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이지만, 불현듯 몰려오는 어떤 감정에 휩싸여 글을 써본다.
이 '휴가이지만'이라는 표현에 강조점이 들어가 있다. 아래 예문을 살펴보자.
"휴가이지만, 오늘 집에서 컴퓨터로 업무를 본다."
"휴가이지만, 오늘 출근하게 되었다."
"휴가이지만, 오늘 업무 관련된 연락 때문에 제대로 쉬지 못했다."
"휴가이지만, 오늘 내가 아니면 진행될 수 없는 일이 있기에 원거리에서 업무 처리를 했다."
이렇게 네 개 문장까지 써놓고 보니, 아뿔싸. 그냥 최근의 내 불행한 처지를 인지한 내 감정에 따라 나열한 문장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다. 요즘 나는 계속 이 문제에 시달리고 있던 것이다.
직장일에서 분명한 사실 중 하나는, 세상에는 누구 한 명이 본인의 작업 선상에 위치하지 않다고 해서 일이 정말 안 돌아간다거나 크게 잘못되어지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많은 직장인들이, 그 당사자가 해당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회사 내)유일한 책임자라는 상황 때문에, 당장 어떤 임시적인 솔루션이라도 제시해주어야 그날은 쉬이 넘어갈 수 있겠다라는 생각 때문에, 다 떠나 클라이언트에게 심한 말을 듣지 않기 위한 인간적인 이유 때문에 쉬는 날 없이 휴대폰과 각종 메신저 프로그램과 노트북에서 손을 못 떼고 있는 것이다. 분명, 납품이든 보고이든 마감일이 당장 오늘내일이 아닌 상황이어도 말이다.
나는 상시 업무(루틴 업무) 형태와 프로젝트성 업무 형태 중에서는 그래도 프로젝트성 업무가 적성에 더 맞다고 생각한다. 단적으로 말해, 바쁠 때 바쁘더라도 집중하고 몰아쳐야 할 때에는 몰입하여 일을 최대한 빼놓고, 그 외의 시간대에는 여유롭고 자유로운 활동이 가능한 형태의 근무를 선호한다. 반면, 재고관리나 월간정산, 혹은 적시마다 행정적인 서류 처리를 해야 하는 식의 반복적인 관리직 업무에는 지루함을 느낀다(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내가 이런 일에 더 어울린다고들 한다!).
하나의 프로젝트를 맡으면 얼마간은 내가 그 일의 능동적인 주체자가 되어 기능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내가 WBS를 만들어 일정과 업무 분장을 관리하고, 공정률을 정상적인 수준으로 유지하면서 적절한 시기에 외주사를 옥죄고 필요한 시기에 비용 지출을 결정하고 있다고 '생각되어질 때' 업무 추진에 재미를 느낀다. 그리고 최종 결과물을 프로젝트와 관련된 모든 이들에게 선보이고 PT하게 될 때 굉장한 성취감을 느낀다. 여기까지가 프로젝트성 업무를 진행하면서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면이다.
실상은, 이런 일련의 과정 속에서 겪게 되는 각종 애로사항에 허덕이다 기진맥진해진 상태에서 겨우 프로젝트를 마치고 한숨을 돌리는 모습을 발견한다.
온갖 가변적인 요소들이 개입한다. 일정을 못 맞추거나 제대로된 퀄리티의 결과물을 만들지 못하는 외주사, 인성이 덜 된 클라이언트(혹은 인성이 좋지만 커뮤니케이션 자체가 피곤한 스타일인 클라이언트)의 지시 응대, 예산을 웃돌게 되는 지출계획 발생, 예상보다 더 많은 보고 자료 등. 어떤 프로젝트도 일정표대로 진행되는 경우가 없는 것이 당연한 일이겠지만, 항상 그 변수를 계산한 것보다도 훨씬 더 많은 차질과 사건을 겪으면서 프로젝트를 마치게 되는 것을 경험하는 것도 놀라운 일이다. 프로젝트를 망치는 사고만 나지 않고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지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어려움은, 결국 소통이다. 끊임없는 소통. 끊임없는 업무 피드백. 프로젝트성 업무는 느슨하게, 무탈하게 지나가는 그 며칠 혹은 몇 주의 시기에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바로 그 조용한 시간들을 꽤나 소홀히 보내게 되었을 때 별안간 엄청난 가속성을 띤 '거물'이 되어 급습하곤 한다. 이제 온갖 연락들이 쏟아진다. 밤낮을 가리지 않는다. 주말을 건너뛰는 법이 없다. 더더욱 내 휴가가 오늘인지 내일인지 말하지 않는 이상 알 턱이 없는 외부 사람들에게서 오는 연락을 무시할 수도 없는 일이다. 단순히 다음 날로 미룰 수 없는, 당장이라도 뛰쳐나와 조치를 취해야 하는 일들로 휴가 때 연락이 오는 경우도 왕왕 있다.
마감 일정이 다가올 때는 이 모든 것들이 종합된다. 수많은 업무가 이제 하나의 실물과 구체적인 시간으로 수렴되고, 메신저 창과 메일함은 수많은 정보로 가득 찬다. 이때만큼은 평소의 시니컬함과 사색적인 태도를 최소화하고 가장 겸손한 일꾼의 자세로 업무에 임해야 한다.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보고 있는데, 10장에 나오는 '노예 개미' 사례가 이와 유사하다. 유전자적 근연도가 전혀 없음에도 타 패밀리에 붙잡히면 온갖 잡일은 다 하도록 프로그램화되어 기능하는 불행한 개미들의 사례가 나오는데, 프로젝트 막판에 다다른 업무 담당자들의 모습이 정확히 이러하다. 전혀 겪고 싶지 않은 고통스러움을 절대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태. 카뮈 식의 '부조리'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모든 역량을 쏟아붇고 이러저러한 에피소드를 거치고 프로젝트가 드디어 끝이 난다. 모든 매출/비용이 정리되고 공식 서류가 제출되고 결과물이 특정 공간에 납품되거나 시연되면 사고나지 않고 무사히 프로젝트를 마쳤다는 생각에 큰 기쁨을 만끽하게 된다. 그때야 비로소 무거운 마음의 짐이 풀어지고 신체의 피로감도 차츰 해소된다. 비문증도 덜 신경쓰이는 것 같고, 왠지 바깥 공기도 꽤나 쾌청하다.
그런데 일반적인 프로젝트라는 것이, 그 마감 시점에 끝났다고 해서 바로 '엑시트'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프로젝트 종류에 따라 상이하지만 종료 이후 최소 몇 달, 길면 몇 년간의 기간에서 때때로 신경써서 관리해야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피드백이 정말 막연할 정도로 끝없이 이어지는 프로젝트들도 상당히 많다. 콘텐츠를 다루는 업종의 경우 수정과 보완 요청이 한동안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너무나 괴롭게 마친 프로젝트의 경우에는, 종료 이후 한참 지나서 휴대폰에 뜬 클라이언트의 이름만 봐도 가슴이 두근거린다(설렌다는 의미가 아니다). 충분한 피드백 끝에 만들어낸 결과물에서, 도대체 어떤 더 '진일보한' 형태를 만들어주어야 하는 것일까?
때로는 클라이언트의 문제가 아닌 내가 관리하는 사내 부서나 외주사의 실수로 지난한 작업 과정을 더 겪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중간 소통 과정에서 나의 소홀함과 부족함으로 결과물이 시원찮게 나오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이, 정말 수많은 연락과 회의와 수많은 작업 시간 끝에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유에서든 또 부족한 점이 발견되었고(혹은 나올 수밖에 없어서 나왔고) 그로 인해 해당 프로젝트 업무의 연장선상에 계속 서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담당자를 괴롭게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글을 써가는 와중에, 즐거운 휴가날인 오늘 신경써서 추적해야 하는 일들이 마무리되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여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생각해보니 오늘 하루 그래도 회사를 가지 않고 집과 외부에서 처리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오늘 나가서 그래도 장도 볼 수 있었고, 생활비 카드도 새로 발급할 수 있었다(노예 개미의 근성이 여기서도 나온다).
일. 끊이지 않는 피드백과 소통. 일만 두고 봤을 때, 너무나 당연한 일일 수 있고 지엽적인 부분일 수 있다. 연봉 상승이나 직급 상승이라는 보상들이 해소해줄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일의 특징적인 어떤 성격이, 사람의 고유한 성향과 신체적 균형, 정신적 상태에 크나큰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은 '일'이라는 것이 지닌 무서운 일면이기도 하다. 이러한 업무의 굴레에서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을까. 보직과 업종 변경, 이직으로 완전히 해소될 수도 있지만, 보통은 거기서 거기일 것이다. 그래서 고민은 계속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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