌 이 시대에 살고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가장 소외된 존재는 ‘수면’일지도 모른다.
잠, 휴식, 쉼—이 모든 것이 비생산적이라 여겨지는 세상에서, 수면은 마치 범죄처럼 다뤄지기까지 한다.
중학교때부터 수업시간에 졸면 선생님께 혼이 나고,
12시까지 부모님의 감시하에 공부를 했다.
검사일을 시작하고 나서부터는 불면에 시달린 적도 많다.
위작품의 공통점이 무엇일까?
바로 '흑인의 잠든 모습'이다.
작가는 아프리카 디아스포라, 흑인 노예들의 역사에서 흘러온, 백인 중심의 자본주의와 인종주의에 대한 저항을 표현하고자 했다.
언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역시 현대미술이란...
잘 생각해보자. 왜 흑인을 대상화했을까?
우리가 사는 세상은, 누군가의 희생으로 돌아간다. 한쪽에서는 고단히 일하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그 노동을 착취하며, 그들 덕분에 우리는 편안함을 누린다. 개발도상국의 노동력은 저마다의 가격에 팔리고 불매운동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착취의 상징성을 가지는 것이 흑인이다. 백인들은 흑인의 생명을 희생양 삼아 그들의 수면과 쉼을 취했다.
수면에 죄책감 가지는 세상
나는 낮잠이 낯설다. 죄책감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을 감고 내면으로 들어가는 순간, 그것은 단순히 피로를 푸는 행위가 아님을 안다. 끊임없이 외부의 속도에 맞춰 살아가다 잠시 멈추고 나 자신을 되찾는 시간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는 수면을 함으로써 저항한다. 더 이상 일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인종주의, 그리고 그 외의 모든 억압에 대하여. 나 자신을 단절시킨다.
검사로서 내 직업 또한 ‘저항’의 일환이다. 나는 자본주의, 계급주의, 성차별 등 모든 종류의 억압이 만든 부조리한 행위들을 법이라는 권위를 빌려 저항한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눈을 감으면 길이 더 잘 보이고 더 수월해진다.
정의의 여신(Justitia)은 종종 눈을 가린 모습으로 묘사된다. 그녀의 눈가리개는 어떤 외적인 영향을 받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이토록 눈을 감는 것은 세상의 불공정함이나 억압을 잠시 내려놓는 신성한 행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