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가까이 글밥을 먹고 살다보니 인생과 글 사이에 닮은 점이 꽤 많다고 느낀다. 고민을 거듭하며 어렵게 한 편의 글을 쓰고 한 권의 책을 완성한다는 건, 매일 반복되는 고단함 속에서 오늘 하루를 살아내고 한 생애를 사는 것과 비슷하다.
그래서일까. 단순함을 필요로 한다는 것조차 꼭 닮은 건. 행복하기 위해서는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내고 가장 중요한 것에 집중하며 단순하게 살아야 하듯이,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도 비움과 집중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오늘 무슨 글을 써야 하나 또 고민하던 찰나, 인생과 글, 단순함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어디로 가야 할 지 아무런 목적이 없는 인생,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인생을 사는 건 괴롭다. 중요하지 않은 것들에 시간과 에너지, 돈을 허비하는 바람에 방향을 잃거나 헤매게 된다. 목적이 거창할 필요는 없지만 내가 무엇을 원하는 지 알지 못하면 무작정 남들이 하는 것을 쫓으면서 내가 원하는 인생이 아니라 남들이 원하는 인생으로 휩쓸리며 살 수 밖에 없다. 그건 내 행복이 아니라 남의 행복이다.
글을 쓸 때도 목적이 불분명하고 핵심을 파악하지 못하면 그 글은 결국 산으로 가거나 글을 쓰기 위해 투자한 시간과 에너지, 돈을 낭비하게 된다. 목적 없는 글쓰기는 쓸데없는 물건을 소비하는 것과 다름없다. 쓰지 않는 물건처럼 써놓은 글을 방치하게 된다. 이런 글은 아무리 써도 인생을 변화시킬 수 없다. 그래서 글을 쓸 때는 내가 왜 글을 쓰고자 하는지, 이 글을 통해 무엇을 얻고자 하는 지 분명한 목적 설정이 필요하다. 목적 있는 글쓰기는 나를 성장하게 만들 수 있다.
돌아보면 인생을 살면서 가장 나를 힘들 게 했던 건 조급함이었다. 남보다 뒤쳐지면 안된다는 생각에 애쓰면서 정신없이 사느라 괴로웠다. 그랬던 나는 단순함의 가치를 받아들이고 나서 허공을 향해가는 고속열차처럼 달리던 나를 멈춰 세웠다. 퇴사를 한 뒤 한동안 아무 것도 안했다. 대신 내가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 지 차분히 생각하고 계획하고 나서 지금의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뻔한 말이지만 진짜로 인생을 살 때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었다.
글을 쓸 때도 이 방향이 중요하다. 한 편의 글을 쓸 때에는 도입부터 결론까지 기승전결의 방향을 세우고 써야 논리정연하게 후르륵 쓸 수 있다. 이걸 세우지 않고 무작정 글을 쓰면 시간만 더 걸리고 결국 잘 쓰지도 못한다. 첫 책 <가장 단순한 것의 힘>을 쓰면서는 하나의 글 뿐만 아니라 전체 구성의 방향도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 글이 도무지 잘 써지지 않을 때가 있었는데, 잠시 중단하고 기획 방향을 처음부터 세밀하게 다시 고쳤다. 방향을 제대로 잡고 나자 막혔던 글이 술술 풀려서 첫 책을 낼 수 있었다. 지금도 글을 잘 쓰는 것보다 방향을 잘 잡는 것이 더 어렵고 그래서 중요하다.
많은 일들을 다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강박이 인생을 괴롭게 만든다. 매 순간을 부담과 긴장으로 사는 삶에서는 즐거움을 찾을 여유가 없다. 길을 가다 코끝에 스며드는 달콤한 아카시아 꽃 향기, 오색찬란한 일몰의 아름다움에도 감탄하지 못한다. 그렇게 무미건조한 일상은 인생을 더 슬프게 만든다. 과거의 내가 그랬고, 지금은 친구들을 보며 그걸 느껴서 안타깝다. 사실은 많은 일들을 다 완벽하게 해내지 않아도 인생 크게 잘못 되는 건 아닌데. 오히려 그 반대인데.
글을 쓸 때도 완벽하게 쓰려고 마음 먹으면 첫 줄을 쓰는 것조차 쉽지 않다. 제대로 쓰기 전부터 스트레스를 잔뜩 받아서 인상을 팍 찡그리게 된다. 내 능력이 이것 밖에 안 되나 좌절하고, 스스로에게 상처받는다. 그런 과정을 숱하게 겪고 나니 이젠 기자나 작가, 칼럼니스트라는 타이틀은 잊어버리고, 잘 쓰거나 말거나 그냥 블로그에 쓰듯이 편히 쓰려고 한다. 먼저 잘 쓰겠다는 부담으로 가득 찬 마음부터 비워야 첫 문장을 시작할 수 있다.
우리는 인생에서 쓸데없는 것들을 참 많이 채우고 산다. 지금은 쓰지도 않으면서 언젠가 필요할까봐 잔뜩 쌓아놓은 집안의 물건부터 별 생각없이 저장해서 컴퓨터와 스마트폰에 꽉 찬 디지털 정보, 인맥관리 한다고 잔뜩 늘렸지만 도움이 필요하거나 외로울 때 찾지도 못할 인맥. 그리고 다 중요해보이는 인생의 할일들과 걱정은 또 왜 이리 많은지. 이렇게 불필요한 것들을 다 떠안고 사니 인생이 괴로울 수 밖에. 인생의 군더더기는 버려야 행복해진다.
글도 군더더기는 버려야 한다. 잘 쓰고 싶은 욕심에 이것저것 덧붙여 문장을 길게 쓴다던지, 본문과 크게 관련없는 글을 넣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런 글은 언뜻 보이기에는 괜찮아 보일지 몰라도 독자 입장에서 잘 읽히는 글은 아니다. 기사는 중2가 읽을 수 있는 것을 기준으로 쓴다. 나의 경우엔 일단 주르륵 쓰고 나서 퇴고할 때 군더더기를 빼곤 한다. 인생도 글도 화려하지 않아도 단순한 게 좋다고 생각한다.
나는 욕심 많은 사람이다. 그래서 더 큰 집, 더 높은 연봉, 더 나은 물건 등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면서 더 많은 것들을 채우고 살았다.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채워도 꼭대기는 높았다. 내 인생도 나도 참 보잘 것 없어 보였다. 그 때 단순함을 만났고, 비웠다. 그렇게 행복해졌더니 너무 좋아서 다른 사람들에게 이 행복을 알리면서 잃어버린 일의 의미를 찾았다. 오랫동안 행복해지려면 내 욕심을 채워야 하는 줄 알았는데 비우고 나서야 진짜 행복을 알았다.
글을 쓸 때야말로 가장 욕심을 비워야 할 때다. 다른 사람을 돕고 행복하게 만들고 싶다는 사명이 있어야 글을 쓰는 동기가 강해지고, 세상에 나온 글이 독자와 함께 살아 숨쉬는 생명력을 얻는다. 그래서 좋은 글을 쓴다는 건 바로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욕심으로 가득 찬 나를 비우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걸 알게 된 후 글을 쓰면서 욕심 많은 나를 반성해야 했고, 문장을 단순하게 다듬듯 나를 계속 다듬어갔다.
그래서 글을 쓴다는 건 인생을 정리하면서 수양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내가 진정 무엇을 원하는 지를 알고, 남의 시선에서 벗어나 내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인생의 군더더기와 쓸데없는 감정들을 내려놓는 과정. 그러니 만약 지금 이 글을 보는 누군가도 인생의 방향을 잃었거나 괴롭다고 느낀다면 글을 한 번 써보는 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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