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게 보는 것의 유혹
- 빠르게 보는 것의 유혹
우리는 일상에서 균형 있고 몰입 있는 '감각경험'을 하고 있는가. 무의식간에 우리는 후각, 촉각, 청각 등의 경험을 끊임없이 하고 있다. 그러나 그 감각들을 온전히 인지했다고 보기는 힘들 것이다. 우리는 전적으로 시각 경험에 의존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것도 자극적이고 현혹하는 시각효과가 점철된 이미지로의 경험 집중이 심화되고 있다. 우리는 하루간 수많은 시각 이미지에 노출되어 살아간다. 특별히 점점 갈수록 영상 이미지에 많은 노출이 있다. 시력이 안 좋아지는 것은 당연한 문제일 것이고, 나아가 우리의 감각적 차원에서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아무리 좋은 향이라도 여러 향수 샘플을 코에 가져다 대어 이것저것 여러 것을 맡아보게 되면, 결국에는 어떤 것이 무슨 향이었는지 기억하지 못하게 된다. 짧은 시간에 집약적으로 강한 감각 경험을 하게 되면 나오는 현상이다. 감각 기관은 강약의 조절이 중요하다. 어떠한 쾌락도 그 정도와 유지 기간의 한계선이 존재한다. '지속가능한 쾌락' 같은 것은 에피쿠로스 학파에서나 말하는 그런 이상적이고 정신적인 차원의 개념이다.
시각이 가져다주는 정보 전달력과 뇌에 미치는 인지 효과는 다른 어떤 감각과 비교해도 압도적으로 뛰어나다. 시력을 잃는 것은 사실상 이 세계에서의 존재 가치 대부분을 잃는 것에 준한다. 그만큼 경험의 정도에 한계가 생기니, 삶의 질은 말할 수 없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시각적인 효과의 발달은 더욱 빠르고 강력하게 발전하는데, 그만큼 우리의 감각경험을 확실하게 지배하고, 시각 경험에 탐닉하던 중 다른 경험에는 훨씬 덜 주의집중하게 만드는 역작용을 초래하게 한다.
시각 자극의 과잉은 과부화와 탈진을 야기한다. 특색없고 비슷한 도상과 색상, 구성으로 채워진 반복적이고 기억화되지 않는 그저 그런 이미지들이 시감각을 통해 전해진다. 유튜브 알고리즘는 콘텐츠, 넷플릭스의 플레이리스트 썸네일, 케이블TV 편성표는 쉴 새 없이 새로운 콘텐츠를 뿌려대듯 제공하며, 사람들은 별다른 생각없이 리스트에 있는 콘텐츠 하나를 선택하여 보면서 실실 웃거나 다시 돌려보거나 아니면 마지막까지도 별다른 생각없이 콘텐츠 감상을 마무리짓고 다른 콘텐츠로 넘어가는 것이다.
한국인은 하루 평균 스마트폰 사용량만 해도 2~3시간 정도 된다고 하는데, 그 외에도 각종 디스플레이와 미디어 광고판, 저렴하면서 강한 발광을 하는 LED 불빛 등에 장시간 노출되고 있다. 밤문화가 발달하고 잠을 자지 않는 나라에서는, 그만큼 어두움을 더욱 물리칠 수 있는 형형색색의 영상 이미지와 인공 불빛이 필수이다. 더 깨어 있는 동안 눈은 끊임없이 이미지들을 좇는다. 눈은 한시도 쉬지 않는다.
시감각 내에서도 우리가 집중하는 대상에서의 위계가 존재하는 것 같다. 일상에서 우리 주위를 끌고 오랜 시간 그것에 집중하도록 붙들어매는 이미지들은, 정확히는 영상 이미지이다. 회화 작품이나 사진, 그리고 문자에 우리가 오랜 시간 집중하는 것은 아니다. 영상 매체가 없었던 시절에는 작은 서재에 꽂혀 있는 책들이 곧 환상적인 시감각 경험 대상이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단행본과 사전, 간행물, 신문 따위로 채워져 있는 서재는 답답하고 지루한 공간일 뿐이다. 현대인들이 그런 공간에서 코로나 감염으로 인한 자가격리를 지시받게 되었을 때 끔찍한 감옥 생활처럼 느끼게 된다. 그러나 그 격리된 공간에 작은 아이패드 하나에 넷플릭스나 유튜브 같은 OTT, 스트리밍 앱 몇 가지만 설치해서 던져둬도 별다른 불만 없이 자신의 처지에 곧 순응한다. 어떤 뛰어난 풍경이나 멋진 배우의 모습을 담은 스틸 이미지들을 아무리 제공해도 동일한 지루함을 느낄 뿐이다. 우리는 이미지들의 연속에서 언제나 표류하며, 끊임없이 몰려오는 이미지의 파도에만 싫증을 느끼지 않는다.
그 어떤 감각들도 시각 이미지만큼 직관적이고 빠르고 선명한 감각과 정보를 전달해줄 수 없다. 다른 감각들은 전체를 파악하기 위해 얼마간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하다. 좋아하는 음악의 특정 파트는 정해진 재생 시점에서 등장한다. 눈을 감고 어떤 사물을 만져볼 때도 그렇다. 여러 차례 만져보고 비벼보면서 강직도와 재질 등을 충분히 파악하고 나서야 그것이 석회석인지 벽돌인지 알 수 있다. 시감각이 주는 내용은 즉각적이다. 그래서 곧바로 파악되고, 순식간에 이것이 내게 흥미를 주는지 지루함을 주는지 뇌가 판단할 수 있게 한다. 그렇기에 다른 장면으로의 '스킵'이 반복되는 것이며 거기에는 기다림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스킵을 잘하는 사람들은 부와 시간을 남들보다 더 빨리 얻는다고 생각한다. 주식 시장의 동향을 끊임없이 눈으로 좇는 사람들, 인스타그램에서 빠르게 피드로 올라오는 정보들을 체크하면서 트렌드를 파악할 수 있는 사람들, 드라마와 영화를 넘겨보며 중요한 국면만 확인하는 사람들. 그러면 한정된 시간에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고, 그것이 결국 자신이 얻을 수 있는 경험과 정보의 양을 증대시키는 것이라는 계산을 세운다. 남들보다 빠른 시간 안에 많은 정보를 얻는 사람들은 부를 증대시킬 수 있는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다. 현대사회는 '정보=돈'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얼마나 가치 있고 유용한 정보인지의 문제가 남겠지만.
지루함을 참지 못하는 우리의 눈. 빠르게 시감각의 욕구를 충족시켜야만 지루함을 느끼지 않는 우리들. 그렇기에 다른 감각들을 온전히 느낄 여유란 존재하지 않다. 잃어버린 감각들의 온전한 회복은 가능할까. 그리고 그렇게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시감각에서의 맹점을 살펴보고 "무엇을 더 많이 주의깊게 볼 것인지"를 생각해보고, 다음으로는 다른 감각들의 경험에 눈을 돌려 어떤 대안과 의미를 찾아볼 수 있을지를 생각해보려고 한다.
<이미지 출처: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