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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ment books Feb 26. 2022

왕이 되고픈 사람들

왕이 되고픈 사람들



1. 욕망



서배스천: 그러나 양심이 있지 않소. 

앤토니오: 아니, 양심이 어디 있단 말입니까? 그게 발의 동상이라면, 덧신을 신으면 되지요. 그렇지만 내 가슴속에 이 양심이라는 신이 있다고 느껴지진 않습니다...(중략)... 그들은 우리가 제안하는 모든 일에 때마침 좋은 일이라며 맞장구를 칠 것입니다. 

서배스천: 친구여, 그대의 경우가 나의 선례가 될 것이오. 그대가 밀라노를 얻은 바대로 나도 나폴리를 갖겠소. 칼을 빼시오. 단칼에 그대는 조공 납부를 면하게 될 것이오. 나는 왕이 되어 그대를 소중히 여기겠소. 

앤토니오: 같이 칼을 뺍시다. 내가 손을 들어올리면, 그대로 똑같이 해서 곤절로를 내리치시오. 


- 윌리엄 셰익스피어, <폭풍우>(열린책들, 2020), "제2막 제1장", PP. 57-58. 인용



권력에의 욕망은 양심의 목소리를 애써 외면한 채 이 세계에서, 저쪽 세계로 넘어가는 불가항력적인 동력이 된다. 권력에의 욕망에 사로잡힌 사람의 심리는 에덴동산의 금지된 열매를 따먹는 것과 같아서, 한 차례 시도하면 그 전으로 결코 되돌아갈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린다. 그래서 넘어서는 안 되는 경계를 넘어 이전까지의 이성적인 판단으로는 할 수 없는 일들을 곧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형제와 친구들을 죽인다. 경우에 따라 자신의 자녀들을 죽이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강탈한 그 찬란한 왕관을 집어 들어 흥분된 마음으로 머리 위로 가져간다. 


머리에 왕관을 쓰기 전까지는 아무도 그 무게감을 느끼지 못한다. 



2. 필요



그러자 모든 이스라엘 장로들이 한 곳에 모여 라마로 사무엘을 찾아가 건의하였다. "당신은 이제 늙고 아드님들은 당신의 길을 따르지 않으니 다른 모든 나라처럼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해주십시오." 

사무엘이 "우리를 다스릴 왕을 세워주시오." 하는 말을 듣고, 마음이 언짢아 야훼께 기도하니 야훼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셨다. 
"백성이 하는 말을 그대로 들어주어라. 그들은 너를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왕으로 모시기 싫어서 나를 배척하는 것이다." ...(중략)... 그러나 엄히 경고하여 왕이 그들을 어떻게 다스릴 것인지를 일러주어라."


- <공동번역 성서>(대한성공회), 사무엘상 8장 4-9절.    


 

때로는 왕은 필요에 의해 만들어지기도 한다. 소규모 사회, 부족 사회에서 충족하지 못하는 보다 정교하고 규모 있는 '시스템'이 왕정 체제에서 가능할 것이라는 공동체적 합의에 도달했을 때이다. 민중은 전체를 대변하고 이끌어갈 카리스마적 존재, 권세를 지닌 인물을 통치자의 위치에 세우고 싶을 터이다. 그 통치자의 카리스마적 기원은 분명 신적인 존재로부터 온 것이겠지만, 실체가 없고 관념적인 신(영적 존재) 그 자체가 돼 버리는 것은 국가 통치에서 현실성이 떨어진 행동이 될 것이다. 신의 대리인은 가시적인 존재이며 이 세계를 같이 살아가는 살과 피가 있는 실재적 존재여야 한다. 


그는 이제 부여 받은 권세/권력 만큼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3. 의무



"귀여운 제비야." 왕자가 말했다. "너는 나한테 놀라운 것들을 이야기해 주는구나. 하지만 무엇보다 놀라운 건 저 사람들이 겪는 고통이란다. 저 고통보다 큰 수수께끼는 없어. 내 도시 위를 날아다녀 보렴, 귀여운 제비야. 그리고 거기서 본 걸 나한테 이야기해 줘." 

그래서 제비는 큰 도시 위를 날아다니며 부자들은 아름다운 집에서 즐겁게 지내고 거지들은 그 문간에 앉아 있는 광경을 보았다. 어두운 골목길로 날아들었다가 굶주린 아이들이 하얀 얼굴로 검은 거리를 맥없이 내다보는 광경을 보았다. 다리의 아치 아래로는 어린 두 소년이 추위를 조금이라도 막아보려고 서로 끌어안고 누워 있었다 ...(중략)... "내 몸은 순금으로 덮여 있어." 왕자가 말했다. "그걸 한 조각씩 떼어다 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렴." 


- 오스카 와일드, <오스카 와일드 작품선>(민음사, 2012), "행복한 왕자", pp. 19-20. 인용  



권력에는 책임이 따른다. 의무적으로 해야 할 일들이 있다. 의회나 공화정 체제에서라면 국가 예산의 결의, 법률 제정, 행정 명령, 참전 결정 등의 중대한 일의 승인을 특정 협의체가 논의하여 내릴 것이고, 그것을 명목적으로 실행하는 대리인이나 제1 통치권자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기능에 관여하는 왕이라는 존재가 있다.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범위가 얼마만큼 되느냐에 따라, 그에 비례/반비례하여 책임과 의무가 따를 것이다. 왕의 실패는 국가의 실패고 모두의 실패가 된다. 그의 결정 하나하나는 생과 사를 가르는 결정적 행위가 될 수 있다. 

제1의 권력자는 모든 것을 잘하지는 못하더라도, 모든 것을 특정 기준 이상으로 관여하여 조치를 취할 수 있어야 한다. 세계는 상반되는 의견과 가치관을 지닌 개인들의 집합체로 구성되어 있다. 모두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온전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모두의 상황을 살펴볼 수 있어야 하고 얼마간의 중재를 통해 합리적인 정치적 행위를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그가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특정 집단과 이해관계를 맺는 데 몰두하고 있다면, 그가 권력자로서의 의무를 다하고 있다고 볼 수 없다.


그런데 그는 보통 부여된 의무 이상으로 특별한 광기에 휩싸여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는데 열중하는 것처럼 보인다. 



4. (일탈적)속성



권력의 증대는 공간의 증대다. 승전은 공간의 획득으로 이어진다. 제국은 권력의 영역이다. 제국은 권력이 가닿는 만큼 크다. 공간의 증대는 영토적인 면에서만이 아니라 인적인 층위 혹은 인적 관계의 층위에서도 일어난다. 권력에 예속된 자들이 많아질수록 권력자는 그만큼 더 자라난다. 권력자는 예속된 자들 속에서 자신을 연장해가기 때문이다. 


- 한병철, <폭력의 위상학>(김영사, 2020), "5. 폭력의 거시논리", pp. 112-113. 인용 



권력은 욕망을 가속화하고 끊임없이 그 힘이 미치는 영역적 범위를 확장하려는 속성을 지닌다. 그것은 심리적으로는 각 개인들의 의식에 침투하여 주체적인 행동이 불가능하게 만들고 무력한 예속자로 전락하게 한다. 이제 그들은 다수의 행복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측근과 나 자신에게 이익이 돌아가도록 권력자에게 아부하는 일만 남는다. 권력자에 기생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권력자의 영향력의 크기는 더해가고 그 영향력이 미치는 공간적 범위도 점점 뻗어 나가 확장된다. 끝없는 점령과 착취, 그리고 전리품을 통해 권력자 자신의 위대함을 증명하고 즐기는 일에 맹목적이게 된다. 

외연적 확장은 반대급부로 국가 기존 시스템 내 구성원들의 삶의 터전에 공허함과 최적화된 행정의 부재를 낳는다. 지나치게 집중화된 권력에 도취되어 외연적 확장에 빠져든 한 개인, 혹은 과두정은 적절한 통치의 배분이 불가능하다. 성과와 승리의 찬란한 빛의 직사 아래에 선 사람들 뒤로는 더욱 짙고 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을 것이다. 


먼 과거에서부터 이런 권력자에 집중된 권력에 따르는 책임을 지고 임기를 교체하여 왕정 체제가 잘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를 고안하고 실행해왔다. 현대 민주주의 정치 체제 이전에도 말이다. 



5. 순환-덧없음



그 옛날 이 아름다운 숲은 불가사의한 비극이 되풀이되던 무대였다 ...(중략)... 그 성스러운 숲에 한 그루의 나무가 있는데, 그 주위를 어떤 무시무시한 인물이 밤낮으로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는 손에 칼을 든 채 언제 있을지 모를 적의 습격에 대비해 부단히 사방을 경계했다. 그는 바로 사제인 동시에 살인자였다. 그리고 머지않아 누군가가 그를 죽이고 대신 사제직을 탈취할 것이다. 그것이 이 성소의 규칙이기 때문이다. 즉 사제가 되고자 하는 후보자는 누구든 기존 사제를 살해해야만 했다 ...(중략)... 이처럼 위험하고 불확실한 임기를 통해 그는 왕으로 칭해진다. 그러나 세상에 그처럼 불안에 떨어야 하고 혹은 무서운 악몽으로 고통받는 왕은 다시없을 것이다. 


- 제임스 프레이저, <황금가지>(을유문화사, 2021), "제1장 숲의 왕", p. 33. 인용  



왕은 그 '자리' 자체가 시스템이다. 한 명의 개인은 그 자리를 계속 이어나갈 뿐이다. 협의체, 가치관, 과학 지식, 정치 체제의 발전 정도에 따라 점점 고도화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지, 왕 또한 그를 포함한 여러 사람들과 전승과 관습이 만들어 놓은 규칙에 따라 '세워지고', '기능한다'는 점에서는 전체 통치 체제를 구성하는 요소 중 하나인 것이 분명하다.

제임스 프레이저가 조사한 여러 원시부족의 사례에서 왕들이(최고 권력자들이) 자신의 권력을 행사하다 비참한 결말을 맺는 경우를 수없이 많이 살펴볼 수 있다. 왕은 일종의 주술적 의미를 지닌 존재이기도 하기에 쉽게게 죽어서는 안 된다. 적에게 패배하든 사고를 목숨을 잃든간에 말이다. 왕이 예기치 못한 일로 죽게되면 그가 대변하는 국가의 신성한 능력마저 없어지는 일이 된다고 믿었기에, 그런 비참한 순간을 맞이하기 전에 백성들이 먼저 왕을 살해해버린다. 아예 몇 년의 주기를 정하고 그 임기가 끝나면 무조건 의식적으로 왕을 죽이고 새로운 왕을 세우는 관습을 지닌 원시부족이나 고대 국가들도 상당히 많았다. 그 자체가 왕정 시스템이었다.   


왕은 언제나 근심한다. 영원히 통치할 수 없다는 숙명적 사실을 불현듯 느낄 때 불로초를 찾아 나서거나, 자신의 이름을 딴 많은 후손을 남겨 통치를 이어갈 수 있도록 준비한다. 그러나 진시황은 불로초를 결국 찾아내지 못했고, 여러 아들에게 제국을 넘겨준 알렉산더 대왕과 칭기즈칸은 나라가 사분오열되는 결과를 맞이했다. 살아 있을 때 누리고 싶었던 부귀영화를 온전히 누리며 완전한 만족을 느끼고 눈을 감는 왕은 많지 않다. 언제 반정에 의해 죽임을 당할지 모르는 불안감 속에서, 그리고 나라의 전통과 법률이 정한 규칙 속에서 특정 임기를 마치거나 특정 이벤트를 통해 반드시 자신의 왕위를 넘겨줘야 하는 고통스러운 순간을 맞이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그마저 절대적인 폭정으로 자신의 왕위를 지킨 왕이 있다 하더라도, 세월이라는 숙명이 언젠가는 그를 찾아와 영원한 통치의 희망을 앗아가고 그를 끝장낼 것이다. 그 자리에는 다른 왕이 들어서 앉는다. 




사설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는 것은 위대한 일이 맞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 어떤 결과들이 즉시 눈앞에 드러날 때(무릎 꿇은 사람들의 모습들, 광대한 영토, 쟁취한 재산들, 드높아진 명성 등) 그가 느낄 성취감과 전율의 크기는 얼마나 대단할까. 

그런데 그의 그 위대함은 유구한 역사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경험과 지혜, 필요와 가치관, 효율적인 운영 시스템을 위해 임의로 생성하고 부여한 권력에서 나온 것이다. 그 권력은 애써 옛 사람들이 꾸며놓은 것처럼 신적인 차원에서 부여 받은 것 같지도 않고, 태생부터 어떤 사람에게 선물처럼 주어진 것도 아닌 것으로 보인다. 결국 그것도 사람들의 협의와 중재를 통해 고안된 임시적인 통치 수단, 그리고 막중한 책임이 부여된 공공적 성격의 직책을 구성하는 추상적 개념인 것이다. 


저 고대 숲의 왕은 자신의 위치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사제(왕)이면서도 살인자였다. 누구라도 그를 제거하여 왕이 될 수 있고, 그 전까지 그 불안정한 왕의 직무를 수행하고자 자신의 노력을 다해야 함을 안다. 


아이러니하게도, 21세기의 몇몇 권력자들 혹은 최고 권력을 얻고자 하는 현대 유력자들은 그 직무의 성격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아니면 잘 알고 있지만 주변 사람과 이웃 국가를 기만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어떤 나라의 통치자들과 그 권력의 구성자들의 경우에, 소수 민족의 당연한 독립을 막고 탄압하고 있고, 제국주의 시대나 냉전 시대마냥 영토를 침략해서 무고한 사람들을 희생시키는 일을 버젓이 자행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그리고 어떤 나라에서는, 연신 권력만 취득하면 상대 진영을 정치적으로 보복하고 제거할 것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권력의 덧없음을 인지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시대의 흐름 속에서 찾기보다는, 권력을 취득했을 때의 낭만적 상황을 상상하며 도취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또한 임기 내에 누릴 권력으로 무엇이든 만능으로 해낼 수 있는 것처럼 얘기하지만, 10%도 채 지켜지지 않을 무수한 공략만 내세우며 국민의 이름만 들먹이다가 또 다시 다른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주어야 할 터인데 말이다. 


우리가 보고 있는 왕이 되고픈 사람들은, 무엇이 그를 이 자리로 이끌었고 무엇이 진정으로 그를 위대하게 만들 것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을까? 




<이미지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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