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앞두고
요 며칠간 마음이 복잡하다. 이사를 비롯한 여러 가지 변화가 내외적으로 있어서 더 그런 듯하다. 찌는듯한 습도는 나를 잡아 삼킨 것만 같고 나는 그 틈에 이삿짐을 날랐다. 오래전 엄마의 대사가 생각난다. '이사 가면 뭔가 다를 것 같았어'. 나도 그 마음이 없진 않았다. 다만 엄마와 나의 마음은 전후가 다르긴 하다. 나는 이사를 가면서 뭔가 달라질 것을 기대했고, 엄마는 달라질 것을 기대해서 이사를 갔으니까. 하지만 기대와 다르게 공간만이 사뭇 다르다.
엄마 이야기를 마저 하자면, 엄마의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더 복잡하고 어려워졌다. 나는 정말 큰 무기력을 느꼈고 엄마와 통화에선 벽과 이야기하는 것만 같았다. 대체 엄마에게 이성적인 생각들은 존재할 수 있는 것인가. 도대체 얼마나 큰 상실이어야 도무지 생각을 할 수 없게 되는 것인가. 나는 무던히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려 했지만, 사실 아직도 정확히 이해가 되지는 않는다. 나는 엄마와 통화를 하다 주저앉아 버렸다.
또 서른다섯을 지나가는 지금 나는 노화를 직면하고 있다. 이것 또한 참 웃긴데 첫 새치를 발견하는 것과 내 안구에서 주름을 발견하는 것은 마치 서른 살이 되었을 때, 내 20대가 그리 순탄치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충격만큼이나 타격이 있다. (20대 때는 몰랐는데, 30대에 바라본 내 20대가 내가 너무나 불쌍했다. 쌉 F...)
거울을 보며 느낀다. 나도 늙는구나. 내 곁을 지나가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모습이 그리 멀지 않구나. 아빠가 오십에 죽었으니 내 삶이 15년 정도 남았다 생각하면 나는 다시 주저앉을 것만 같다.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나는 아직 아무것도 하지 못했는데... 재호가 그랬다. 물처럼 흘러가는 대로 살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연어처럼 거꾸로 오르려니까 힘들다고. 그래 맞다. 너무 힘이 든다.
항상 고백하지만, 나는 여름이 싫다. 비가 오는 날들도 싫고 이런 날들이면 무기력에 무기력이 더해진다.
영화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돌고 돌아 다시 제자리다. 차라리 될 것처럼 굴지나 말지 왜 계속 사람 애간장을 태우는지 모르겠다. 이 마음은 대체 언제쯤 익숙해질 것인가. 어렵고 어려운 마음이다. 수많은 용기들은 다 어디에 있는가.
그래도 오늘은 마음을 쏟아내며 다시 한번 마음을 잡아본다. 폭염에 녹아내리는 수많은 용기들을 보았지만, 난 오늘 습도가 100%인 날씨에 풋살을 하고 왔고, 좋은 친구들과 실없는 소리를 했다. 또 윤지의 응원을 받았고, 길거리에서 용기 내 소리를 질렀다. '아! 시발 해보자!'
당분간 할 수 있는 것을 해야지. 이렇게라도 써두면 무엇이라도 되겠지. 당분간은 글을 쓰며 무던히 지내야지. 여름이 지나면 무엇이든 괜찮아지겠지. 내 용기도 다시금 깡깡 얼었으면 좋겠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오늘 습도가 100%인 풋살장에서 풋살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