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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수안 Sep 27. 2022

Playlist | 넬 희망편

진실을 마주할 수 있는 끝없는 용기를

플레이리스트 채널을 열었다. 별 건 아니고, 음악을 좋아해서 음악회사에 왔는데 내 채널 하나 없는 게 자존심이 상해서. 이미 잘 나가는 플레이리스트 채널에 비하면 감성적인 측면에서는 발끝만도 못 따라가지만 그래도 취향 저격할 자신감 하나 쯤은 있어서. 그 첫 시작은 물론 넬이 열었다. 이하 넬의 얼마 없는 희망적인 곡들 중에서 내 취향에 맞게 추린 열두 곡을 소개한다.



https://youtu.be/zZqClOcOIs8








Tokyo

I think i'm losing weight again
I think i'm losing taste again
I think i broke my heart again
Will you stay with me.. Will you stay with me



넬의 음악 중에서는 그나마 밝은 멜로디이나, 사실은 네가 없으니 입맛도 없고 살도 쭉쭉 빠지고 마음이 부서질 것 같이 아프니 내 곁에 계속 있어주면 안되냐는 서러운 내용이다. 그럼에도 희망 편으로 넣어둔 이유는 앞으로 펼쳐질 눈물편 절망편 파멸편이 지구 뿌셔버릴 정도로 다크하고 딥하기 때문에 넬의 감성 중에서는 희망적이라고 꼽았다. 그래도 '머물러주겠니?' 라고 한번 붙잡을 용기 낸 것만으로도 충분히 희망적인 메시지이기 때문에.







그리워하려고 해

혹시나 만에 하나라도 말이야
모두 다 잊고 편해질 수 있다고 해도 난
그리워하려고 해
그냥 그렇게 하려 해
붙잡아봐도 잡히지 않을 날들
애타게 그리워하고
또 슬퍼 지려고 할 땐
애써 웃지 않으려 해
내게 맡겨진 슬픔이라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해



넬의 체념적인 감성이 돋보이는 곡.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다거나, 감정을 부정하거나 나 너무 힘드니까 돌아와줘 같은 내용이 아니라 힘듦이라도 내게 온 거라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겸허한 수용의 자세를 보임으로서 이별에 대해 한층 더 성숙한 태도를 견지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희망차다고 보았다. 가끔 우리는 힘든 감정에 저항하다가 더 힘들어질 때도 있으니까. 스스로 어떤 상태인지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메타인지라고 하는데, 메타인지가 높을수록 내면이 단단해진다고 한다. 곡의 화자는 메타인지가 상당히 높은 편이라고 느꼈다. 내가 지금 힘들구나, 그럼 충분히 힘들어 하자. 슬플 땐 슬퍼하자, 그리울 땐 그리워하자. 스스로의 상태를 알고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도 감정을 그대로 들여다보고 느껴보면 좋겠다. 힘들 때 충분히 힘들어해보자. 그럼 그 힘듦에서도 언젠가 결국 후련해지고 진실로 털어낼 수 있는 날이 온다. 








기억해

손 내밀면 닿을 듯한 너와 내가 너무 좋았어
그땐 너무 당연하게만 느껴졌던 사소함들이
오늘따라 더 유난히 더 그리워



코시국에 만들어진 곡. 올 해는 끝날까, 마스크를 벗을 수 있을까 기대하고 있는 게 벌써 3년이 지나가고 있다. 위드코로나 정책이 시작되기 전 2년 동안 아티스트들은 집합 금지, 떼창 금지 등으로 인해 무대를 잃었다. 아티스트나 팬은 누구할 것 없이 충격에 빠졌다. 연주자와 관객이 있는데 무대가 없어졌다. 함성 금지이던 때 겨우 오프라인 공연을 갔던 적이 있다. 아티스트가 질문을 해도 관객은 대답할 수 없었다. 교감할 수 없는 공연은 아티스트를 힘빠지게 했다. 그 뿐이랴, 평소 생활에서도 소통하는 데에 어려움이 생겼다. 서로의 눈빛은 주고 받을 수 있지만 표정은 읽을 수 없게 됐다. 코로나 베이비들은 표정에서 비롯되는 비언어적 소통을 할 수 없어 그 전에 태어난 아이들보다 평균 아이큐가 70이상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었다. 당연한 걸 당연하게 생각하지 말고 우리 손 잡고 얼굴을 마주보며 교감하던 시절을 기억하고 그리워하자는 내용을 담은 곡.






희망고문

분명 휴식이 필요해
숨 쉴 공간이 필요해
좋은 대화가 필요해
나쁘지 않은 낯설음과
느리게 가는 그 시간과
좋은 술 한잔이 필요해



이 곡은 제목으로 완성된다. 가사만 보면 희망차고 어디로든 지금 당장 떠나자는 내용이지만 역설적으로 희망고문이란 제목이 붙어서 '그럴 수 없음'을 나타낸다. 그래서 나도 이 곡을 들을 때면 사무실이, 출근길이 유독 답답해진다. 정작 떠난 곳에서는 잘 듣지 않지만 떠나고 싶을 때, 현실을 잊고 싶을 때 들으면 잠시나마 음악 안으로 여행하는 기분이 들어서 희망 편으로 넣었다. 이 쯤되면 희망편이 이정도니 파멸편은 어느 정도인지 대충 짐작이 가겠지.






Dear Genovese

나에게 용기를 줘
고통스럽더라도
진실을 마주할 수 있는
그 힘을 내게 줘



어떤 사회적 제도 혹은 투쟁 상대와 맞서다가 마지막 HP 1까지 다 해버린 순간. 너무 피하고 숨어버리고 싶지만, 그럼에도 용기와 힘을 달라는 노랫말이 인상적인 곡. 핍박을 피해 동굴 안에 숨어있다가 다시 결의를 다지고 횃불을 높이 들어 길을 밝히는 투사의 모습이 그려진다. 나 역시 지치고 힘들 때 이 노래를 마음 맞는 사람들과 떼창하면서 소주 한 잔 털어넣으면 다시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요상한 용기가 솟는 곡이다. 







그래서 제발 내일 따윈 없었으면
좋겠단 생각하고
역시 만나질 수밖에 없었던 거라고
그런 생각해



사랑하는 사람과 시간을 나누다가 '지금 무슨 생각해?'에 대한 물음에 대답하는 곡. 넬의 몇 안되는 긍정의 정서가 느껴지는 곡이다. 온전히 사랑하는 사람에게 우리는 역시 만날 운명이었다고 말하는 곡. 초반 도입부의 드럼 사운드와 전개하면서 폭발하는 기타 사운드가 넬의 락은 이런 스타일이야. 말하는 것 같다. 넬을 '기억을 걷는 시간'으로만 아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곡 중 하나다.







Day after day

I'll sail through
the pouring rain
물론 다 흠뻑 젖을 테지만
그러면 어때
I'll dance in the rain



C 앨범 중 가장 좋아하는 곡. 콘서트에서 들은 건 단 두번 뿐이라 더욱 소중한 곡이다. 전 앨범인 'Slip away'의 'Standing in the rain'이라는 곡이 있다. 그 곡에서는 그저 내리는 비를 하염없이 맞을 수밖에 없던 수동적인 화자가 어떤 계기로 인해 각성하고, 'Day after day'에서 마침내 능동적인 모습으로 탈바꿈해 '이젠 그 빗속에서도 춤을 추겠다'고 의지를 다지는 것 같은 느낌으로 이어진다. 꼭 Standing in the rain을 듣고 이 곡을 들어보길 추천한다. 화자는 그 사이 어떤 경험과 생각을 통해 깨어났길래 '비'로 은유하는 고난 속에서도 춤을 출 수 있게 되었을까? 리스너들과 다양한 해석을 나눠보고 싶기도 하다.








Home

You give me hope to carry on
기억만으로도 내 심장을 뛰게 해



넌 나를 계속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야. 이 말은 단연 최고의 고백이 아닐까. 엄밀히 말하면 노래의 테마는 이별이고 떠나간 사랑을 생각하다가 '사실 넌 이만큼 내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던 사람이야.' 라는 내용으로 전개되는데, 마지막 아웃트로의 기타 솔로가 굉장한 카타르시스를 안겨주고 거기에 너의 기억만으로도 나는 다시 나아갈 수 있다. 라는 마무리로써 이 곡의 바이브가 완성된 것 같다. 우리는 비록 이별했어도 기억하며 나아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어서 희망 편에 넣었다.







Dream Catcher

But I'll hold on
이 순간을 잡고 놓지 않겠어 
너와 나 우린 달랐을 뿐
잘못되진 않았어



'나 걔 인스타 언팔했어.' 요즘 어느 술 자리를 가더라도 꼭 듣게 되는 한 마디다. 이 말이 따끔하게 들렸다. 이유는 걔 인스타 보고 있으면 불편해서. 듣고 있으면 속으로 가만히 자아성찰을 하게 된다. 나도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드는 글을 쓰고 있지는 않을까. 나에게 말해주지도 않고 조용히 팔로우 취소를 누른 친구들이 있는 건 아닐까. 자꾸 다른 사람들 시선에 나를 욱여넣게 되면 어느새 나는 나 자신을 잃어버리고 진심을 보여줄 기회마저 잃어버린다. 감성을 표현하고 싶을 때 한 단어로 대체해버리거나, 대충 쓴 한 병맛으로 갈음해버리고는 한다. 이번 콘서트에서 이 곡을 불러줬을 때 떼창을 하면서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꼈는데, 아마도 나 같이 생각하는 수많은 '누군가'들을 위해 만든 곡 같다고 느껴져서가 아닐까. 가끔 주변을 둘러보면 사회화가 덜 되어있거나 쟤 왜저래? 하는 사람들이 있다. 누군가에게 내가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을 때는 이 노랫말을 떠올려보자. 너와 나 우린 달랐을 뿐 잘못되진 않았어. 그럼 좀 위안이 된다.







Fantasy

돌려 놓을 수 있다 해도 이미 너무 많은걸
알고 느껴버린걸. 없던 일이 될 순 없어



체념의 정서가 또다시 돋보이는 곡. 하지만 사운드와 태도 면에서 이전의 체념의 정서와는 묘하게 결이 다르다. 전의 곡들은 거부할 힘도 없이 진이 쪽 빨린 채 무기력하게 받아들인다면 판타지는 내가 인지하고 수용하겠다는 태도. 음원도 음원이지만 라이브로 들었을 때 더욱 전율이 느껴진다. '비가 내리면 젖고, 바람이 불면 흔들려 그럴 수밖에 없어 This is natural' 할 때 음원에서 들리지 않는 드럼 사운드가 쾅쾅쾅쾅 하면서 커지는데 그게 정말 사람 심장 찢어놓는다. 특히 대형 공연에서는 (스포 주의) 레퍼토리로 특효가 등장하는데 그 부분이 정말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판타지는 갓타지.







Promise me

녹이 슨 열정과 망각의 권태를
이겨낼 수 있는 끝없는 용기를
Promise Me



이 플레이리스트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곡이다. 넬의 곡 중에서 가장 밝은 게 뭐냐고 묻는다면 제일 먼저 이 곡을 추천할 것이다. 일단 들어보면 인트로부터 벅차오르는 재질에 청량한 푸른색 바다가 생각나는 곡. 아무리 고통이 있어도 끝에는 희망이 있다고 약속해 줘.라는 가사인데 표현이 정말 고급지고 몰아치는 연주가 정말 '미쳤다'라고밖에 할 수 없다. 말이 필요없이 희망편이다. 판타지와 곡 전개는 비슷한데 가사 내용은 정반대의 스타일이랄까. 락 페스티벌에서 들으면 소위 말하는 '넬뽕' 가득하게 차오르는 가사, 연주, 가창의 삼합을 맛 볼 수 있다.







Cliff Parade

벼랑 끝에 서있는 건
새로운 희망인건지 그냥 끝인 건지
늘 나의 구원이었고 또 다른 죽음이었던 뒤틀린 그림자
Let it crash



넬의 소규모 콘서트에 가면 거의 엔딩곡으로 지정되어 있는 곡. 그만큼 '사골처럼 우려먹는다'고 하여 사골 퍼레이드라고 불렸지만 코로나 시국에는 한동안 어쿠스틱 버전의 콘서트를 하느라 접할 일이 없었다. 오랜만에 이번 넬스시즌에서 선보여 반가웠던 곡. 벌써 발매한지가 10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가사가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공연장에서 듣는 순간 그런게 뭐 중요하랴. 떼창하고 머리채 풀고 노느라 정신 없다. 라이브로 들으면 뭐든 다 부숴버릴 수 있을 것 같은 가창과 연주가 나에게도 전투력을 뿜뿜 심어준다. 희망 편에서도 마지막 곡으로 선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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