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사에서 일할 때의 일이다.
일의 특성상 여러 나라의 외국인들과 이야기를 할 일이 많았는데, 그 날은 사무실로 어떤 프랑스 노신사가 한 분 들어오셨다. 굉장히 쾌활한 분이라 간단한 관광상품 안내 말고도 다른 이야기를 더 나누게 됐는데, 이야기를 나누다가 한국에 얼마나 머무셨냐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정말 이상하네요. 왜 한국사람들은 모두 그걸 궁금해하죠? 여기서 만난 모든 한국인이 나한테 그 질문을 했어요."
그러면서 말을 이어가시는데,
" 모두 왜 그런 걸 묻나 곰곰이 생각해봤어요. 결국 안보문제 때문에 불안해서 그럴지 모른다고 결론을 내렸죠. 지금 남북한이 휴전 상태잖아요. 뉴욕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어요. 뉴욕은 테러에 대한 공포가 엄청나요. 뉴욕에서 택시를 타면 택시 드라이버들이 모두 여기 한국에서처럼 질문을 해요. 어디서 왔냐, 얼마나 여기에 머물 거냐 같은 조사를 하죠."
사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평소에 하던 대로 궁금해서 자연스럽게 물어본 거였다. 이런 대답이 나올 줄은 생각도 못해서 당황스러웠다. 그런데 듣고 보니 그 이야기가 굉장히 흥미로웠다.
"프랑스에서는 그런 질문을 거의 안 해요. 외국인이 프랑스에 얼마나 있을지 뭘 하며 있을지 같은 건 나와 상관이 없죠. 나도 궁금해한 적이 없고요."
어쩌면 그 노신사는 그냥 말씀이 많은 분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분의 말이 머릿속을 쉽게 떠나지 않았다.
나는 타인에게 속이 빈 관심을 필요 이상으로 갖고 있는 건 아닐까? 그것이 습관처럼 된 것은 아닐까? 타인에 대한 나의 관심은 결국 나를 방어하는 마음을 에두른 것이 아니었는지......
타인에게 쏟는 관심을 조금 줄인다면, 나에게 관심을 가질 시간이 더 많아지진 않을까? 나는 종종 나보다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더 많다. 그러면서 외롭다 투덜거릴 때가 참 많다.
결국, 그 노신사는 그가 한국에 얼마나 머물렀는지는 말해주지도 않고 투어를 하나 예약하고서,
"한국은 정말 활기차고, 음식도 맛있고, 옷 잘 입는 사람도 많은 멋진 곳이에요. 잘 지내요, 안녕."
하며 나갔다.
덕분에 생각해볼 질문을 하나 얻었다. 때론 이렇게 여행을 떠나지 않아도, 사람에게서 다른 세계를 본다. 여행하는 것처럼, 새로운 것을 마음에 둔다.
이제 저 유쾌하고 쾌활한 노신사는 나가서 한국을 누비다 갈 테지.
나는 당신이 여기서 얼마나 무얼 할지 궁금해하지 않을 테다. 힘들지만, 좀 참아보겠다.