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길에서 고교시절 친구를 우연히 만났습니다. 썩 친했던 편은 아니었어서 우리는 서로를 알아보기만 하고 지나쳤을 뿐, 그 이상의 무언가는 없었습니다. 나는 그 아이를 지나쳐 오면서, 그 아이를 처음 만났던 그 날을 회상하고 있었습니다.
제주도에서 전학을 왔다던 그 아이는,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꽤 강렬한 첫인상을 남겼습니다. 하얀 피부에 까만 머리카락을 갖고 있었던 그 아이는 키가 컸었고 노래를 잘했고, 춤도 잘 추고 공부도 곧잘 했었습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런 사실들 보다도 첫날 기대와 설렘에 부풀어 수줍어하는 표정이, 나에게 있어 그 아이의 첫인상으로 가득 메워졌습니다. 나와는 정 반대의 성향을 지녔던 아이였기 때문에 첫인상은 곧 부러움과 선망의 대상으로 변해갔습니다. 고교생활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이 감정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가끔은 보면 무심결에 그 아이를 생각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친하지는 않았지만 네가 별 일이 없는지, 그냥 잘 지내고 있는지. 이럴 때 보면 그 아이의 잔상은 지금까지 사라지지 않고 내 주위를 맴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친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이어집니다.
만약 그랬다면 나는 지금까지도 너와 연락을 이어가는 친구로 남았을까?
너와 내가 친구가 되었었다면, 나는 너에게 좋은 친구로 기억될 수 있는 사람이었을까?
지금에 와서야 그런 아쉬움들이 파도처럼 마구 몰아쳐오고 있습니다. 돌아오지 않을 고교시절에 나는 너무 커다란 아쉬움과 미련을 남기고 졸업이라는 수단을 써서 등을 돌려 외면해 버렸습니다. 나는, 용기가 없었던 겁니다.
혹시라도 지금 망설이고 있는 관계가 있다면 용기를 내어 나아가세요. 용기가 없어 망설였던 그 순간은 짧을지도 모르나 그 관계가 훗날 돌이켜봤을 때 지금의 나와 같은 그런 관계였다면, 그에 대한 아쉬움이나 미련은 생각보다 꽤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