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기행 #35
미사가 시작되기 5분전 수도원 성당의 은은한 종소리가 성당안을 가득채우더니 가늘고 긴 여운속에 사라집니다. 곧이어 그레고리안 성가로 입당송이 시작되고 성경을 두손높게 치켜든 수사님 뒤로 30여명의 수사님들이 줄 지어 들어옵니다. 무겁지만 가라앉은 경건함이 아닌 화사하게 하늘을 향하여 은혜를 채우는 빛과 같은 경건함이었습니다.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의 반주에 맞춰 부르는 수사님들의 성가는 하늘에서 울리는 천사들의 목소리 같기도 하였습니다.
1909년 2월 처음으로 서울에 진출한 베네딕도 수도원은 서울 수도원을 시작으로 1920년엔 원산에 1927년 덕원으로 수도원을 이전하며 수도회 본연의 목적인 기도생활이외에도 교육사업과 선교를 통해 이땅의 복음화에 크게 기여한 수도회입니다. 1950년 한국전쟁의 발발로 덕원에서 피난내려와 1952년부터는 현재의 왜관에 정착하게 됩니다.
"한국교회 첫 남자 수도공동체인 성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은 기도하며 일하는 전통적인 수도생활을 추구하며 안으로는 수도승이요 밖으로는 사도라는 오딜리아 연합회의 고유한 소명을 실현하며 세상 복음화에 이바지 합니다" 선교후원회 책자에 적은 수도회의 소개 첫 머리 글입니다. 이 소개 글처럼 수도회는 1952년 왜관에 정착할 당시 부터 1986년 대리구의 역할을 대구교구로 이전할 때까지 왜관 감목대리구를 맡아 경상도 지역의 본당 설립과 복음화를 위해 헌신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 동안 다녀본 지역의 많은 성당들에서 수도원의 이름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성주성당, 퇴강성당, 산동성당, 평화성당 등 그들이 기여하고 헌신한 성당들은 각 지역에서 지금도 본당으로서의 역할을 다 하고 있습니다.
복음화 사업이외에도 인근의 순심중고등학교, 순심여중고와 분도 노인마을을 운영하고 있으며 전국 성당으로 공급하는 성작, 성반, 감실, 촛대, 제대 등 여러가지 성물을 만들어 공급하기도 하고 유리공예와 독일식 소시지를 만들어 판매하기도 합니다. 특히 분도출판사는 베네딕도의 한자식 표기인 분도라는 명칭의 출판사로 가톨릭 출판물을 공급하여 신자들의 영성을 키우는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수도원 성당은 2009년 8월 30일 봉헌된 신축성당으로 수도자석 96석과 신자석 400여석이 있으며 미사때 마다 많은 수의 신자들이 참석하여 성 베네딕도회의 영성과 전례를 경험하게하고 있습니다. 참석한미사에서 나는 산티아고 신부라는 책을 써 유명하신 인영균 클레멘스 신부님으로부터 성체를 받게 되었는데 저로서는 가슴 설레는 미사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성당안은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모습입니다. 중앙에 걸린 십자가상은 수도회의 수사님이 제작하신 것으로 독특한 모습니다. 성당을 나오면 1928년에 건축한 왜관성당이 있는데 현재의 왜관성당은 알빈 슈미츠신부님이 설계한 성당으로 왜관읍에 있습니다. 구 성당은 왜관으로 내려온 베네딕도 수도회에서 성당으로 사용되기도 하였습니다.
성물방은 수도회의 각종 기념품과 성물, 그리고 분도출판사에서 제작한 여러가지 책들과 직접 만드신 독일식 소시지를 판매하고 있습니다. 성당을 나오면서 베네딕도회의 한국정착 100년을 기념하는 사진집과 베버신부님의 한국기행집, 그리고 공지영씨의 수도원기행 등을 구매했으며 더불어 보면 사지않을 수 없는 독일식 소시지와 몇가지 기념품을 사서 돌아왔습니다.
돌아오는 길 수도회에서 참례한 미사가 마음 깊숙한 곳에서 은혜가 되어 한달에 한번 정도는 수도회의 미사에 참석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