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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미첼 Oct 21. 2017

시티팝의 대부, 야마시타 타츠로

주관적인 야마시타 타츠로 3대 명반



山下達郎 (야마시타 타츠로) 1953~


 작년부터였는지 재작년부터였는지 시티팝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유튜브 추천란에는 온통 70~80년대 제이팝으로 도배되었고 댓글들은 거의 환호성을 질렀다. 한국은 늘 그렇듯이 한 박자 느렸다. 도서사이트에서도 품절. 중고서점에서도 품절. 홍대까지 직접 찾아갔다. 그러나 품절. 음악 좀 듣는 사람들은 다 안다는 시티팝. 너무 뜬금없고도 새삼스러운 유행이었다.


 사실 이 유행의 시발점은 외국인들이 시티팝에 주목한 것이 아니었다. 시티팝을 처음 재조명한 것은 다름 아닌 일본인들 스스로였다. 어쩌면 당연한 걸 수도 있다. 한국에서도 복고드라마를 통해 7080부터 90까지 그 당시의 노래들이 다시 불러지고 있다. 하지만 그 복고 스타일의 신인 뮤지션들이 등장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일본은 그랬다. 시티팝 리바이벌. 시티팝을 부활시켰다는 의미로, 21세기에 80년대 제이팝 스타일을 재현한 뮤지션들을 묶어 이렇게 지칭한다. 마치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을 연상케 한다. 사실 시티팝이란 장르라기보다는 하나의 스타일이다. 락밴드의 구성으로 훵크나 소울의 영향을 받았고 전반적으로 팝을 추구하는... 뭐 그런 느낌이다. 사실 일본인들 스스로도 시티팝을 잘 정의하지를 못한다. 하지만 모두 느낌은 알고 있다. 그래서 시티팝 리바이벌은 중년들의 향수를 자극했고, 신세대들에게는 신선함을 주었다.

 이쯤 되면 복고가 아니라 복원에 가깝다. 그래. 이건 복원이다.

 



 일본에서 80년대를 보낸 사람이라면 '시티팝'이라고 했을 때 이런 이름들을 떠올릴 것이다. 오타키 에이치, 오누키 타에코, 그리고 야마시타 타츠로. 그 야마시타 타츠로가 바로 그 정점에 있는 인물이다.


야마시타 타츠로(좌)와 오타키 에이치(우). 소속가수와 사장님 정도 되겠다.


 일본의 전설적인 락밴드 '핫피엔도(はっぴいえんど)'의 보컬이자 기타리스트였던 오타키 에이치는 일찌감치 상업음악의 저력을 깨닫고 '나이아가라'라는 레이블을 설립한다. 오누키 타에코와 야마시타 타츠로 모두 그가 발굴해낸 신인들이었다. 하지만 음반이 잘 팔리지 않았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우스운 일이다. 지금은 모두 전설이 된 뮤지션들인데 어째서 처음엔 인기가 없었던 걸까. 이런 경우 답은 뻔하다. 시대를 앞서 갔기 때문이다.


山下達郎 - SPACY (1977)

  

 일본 롤링스톤지 선정, 일본에서 가장 위대한 락 앨범 100위 중 14위. 그런데 발매 당시에는 잘 팔리지 못한 비운의 앨범이다. 물론 동시대의 뮤지션들은 야마시타 타츠로의 재능을 알아보았다. 특히 핫피엔도의 베이시스트인 호소노 하루오미와, 훗날 아카데미 수상으로 유명해진 작곡가 사카모토 류이치가 참여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 외에도 사토 히로시, 마츠키 츠네히데, 요시다 미나코 등도 참여했다. 이 사람들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면 아래 앨범들을 들어보길 바란다.



 시계방향으로 호소노 하루오미의 <Hosono House>. 보사노바 풍의 포크록 앨범이다. 다음은 사카모토 류이치의 <Thousand Knives>로 아방가르드한 성향이 강한 전자음악을 다루고 있다. 요시다 미나코의 <Monochrome>은 소울/훵크에 가깝다고 생각되지만 시티팝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마지막으로 사토 히로시의 <This Boy>는 미니멀한 테크노/하우스 앨범이다.


 어찌 되었든 이런 굉장한 사람들이 모였으니 결과물이야 뻔하다. 첫곡인 Love Space부터 귀에 달콤하게 감기는 멜로디가 압권이다. 야마시타 타츠로의 찰랑거리는 기타 리프는 말할 것도 없고, 피아노, 베이스와 드럼, 오케스트라까지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뤄낸다. 1977년 아시아에서 이런 입체적인 사운드가 만들어졌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중간의 색소폰 연주가 나올 때면 어느새 몸이 그루브를 타고 있다.

 박자를 잘게 쪼개 놓은 翼に乗せて(날개에 태우고)와 레게 리듬의 素敵な午後は(멋진 오후는)은 리듬을 타기 좋은 곡이다. 이어지는 CANDY는 피아노 반주가 깔린 발라드 곡으로 간간이 들려오는 기타 연주가 감질난다. 하우스 리듬의 Dancer도 꼭 들어보길 추천한다.




 그렇다고 해서 야마시타 타츠로가 계속 졸졸 굶지는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더 지나고 큰 히트를 치게 된다. 그게 바로 Ride On Time 이란 곡이었다.



 이 싱글은 광고음악으로서의 효과를 온전히 누렸다. TV를 통해 노래는 대중에게 완전히 각인되었고 거리마다 이 곡이 흘러나왔다. 더 나아가 무언가 성공하면 늘 그렇듯이, 이 곡을 비슷하게 따라한 곡들이 무수히 쏟아지면서 대중음악의 유행을 선도하는 꼴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오늘날 일본에서는 이 곡을 시티팝의 효시로 보고 있다. 야마시타 타츠로의 재능이 세상에 알려진 순간이었다.


山下達郎 - RIDE ON TIME (1980)

 

 결과적으로 <RIDE ON TIME>은 시티팝의 탄생을 알린 앨범이 되었다. 야마시타 타츠로는 요시다 미나코의 소개로 젊은 드러머 아오야마 준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당시 22세로 이미 사토 히로시와 함께 작업한 경력이 있었다. 그는 같은 그룹의 멤버였던 베이시스트 이토 코우키와 함께 야마시타 타츠로의 세션 오디션을 보러 갔고 합격했다. 그렇게 이 앨범의 세션이 완성되었다.


 그래서인지 앨범 전반적으로 드럼과 베이스는 정말 기가 막힌 연주를 들려준다. 첫곡인 いつか(언젠가)와 이어지는 DAYDREAM, SILENT SCREAMER의 통통 튀는 베이스 리프는 한 번 들으면 계속 귀에 맴돌아 떠나가질 않는다. 베이시스트들에게는 연습하기에도 좋은 곡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대망의 RIDE ON TIME은 필청이다. 위의 싱글 자켓처럼 노을 진 해변가에서 정열을 불태우는 듯한 뜨거운 분위기의 곡이다. '불타는 마음을 망설이지 말고 전하러 가요'라는 가사가 정말 딱 들어맞는다.


 夏への扉(여름으로의 문)에는 신시사이저가 쓰였는데 뭔가 모타운에서 들을 수 있을 법한 곡이다. 시티팝에 모타운의 영향도 있을 거라 생각된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곡은 MY SUGAR BABE이다. 달달한 발라드 곡으로 타츠로의 보컬이 일품이다.




 나는 중학교 시절 제이팝을 듣기 시작하면서 야마시타 타츠로를 처음 알게 되었다. 물론 그때 나는 일본어를 전혀 몰랐거니와 시티팝이 크게 알려지지도 않았기 때문에 그게 시티팝인 줄도 몰랐다. 정말 매일같이 SPARKLE이란 곡을 들었다. 앞부분의 찰랑거리는 기타 소리가 너무 좋아서 곡을 다 듣지도 않고 다시 재생하곤 했다. 시간이 지나 처음 일렉기타를 사고 그 리프를 연주해 보았을 때의 기쁨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구입한 일렉기타도 야마시타 타츠로의 것과 같은 종류인 텔레캐스터였다.


山下達郎 - FOR YOU (1982)


 나는 여름을 가장 싫어한다. 덥고 습하고, 안 그래도 마른 몸인데 반팔과 반바지를 입어야 한다는 사실이 가혹하기만 하다. 그래도 이 앨범은 여름에 들어야 제맛이다.


 이 앨범은 특이하게 INTERLUDE라는 이름의 간주들이 앨범 중간중간에 박혀있는 희한한 구성을 갖고 있다. 사실 이 방식은 <RIDE ON TIME>을 제작할 당시 나왔던 아이디어를 나중에서야 반영한 것이다. 간주들은 모두 아카펠라로 녹음되어 있는데, 4개의 아카펠라가 모두 달라서 앨범의 분위기를 전환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만큼 앨범에는 다양한 분위기의 트랙들이 수록되어있다. MORNING GLORY는 리듬이 좋은 사랑스러운 곡이다. 야마시타 타츠로는 1982년에 가수인 타케우치 마리야와 결혼했는데 이 곡은 그녀의 앨범 <Miss M>에도 실려있다. 부부가 각자에 앨범에서 같은 노래를 부른 셈이다.


竹内まりや (타케우치 마리야)


 왼쪽은 타케우치 마리야의 싱글 Sweetest Music으로 B면에 Morning Glory가 수록되어있다. 오른쪽은 마찬가지로 그녀의 싱글 夢の続き(꿈의 연속). 필자가 좋아하는 곡이기도 한데, 타케우치 마리야의 노래를 들어보고 싶다면 이 곡을 추천하다.

 


 개인적으로는 FUTARI(ふたり, 두 사람)라는 곡을 가장 좋아하는데, 역시 서정적인 발라드 넘버이다. 6/8박자로 진행된다는 점이 독특해서 좋아한다. 앨범 대부분의 가사는 요시다 미나코가 썼는데, 이 곡의 가사도 정말 좋다. '깊이 사랑하는 두 사람의 마음에는 밤의 차가움도 숨을 죽인 채로...' 곡이 끝나고 간주가 지나가면 신나는 리듬의 LOVE TALKIN'이 나온다. 이 곡도 유튜브에 돌아다니는 걸 보면 해외에서 인기가 많은 곡인 듯하다. 이어서 HEY REPORTER! 는 하드락이 연상되는 거친 기타 파열음으로 시작된다. 베이스의 슬랩 연주가 곡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게 흥겹다.



 

 요즘 시티팝 리바이벌을 종종 듣는다. 특히 Suchmos라는 그룹의 곡을 즐겨 듣는다. 그러다 보면 야마시타 타츠로가 생각나서 다시 그때 음악을 듣게 된다. 시티팝과 시티팝 리바이벌, 양쪽 다 훌륭한 장르이다. 하지만 둘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 그 차이는 확실히 들린다. 시티팝이 서양의 감성으로 일본 가요를 부른 것이라면, 시티팝은 일본인의 감성으로 팝을 부른 듯한 느낌이다. 정확하게 말하기는 어렵다. 아직 더 들어봐야 할듯하다.


 야마시타 타츠로가 건재한 이상, 아직까지는 그의 음악을 더 들을 수 있을듯하다. 워낙에 활발한 뮤지션이기도 해서 앨범도 간간히 나오고 있다. 사실 소위 '리스너'들 사이에서 시티팝이 유행하길래 이것도 홍대병 힙스터들의 액세서리가 되지 않을까 내심 우려하기도 했다. 다행히도 언어의 한계 덕분에 그럴 일은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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