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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ment books May 23. 2021

사생활이 없는 시간

노출되기

0. 사라진 사생활


사생활이 우리 시간 속에서 사라지고 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하루를 시작하여 하루를 마치는 일상의 시간 중 타인에게 노출될 수밖에 없는 시간이 거의 대부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하기까지 약 1~2시간까지의 시간을 제외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회사에 출근하여 (점심 시간을 포함하여)9시간 이상을 일터에서 보낸 후 다시금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집으로 돌아온다. 가족이 있다면 같이 저녁 식사를 하고 약간의 시간만을 자신에게 할애하고는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할 것이다. 이마저도 한국의 잦은 회식 문화를 반영하지 않았을 때의 일상의 모습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만들어진 쓸데없는 회사에서의 저녁 식사까지 더해지면 정말로 그날은 사생활이라는 것은 포기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하루 중 실질적으로 누군가에게 노출되지 않고 자신만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은 아침 시간 일부, 그리고 화장실 변기에 앉아 있는 시간 정도가 될 것이다.


분명 사회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타인과의 소통력이 중요하다. 사회 생활을 통해 삶에의 의지 고취와 즐거움으로 충만해지는 순간을 맛보곤 한다. 다양한 사람과의 만남은 흥미로운 경험이다. 친분이 두터운 사람과의 지속적인 관계 유지는 정서적 안정과 유대감을 강화시킨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자연스럽게 쌓아가는 건강한 인간 관계는 크나큰 삶의 기쁨임에 분명하다.


여기서는 이러한 일반적인 사회에서의 인간 관계론의 의미나 기능적 측면을 더 구구절절이 이야기하고 싶진 않다. 사회 생활에서 사람간의 교류의 순기능은 다음 기회에, 유난히 인간 관계에서 오는 특별한 즐거움과 기쁨으로 가득 차 그것을 글로 표현하고 싶어서 어쩔 줄 몰라 할 때 이야기하도록 하자. 앞으로는 얼마간 일반적인 현대 사회에서의 감시와 통제, 관음증과 노출증에 휩싸여 도대체간에 '자기만의 것'을 지키기 여간 힘들지 않은 상황에 대한 단상을 늘어놓아 보려고 한다.  




1. 노출되기 - 기계


우리는 시선들에 자주, 그리고 또렷이 노출된다.


대부분의 건물에는 CCTV가 있다. 그리고 야외에도 공공장소와 주요 골목길, 위험적 요소가 있는 지역에도 CCTV가 운영되고 있다. 대부분의 차에는 블랙박스가 설치되어 있다. 수십 만 대의 자동차는 서울 내에서 움직이는 카메라가 되어 도로와 골목 곳곳을 촬영하며 다니고 있다.


어떤 경우에는 회사 내부에 CCTV가 설치되어 있다. 무척 고약한 경우에는, 관리자가 근로자들의 근태를 살펴보기 위해 근무하는 사무실과 작업장에 카메라를 설치하여 감시하는 경우도 있다. 보통의 경우에는 안전이나 보안상의 이유로 출입구나 주요 설비가 있는 장소에 설치하여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휴식 시간에 들리는 편의점과 카페에도 CCTV가 있다. 모두 비슷한 이유로 설치하여 운영하는 것일 테다. 안전을 위하여, 혹은 종종 있는 손님의 추태나 범죄 행위를 근거로 남겨 법적 조치를 취하기 위함이다.  


분명한 사실은 이제는 거의 어디든 우리 주변에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카메라를 피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지하 하수관을 통해 움직이거나 아예 본인이 누구인지 식별하지 못하게 다른 무엇으로 완전히 감싸고 다녀야 할 것이다. 사실 여러 공익적인 이유로 설치된 카메라에 촬영되는 것을 피하기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일반인들은 '사생팬'들로부터 필사적으로 피신하며 생활하는 연예인들처럼, 범죄에 가까운 도촬 행위나 악성 취미에 희생되는 형태로 카메라 기록에 담겨지진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찝찝함은 남는다. 어딘가에 계속해서 우리의 모습과 행동, 이동하는 공간과 생활하는 모습들은 끊임없이 기록되고 보관된다 - 비록 대부분의 CCTV에는 기록으로 남는 기간이 6개월이나 1년 등 특정 기간을 넘어서게 되면 저장 공간의 한계나 이용 가치의 저하에 따라 삭제가 될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요즘에는 유튜버나 브이로그 등 개인적 목적을 위한 수많은 개인 촬영 기기에 의한 촬영에도 빈번히 노출된다. 모두의 손에 카메라가 하나씩 쥐어졌다. 이들의 촬영에는 공익성도 존재하지 않는다. 개인의 취미생활이나 운영하는 채널의 수익성을 위해서 어디서든 카메라 촬영은 실행되고,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본인의 동의도 없이 촬영된다(초상권의 문제 등으로 실제 개인 채널에 올리기 위해 식별이 불가능한 상태로 편집이 되는 것과는 다른 문제이다. 요점은, 어찌되었든 원본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본인의 동의없이 너무나 많이 영상물로 기록되고 있다는 것이다). 방송국이라는 특정 기관에서 주로 영상물을 촬영하던 시대에서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이제 곳곳에서 우리는 촬영하는 행위에 별다른 대처법 없이 노출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뉴스를 통해 여러 사건들을 접해보면, 어떤 사건의 용의자를 색출하는 등 공적인 이유를 위해서 CCTV 설치를 전방위적으로 확대운영하는 것에 대한 목소리가 더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다소간 대로나 우범지역으로 판단되는 장소 위주로 설치된 도로변 CCTV의 설치 범위도 보다 세밀하고 좁은 범위의 골목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우리의 일터는 물론이고, 넓은 공원과 같은 쉼의 장소, 종교 행위를 하는 신성한 장소, 일상 생활의 장소까지 우리를 촬영하는 카메라의 시선 속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팬데믹은 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우리는 이제 아무렇지도 않게 개인의 정보가 있는 QR코드를 방문하는 음식점이나 특정 매장에서 체크하거나 수기로 방문 기록을 남기지 않는 이상 입장할 수도 없는 시기를 살아가고 있다. 사실상 놀랍고 끔찍한 일이다. 효율적인 방역과 환자 동선 파악을 위한 공익적인 목적을 위함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생각해보면 역사적으로 이렇게 개인의 모든 동선과 삶의 양태가 수없이 많은 데이터로 특정 관리 체계 속에 노출되는 경험을 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정말이지, 집 밖은 내가 발라당 벗겨진 채로 돌아다니고 있는 것 같다는 측면에서 위험해진 것이 분명한 것이다!


자주 듣곤 한 빅데이터 기반의 거대 IT기업들에 관한 기사들도 떠올려보자. 구글, 아마존, 네이버 등이 구축한 플랫폼에서 수많은 개인들이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개인 정보 노출 행위를 통해 취합된 정보를 기반으로 자사의 마케팅적 성과의 극대화 작업에 점점 속도를 높이고 있다는 식의 내용들 말이다. 그 "OOO의 알 수 없는 알고리즘에 이끌려" 피드에 올라와 있는 특정 콘텐츠에 놀라곤 하는 우리 소시민들의 모습을 떠올려 보자. 얼마나 많은 개인 정보들의 노출로 쌓여진 데이터의 거대한 집합체가, 어떤 새로운 지적 체계에 의해 재분류되고 해석되고 응용되어 어떤 놀라운 상업적인 효과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낼까.







여기까지의 이야기는 크게 놀라운 이야기가 아님을 안다. 모든 인문학이나 사회학 관련 매체에서 수도 없이 다루곤 하는 푸코식의(혹은 그 원류인 벤담식의) '판옵티콘' 담론에서 흔히 인용되는 내용에, 개인성이 무분별하게 노출되는 현 실태를 극도로 혐오하는 화자의 생각을 조금 더한 것뿐이다. 그러나 어쨌든, 개인성의 보호와 영위라는 인간의 기본적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는 원론적 차원에서, 무분별한 사생활의 노출과 기록에 대한 거부적 정서를 누구나 얼마간 분명히 느끼고 그 불쾌함을 쉬이 간과하고 넘어가지는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분명히 전해본다.


앞으로 사람들은 끊임없이 개인성이 노출되어야 하는 세상에 대한 피로감과, 공익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보다 효율적인 감시와 정보 관리 체계를 운영해야 하는 당위성 사이에서 어디가 적정선인지 맞추어가는 과정들을 계속 경험하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행정적 효율성 때문에 자신의 사생활을 완전히 포기하겠다고 선언하지 않는 이상 말이다.




<원본 이미지: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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