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출하기
비밀 없는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자신의 행적을 직접 미디어에 노출시켜 '인증'하는 행위가 자신의 진정성을 밝히는 가장 유력하고 손쉬운 수단이 되었다.
어떤 논리적인 설명이나 공증된 서류 따위보다는, 유튜브나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호소하거나 선정적인 언행, 개인적으로 준비한 (개인의 은밀한 정보나 타인의 민감 정보 등)자료로 설득시키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요즘 사람들은 그런 배수진을 친 노출 행위에 진정성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감시용 수단으로 타인의 언행을 살펴보거나, 미디어를 통해 스스로 자신을 노출시키는 것을 끊임없이 공유하고 가십거리로 놀고 즐기는 것이 우리네 평범한 삶이 돼 버렸다. 연동되지 않는 정보란 사실상 없다. 진정으로 자신의 정보를 완벽하게 지키고 싶으면 오히려 아날로그 시대로 돌아가야 한다. 펜과 종이를 들고 정보를 기입하고 여덟 자리 숫자를 조합해서 비밀번호를 만드는 두꺼운 금고함 같은 곳에 꽁꽁 넣어두어야 할 판이다. 그런데 그런 무식한 금고함은 새로 생산해봤자 팔리지도 않을 것이다. 애초에 대중들이 자기네 사생활을 타인과 공유하는 일에 별로 거리낌없는 상태가 돼 버렸기 때문이다.
각종 소셜 네트워크에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다양한 컨셉과 표현 수단으로 담아내고 콘텐츠화시키는 행동은 이제 현대 대중의 아주 기본적이고 자연스러운 노는 행위로 자리잡았다. 단순히 방문한 장소나 소비한 콘텐츠, 맛집에 대한 기록과 수기를 남기는 형태를 넘어서, 자기 자신이 하나의 상품이자 콘텐츠처럼 간주하여 '어떠어떠한 점에서 나의 매력과 능력이 이러하다'라는 마케팅식 화법으로 자신을 노출한다. 가벼운 취미나 순수한 유희거리에서 시작했던 일이었다 할지라도, 많은 구독자와 반응 횟수를 경험하게 되면 누구나 자신을 파는 행위를 통해 수익을 거두려는 계획을 세운다. 점점 더 많은 호응과 불어나는 광고주 컨택에 비례하여, 점점 더 자신의 생각과 가진 모든 것들을 소모적으로 활용하고 더 많은 노출을 이끌어낸다.
부모들이 자녀가 태어나면 생후 몇 십일 때 어떤 옹알이를 하고 얼마나 많은 분유를 토해냈고, 어떤 재미난 상황을 연출하여 부모를 즐겁게 했는지 그 모습들을 시시각각 추적하여 업데이트하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사실 그 자녀들이 성인이 된 이후에 부모를 상대로 초상권 무단 사용에 대한 소송을 걸어도 될 만치 지극히 개인적으로 은밀한 모습들이 될 수 있음에도 말이다. 자녀들 또한 부모의 소유물처럼, 온갖 상업적인 마케팅과 사회적 네트워크를 위한 수단으로서 거리낌없이 사생활이 노출되고 있다. 아기였던 시절의 모습을 부분적으로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공유하여 그 행복한 순간들을 지인들과 공유하며 즐거운 대화를 나눌 수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 아이들의 성장 과정들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을 정도로 빈번한 노출이 이어져, 자의식이 생길 즈음에 자녀들이 본인들의 영상이 부모를 통해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를 인식하게 되는 어떤 시점에 이르게 되었을 때, 과연 부모와 그 자녀들은 서로간에 떳떳하고 당당하게 자신들의 삶을 자연스럽게 미디어를 통해 노출하고 있다고 인정하고 그 행위를 계속 이어갈 수 있을까. 상호간에 동의하에 계속 이어질 수 있다면, 그건 단 하나의 경우이다. 모두 유명인이 되어보겠다는 생각에서 서로 일치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 외의 경우에 부모에게 끊임없이 자신들의 사생활이 노출되기 원하는 자녀들이 있다면, 그건 단순히 노출증이거나 자의식이 충분히 성장하지 않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요즘 TV를 보면, 예능에 참여하여 인터뷰나 게임 참여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자신을 미디어에 노출하는 일반인들이 부쩍 많이 늘었다는 느낌이 든다. 카메라를 얼굴에 들이대는 상황에 기겁을 하며 황급히 손으로 얼굴을 가린다든지 하는 사람은 잘 찾아보기 힘든 것 같다(뉴스에서의 인터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유수 예능 프로그램에 어떻게든 본인이 노출되어, 그것을 기회 삼아 자기 PR의 일환으로 본인이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상품을 파는지, 혹은 어떤 일들을 할 수 있는지를 적극적으로 호소하는 데 자연스럽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들의 이야기와 정보 중 은밀한 부분들이 드러나는 것 자체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대중들 속에서 감추어지거나 잊혀지는 것을 더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방송계에서 활동하는 연예인들의 스탠스처럼 말이다. 대한민국 사람만큼 외향적이고 끼 많고 장기를 유쾌하게 발휘하길 좋아하고 오지랖을 펼쳐내보이고 싶은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모두가 기회만 된다면 유명해지고 연예인이 되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 한국인은 원래부터 상대방을 캐묻기 좋아하고 자신도 그에 상응하는 만큼 정보를 드러냄으로써 어떤 공통분모를 부상시켜 서로간 결집을 도모하고 끼리끼리 어울릴 있는 집단을 만들기 좋아하는 민족인 것 같다. 처음 만나서 나이와 사는 곳을 거리낌없이 물어볼 수 있는 문화가 만연하며, 회사 대 개인으로 법적인 계약을 맺고 근무하는 일터에서도, 그런 똑같은 입장의 직원들과 '선배', '후배', '형님' 같은 명칭으로 공적인 관계를 최소화하고 옅어지게 만들어 끊임없이 집단 내 동기화를 모색하는 민족이다. 일주일 안에 우리는 새로 들어온 직원이 어디에 살고 몇 살이고, 어떤 기호를 가지고 있으며, 얼마만큼의 학력 수준을 지니고 있는지 완벽히 파악할 수 있다. 이렇게 서로서로 '정보 품앗이' 함으로써 집단 내 동질감과 소속감을 상승시킨다. 이런 분위기에 익숙한 한국인인데, 자기 정보를 평소에 애써 감추고 다니며 최대한 사회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모습도 부질없고 피곤한 일인지도 모른다. 에라. 그냥 다 드러내고 편하게 살자.
유럽인들은 아마도 한국인들이 코로나 시대라고 해서, 들어가는 상점과 건물마다 개인정보가 담긴 QR코드와 수기로 작성하는 명부에 자기 이름과 전화번호를 그대로 작성하면서 "이거, 얼마나 기간이 지나면 폐기처리하는 것인가요?"하는 질문을 던지는 것에 귀찮음을 느끼고 그냥 살아가는지 보게 된다면 기겁을 할지도 모르겠다. 만약 우리나라에 관광을 왔다가 인스타그램에 아이들을 생후 5일 단위로 다큐멘터리처럼 기록을 업데이트하며 하루에 수십 개 방문 업체에 QR코드 정보를 남기며, 틱톡 같은 곳에 최근 유행하는 춤을 '밈'처럼 끊임없이 확대재생산하는 행위를 하며, 두세 사람이 모이기만 하면 서로 호구조사하기 바쁜 한국 사람을 보고 신기해한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여기는 애초에 사생활 보호의 개념이 설 수 없는 민족이 살아가는 국가라고.
- 이미지 출처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