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나리>를 둘러싼 인종차별과 국뽕 논란
코로나로 암울한 상황 속이었지만, 역시 좋은 영화는 여전히 빛을 잃지 않았다. 이번에 소개할 영화 <미나리>가 바로 그것이다. 한국계 가족이 미국으로 이민 가 정착하는 이야기를 그린 이 영화는, 재미교포 정이삭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녹여내어 이목을 끌고 있다.
오늘은 영화 자체에 대한 리뷰보다 그 주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논란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선댄스 영화제에서 공개된 이후, 비평가들의 많은 호평을 받은 영화 <미나리>는 그 인기를 증명이라도 하듯 '골든 글로브' 영화상에 노미네이트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논란이 발생하는데, 바로 노미네이트 된 섹션이 '외국어 영화상'이었기 때문인데요. 주연 윤여정 배우님의 대사를 포함 많은 부분이 한국어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왜 논란이 되었는가에 대해서 의구심을 들 수도 있겠다. 하지만 많은 할리우드 관계자들은 골든 글로브 측 결정에 대해 연이은 질타를 보내고 있는 상황인데, 아래는 할리우드의 영화감독 Lulu Wang의 트윗이다.
"나는 올해 <미나리>보다 더 미국적인 영화를 보지 못했다. 이것은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는 이민자 가족에 대한 영화이다. 우리는 오직 영어를 사용해야 미국인으로 규정하는 구식적인 룰을 반드시 바꿔야 한다."
- 영화감독 룰루 왕(Lulu Wang)
일각에서는 외국어 영화로 분류되었다고 해서, 외국영화로 분류되었다고 치부하는 것은 지나친 과장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외국어 영화로 분류하는 것이 이 작품에게 악영향을 끼치는 것이라면? 골든글로브 시상식의 경우, 외국어영화상에 노미네이트 된 영화는 작품상 부문에 오를 수 없다. 즉, 외국어 영화로 규정되면 최고의 작품상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을 박탈당하는 것이다. 대사의 50% 이상이 한국어가 나온다는 이유로, 영어를 쓰는 다른 미국 영화들이 받을 수 있는 작품상 부분에는 노미네이트조차 되지 못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영화 <미나리>의 골든글로브 논란은, 이 영화를 외국어 영화로 분류하느냐 아니냐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근본적으로, 왜 외국어 영화들은 최고의 작품상을 수상할 수 없는가에 있다고 본다. 이는 아무리 미국 영주권을 딴 사람이라도 외국어를 쓰면, 더 나아가 다른 문화적 태도를 띄면 배척하는 미국 사회의 이면을 잘 대변하는 이슈라고 생각한다.
미국만이 문제가 아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이다. 할리우드 관계자들도 나서서 <미나리>를 미국 영화로 인정해달라고 하는 마당에, 한국 기자들은 마치 <미나리>가 미국 유명 시상식들에서 거론되는 자랑스러운 한국영화 K-Contents로 규정하고 싶어 안달이 난 듯하다. 아래는 포털사이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영화 <미나리> 관련 기사 제목들을 일부 발췌한 것이다.
한국 콘텐츠의 우수성을 찬미한 나머지, 골든글로브의 인종 차별적 행보를 지지하는 모양새가 되어버린 것이다. <기생충>은 한국 감독에 한국 배우에, 그리고 한국 제작사와 자본이 투입된 엄연한 한국영화이다. 그러나 <미나리>는 다르다. 재미교포인 미국인 감독이 만들고, 미국인 배우가 나오고, 미국 제작사가 제작한 미국 영화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국과 일본이 우리의 문화를 빼앗아 간다며 속상해하며 욕을 하던 모습이 선하다. 그런데 지금 <미나리>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어떠한가. 아무리 좋은 영화가 탐나기로 서니, 이렇게 낯부끄러운 이중적 태도를 취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이는 비단 기자와 일반인들의 문제가 아니다. 다음은 한국의 공기업 영화진흥위원회(KOFIC)에서 매달 발행하는 뉴스레터 중 일부이다.
한국영화 초청 수상 현황에 떡 하니 자리 잡고 있는 정이삭 감독의 <미나리>. 언제부터 <미나리>가 한국영화였단 말인가. 심지어 영화진흥위원회가 제공하는 통합검색에 따르면, <미나리>는 한국 수입사가 존재하는 데 말이다.
여기서 나는 한 가지 의문점이 든다. 과연 <미나리>가 그저 그런 영화였다면. 혹은 미국의 호응을 받지 못했다면 이렇게까지 한국영화라고 표기하고 싶었을까? 지금은 그저 남이 만든 영화를 빼앗아 올 때가 아닌, 진정으로 좋은 한국영화가 배출될 수 있도록 내실에 힘써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올해 코로나로 인해 많은 극장이 문을 닫고, 영화 촬영들이 무기한 지연 및 중지되었다. 이러한 환경을 외면한 채, 그저 '한국영화'라는 타이틀의 위상만을 뒤놓이는 일이 가장 우선적인가에 대해서는 굳이 긴 말 하지 않아도 잘 알 것이라고 생각한다.
굳이 한국이 나서서'한국영화'를 홍보하지 않아도, 굳이 남이 나서서 '한국영화'를 호평해주고 믿어주는 그런 날이 언젠간 오기를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