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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드 Feb 14. 2024

의령 신반공소
윙크하는 십자고상

성당기행#49

2023년 12월 의령군의 인구는 25,475명입니다. 10년 전인 2014년에는 29,209명이었으니 10년 전에 비하면 3,734명 정도가 줄어들었습니다. 요즘 군면단위의 인구가 급속히 줄고 있는데 의령도 예외는 아닌가 봅니다. 마산교구의 의령본당 관활의 신반공소는 부림면의 면소재지로서 의령군에서는 제법 큰 마을에 있는 천주교 공소입니다. 부림면 행정복지센터가 있어서인지 시골마을로서는 제법 활기가 있어 보입니다. 


성당순례를 하면서 으레 것 처음 가는 곳이면 버릇처럼 찾아지는 공소건물입니다.  올해 2월 새 직장이 된 의령군립요양병원에 근무하게 되면서 점심휴게시간에 짬을 내어 신반리의 마을을 둘러보다 이정표를 보고 반가운 마음에 찾아간 곳입니다. 신반리의 규모로 봐서는 어쩌면 있을 법하다고 생각했는데 뜻밖의 시간과 장소에서 만난 공소라 더욱 반가웠습니다. 농기구 임대를 해주는 커다란 창고 같은 건물 옆에 있어서인지 아주 작게 보이는 건물이었습니다.


최근에 지은 건물이다 싶었는데 어린이집을 리모델링하여 2009년 6월에 공소로 봉헌되었다 합니다. 줄어드는 인구로 인해 공소가 많이 없어지고 있는 추세에 오히려 공소를 봉헌한 걸로 보아 부림면의 교우가정이 제법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멀리서 보니 하얀색으로 칠을 한 작고 낮은 대문이 보입니다. 자물쇠가 채워져 혹여 들어가지 못하나 싶었는데 다행히 걸쇠만 걸려있어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걸쇠옆에는 순례스탬프가 놓여 있어 이곳을 찾는 순례객들에게 제공되고 있었습니다. 대문 옆에는 공소전례시간을 적은 안내판이 있었는데 매월 첫째 주 오후 6시에 의령본당 신부님의 주례로 미사 전례가 정기적으로 있고 나머지 주에는 공소예절이 있습니다. 그리고 매주 수요일에는 평일 미사가 있습니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깨끗하게 정비된 화단과 마당의 잔디가 관리가 잘된 정갈한 인상을 줍니다. 왼편 공소건물 앞에는 예수성심상이 순례객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흐린 날씨라 띄엄띄엄 구름사이로 빼꼼히 해가 나올 때면 따스한 느낌이나기도 하지만 쌀쌀한 기운이 많이 느껴지기도 하는 날입니다. 하지만 누군가에 의해 정성스럽게 관리하고 있는 성전은 쌀쌀한 기운을 몰아내 주는 온기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건물 쪽을 살펴보았지만 대문 쪽에는 성전으로 들어가는 출입구가 보이지 않아 건물을 돌아가보았습니다.


측면이라 할지 아니면 정면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천주교 마산교구 신반공소라는 명패가 지붕아래에 큼지막하게 걸려있습니다. 오른편에는 성모동산이 소박하게 꾸며져 있고 성모님이 두 손 모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성모상을 돌아가면 작은 출입구가 보이는데 게시판에 여러 가지 안내문이 게시되어 있어 이곳이 성전으로 들어가는 주 출입구보였습니다. 손잡이를 돌려보니 문이 열리지 않아 유리를 통해 안쪽을 들여다보았습니다. 


밖에서 보이는 유리창은 유리화로 장식된 창문인 것 같아 내부가 많이 궁금했습니다. 공소건물을 관리하는 분이 누구신지 모르겠으나 공소로 들어오는 이정표에 휴대폰 번호가 적혀있었습니다. 전화를 해서 잠깐 동안이라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며칠 뒤 시간을 내어 공소를 방문해 보니 출입문이 처음 방문한 때와는 다르게 활짝 열려 있었습니다. 누군가 계시나 보다 하고 반가운 마음에 가보니 자매님 한분이 나오시는 것이 보였습니다. 제 소개를 하고 안을 구경할 수 있냐고 여쭤보니 다행히 성전에 자매님 한분이 재의 수요일 제대화를 꾸미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성전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잠겨져 있고 해서 다른 쪽 문을 보니 아래에 신발하나가 가지런히 놓여있었습니다. 그 문을 통해 들어가 보니 작은 복도를 왼쪽으로 화장실과 회합실 등이 있고 오른쪽에 성전이 있었습니다. 안쪽에서 인기척이 들어 노크를 하고 들어가 보았습니다. 


성전의 제대 앞에서 율리아라는 자매님이 제대화를 꾸미고 있었습니다. 중앙에는 모과나뭇가지로 만든 십자가가 놓여있고 조화로 한창 꾸미고 있는 중이셨습니다. 보통은 생화를 사용하지만 이곳 신반에는 생화를 구입하기 힘들어 조화로 꾸미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말씀을 하시는 중에도 죄송스러운 표정이 얼굴에 드러날 정도였습니다. 머리는 염색하지 않은 흰머리로 그대로이지만 얼굴빛은 환하게 빛이 나 보였습니다. 아무래도 신심의 깊이가 얼굴에도 드러나는 가 봅니다. 


율리아 자매님이 작업하는 중간에 이곳 신반공소의 이야기들을 들을 수가 있어서 참 감사했습니다. 2009년 공소가 세워지기 이전에는 공소가 없어서 약 30km 정도 거리의 의령성당에서 미사참례를 하셨다고 합니다. 차량도 넉넉하지 않아 불편하던 차에 의령본당에 공소를 지어달라고 요청하셨다고 합니다. 몇 번의 요청 끝에 2009년 마침내 공소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공소가 봉헌되고 신반의 교우들의 기쁨이 얼마나 컸을까. 봉헌된 지 올해로 15년째인 공소가 이렇듯 정갈하고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는 것만 보아도 그때의 기쁨과 감사함이 어떠했을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이곳에 수녀님 한분이 파견되어 상주하시다가 건강이 좋치않으셔서 다른 수녀님이 오시고부터는 주말에만 오신다고 하십니다. 성전 오른편에는 오르간이 있어 반주하실 분이 있는가 하고 여쭤보니 반주하시는 분이 이사를 가셔서 현재는 휴대폰으로 반주를 대신한다고 하셔서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신반공소에는 특이한 십자고상이 있습니다. 작은 복도 끝에 있는 십자고상으로 이곳에 계시던 이냐시오라는 형제님께서 나무에 직접 조각하신 것인데 전문작가의 솜씨였습니다. 고통으로 지친 예수님의 모습이 그대로 전해지는 십자고상에는 예수님의 눈동자가 하나밖에 없어서 마치 윙크하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작품의 제목도 윙크하는 예수님입니다. 작가의 의도가 궁금했는데 율리아자매님께서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처음 제작할 때는 의도치 않았는데 조각을 마치고 보니 오른쪽 눈에 아주 작은 옹이가 있어서 마치 윙크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합니다. 지우려다가 고심 끝에 그대로 두었다고 합니다. 후에 율리아자매님이 꾸르실료 모임에 갔다가 기도문에 있는 다음 문구를 보고 출력해서 십자고상 옆에 붙여두었는데 윙크하는 십자고상을 너무도 잘 설명하는 것 같아 큰 은혜가 되었다고 합니다. 


감은 눈은 너희의 허물을 덮어주겠다.
뜬눈은 너희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아주겠다


현재 신반공소는 주말미사와 공소예절에 16명에서 30명 정도가 참례하신다고 합니다. 신반공소에는 다른 공소에는 없는 감실이 있습니다. 원래 감실이 없었으나 주일마다 성체 분배를 위해 마산교구와 의령본당을 오가시는 수녀님이 안쓰러워 감실을 두어 성체를 모실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공소교우들이 적극 요청하셨다 합니다. 의령본당에서는 당연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화를 내셨지만 후에 마산교구에서 승낙하시고 마침내 감실을 둘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감실을 설치하는 것은 그만큼 큰 책임과 관리와 정성이 따르는 것이라는 것을 교우들이 분명 알고 있었음에도 공소사람들은 지금껏 잘 지키고 감내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야기가 없는 단순한 건축물로서의 성당이 있을 수는 없겠으나 신반공소처럼 교우 공동체의 삶과 신심이 녹아있는 건축물은 좀처럼 찾기 힘든 것이 요즘입니다. 그 옛날 박해시대나 초기 천주교 시절이 아닌 2009년에 봉헌된 공소가 이렇듯 아름다운 이야기가 되고 그 장소가 가지는 또 다른 감흥과 감동과 은혜가 넉넉하게 녹아 건축물의 아름다움을 배가 시킬 수 있다는 것에 큰 은혜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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